결국 혼자여야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함께 가는 줄 알았지만, 결국 혼자여야 날 수 있는 활주로가 있더라.

by 재영

사람은 본능적으로 함께 걷기를 원한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옆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덜 외롭고 덜 두려워지니까. 나 역시 그랬다. 함께 꿈꾸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고, 함께 책을 읽고, 함께 무언가를 이루는 장면을 상상했다. 회사와 팀, 그리고 목표를 두고 협업하는 관계라는 이름 안에서 우리는 동료였고, 나는 그런 동료들과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믿었다. 같이 걸으면 덜 지칠 줄 알았고, 같이 보면 더 멀리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더 많이 알려주고 싶었고, 더 많이 나누려 애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사업이 조금씩 단단해질수록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 어쩌면, 나는 혼자였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함께 한다는 말로 나 자신을 위로하며 버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심이 전해질 거라 믿었고, 방향이 같다면 속도는 달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꿈을 꾸는 사람은 무게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구는 시간만을 내고, 누구는 마음까지 내야 한다. 그 차이는 곧 방향의 차이가 되었고, 결국 다른 길 위에 서 있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진짜 성장은 함께가 아닌, 혼자의 독백 속에서 시작된다는 것. 성찰하고 다시 묻고, 스스로에게만 들릴 수 있는 목소리를 따라가는 그 시간. 그 시간 없이 ‘같이 가자’는 말은 공허하다는 걸.

함께 걷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 길은, 혼자여야 끝까지 갈 수 있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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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을 품은 사람의 무게

리더라는 자리는, 누구보다 더 많이 고민해야 하는 자리다.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열 걸음쯤은 먼저 생각해봐야 하는 사람. 그리고 그 열 걸음의 무게를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사람. 직원들과 함께 성장을 담고, 미래를 기획하고, 더 나은 성장을 기대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나 혼자 성장을 갈구하며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구보다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나였고, 누구보다 이 일을 ‘내 일’이라 여긴 사람도 나였다. 그들은 성실했고 책임감도 있었지만, 다른 삶을 살기에 꾸고있는 꿈은 다르다는것은 확실하였다. 비전을 나누자고 할 때 고개는 끄덕였지만, 그 눈빛은 늘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하나’만 묻고 있었다.

그때 느꼈다. 야망은 공유되지 않는다. 야망을 품은 사람만이,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걸.

같이 간다는 말은 어쩌면, 내 편의를 위한 환상에 불과했다. 진짜 꿈꾸는 사람은 늘 더 배워야 하고, 더 인내해야 하며, 더 많이 버텨야만 한다. 그 무게는 가끔 외롭고, 자주 고독하다. 하지만 그 무게 덕분에 나는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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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재조정, 그리고 집중

트렌드는 빠르게 바뀌고, 사람들의 니즈는 더 빨리 흔들린다. 그 안에서 중심을 잡는다는 건 ‘한 번 잘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다시 배우고, 또 다시 배우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매 분기마다 내 성장의 어닝콜을 연다. 나만의 실적을 검토하고, 방향성을 점검하며, 스스로에게 다음 분기의 가이던스를 설정한다.


이 일을 하는 이유가 흔들리면, 일의 밀도도 무너진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자 게으름과 싸우고, 트렌드를 읽고, 마음을 읽는다. 직원보다 더 많이 배워야 하고, 더 깊게 사고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왜냐면 야망을 품은 사람에게는 멈춤이 곧 퇴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수많은 것을 포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장의 여유, 나태함, 작은 미학들. 그 모든 걸 기꺼이 버릴 줄 알아야, 하나의 진짜를 품을 수 있다.

“하나를 위해 아홉을 버린다”는 말은 진짜였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고, 집중했고, 그 선택이 조금씩 나를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그냥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건, 내가 나 자신에게 매일 묻는 “넌 정말 이걸 위해 포기할 수 있니?”라는 질문에 계속해서 예라고 대답하는 과정이다.



회사의 외형이 아닌, 진심을 키운다

처음 몇 년간은 회사를 ‘크게’ 키우는 데만 몰두했다. 수익을 내야 한다는 압박, 직원 수가 늘어야 한다는 강박, 그 모든 숫자들이 곧 내 존재의 증명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무리해서라도 잡았다. 맞지 않는 클라이언트, 어울리지 않는 제안, 조금만 더 키우면 뭔가 될 것 같다는 착각이 나를 이끌었다. 그렇게 확장한 회사는 어느 순간 문어발처럼 뻗어 있었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은 채 생존을 위해 이리저리 달리고만 있었다. 그러다 결국 멈췄다.


더 크기를 키우기보다, 방향을 다시 보기로 했다. 무엇을 위해 시작했는지를 다시 꺼내보며, 내가 좋아하는 일들과,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오래 공존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이젠 단기 수익보다 장기적 호흡을 택한다. 계약보다 관계, 숫자보다 결, 나를 오래도록 지치지 않게 하는 방향을 중심에 둔다. 나의 회사는 이제 더 크고 빠른 걸 자랑하기보다, 더 오래 사랑할 수 있는 일을 만들고자 하는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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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직접 만든다

예전에는 직원에게 맡기고, 담당자에게 배분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효율이라는 이유로 나는 점점 현장과 멀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오히려 일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진심은 위임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진짜로 원하는 방향이 있다면, 그 방향은 내가 직접 말하고, 내가 직접 설계해야 했다.


올해부터는 모든 흐름을 내가 직접 컨트롤하고 있다. 제안서도 내가 쓰고, 미팅도 내가 주도하며 전략, 목표, 타임라인을 하나하나 손으로 짚는다. 그러다 보니, 니즈를 더 정확히 읽고 더 빠르고 정교하게 제안할 수 있게 되었다. 일은 일로 쳐내려는 사람보다 해결과 목표를 안고 하는사람만이 정확한 가이드를 만들수 있다는것을 알기에 더욱이 심도깊게 접근하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그 사이에서 많은 시간을 들였다. 작은 표현 하나에도 꼼꼼함을 담고, 생각을 예측하고 미리 필요사항들을 설계한다. 겉으로 보이는 건 단순하지만, 안에 담긴 디테일은 훨씬 깊어졌다.


그 덕분일까. 작년보다 더 큰 회사들이 먼저 찾아오고, 지원사업도 작년의 세 배 이상 성과를 내고 있다.

직접 한다는 건 귀찮음이 아니라, 내가 진심이라는 가장 명확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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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공의 시간

올해, 나는 서른이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직도 한창일 나이라고 말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이제는 더는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릴 수 없는 시간이라는 걸. 지난 몇 년간, 시행착오는 충분히 해봤다. 부딪히고 깨지고, 때론 오해하고, 때론 집착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구분할 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과정은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이제는 선택한다. 관계도, 일도, 방향도,

그저 괜찮은 것보다 정말 ‘내 것’에 가까운 것들만 곁에 두기로. 그 결심이 쌓여야, 나는 멀리 간다.


나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싶고, 그 일을 오래도록 사랑하고 싶다. 그래서 이제는 달리는 게 아니라, 활공하고 싶다. 무작정 속도를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품은 방향으로 바람을 타며 멀리 나는 것. 진짜를 향한 길엔 타협이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단단해진 지금, 나는 내가 설계한 고도에서, 이제야 비로소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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