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처리가 남았지만, 그래도 한 학기가 끝났다. (방학을 기다리는 마음은 학생이 클까, 교원이 클까..)
오후 2시 40분부터 대학운영회의가 있어 지루한 60분을 보내고 연구실로 돌아왔다.
몇 가지 메일을 보내고, 이 책을 열었다가, 저 파일을 열었다가.. 종강날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 산만해졌다.
최소한 밤 9시까지는 책도 좀 보고, 늦어지고 있는 보고서 자료도 좀 찾아 정리하고 할 예정이었다. 5시가 지나자, 오늘 같은 날은 좀 쉬어줘야지?라는 '이상한 자아'가 고개를 든다.
그래?라고 정상인척 하던 '또 다른 자아'가 반긴다.
그럼 뭘 할까?
맛있는 걸 먹어?
음. 평소에 많이 먹잖아. 네 똥배를 좀 봐!
그러네..
달리기를 해?
어제 달렸는데 또 달려?
술 한잔 해?
내일 마실 거잖아
밤 9시까지 일을 하겠다던 '정상 자아'는 점점 줄어들어, 오늘도 놀아야 한다는 '이상한 자아'로 통합되어 대화가 마구 진행된다.
골프 어때? G선생님이 골프 연습장에 같이 함 가자고 했잖아.
오! 굿아이디어!
그럼 '종강 기념'으로 골프(연습) 장 한 번 가보자!
같은 숙사에 사는 G선생님. 직장에서 숙사로 가는 길에 골프 연습장이 있는데, 허름하지만 꽤 괜찮다고 같이 한번 가보기로 했는데, 한 번도 못 가봤다. 참고로 나는 골프를 전혀 못 친다.
G선생님께 연락했다.
오늘도 갈 예정이었다고 한다. 골프연습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먼저 숙사로 돌아가 S선생님께 골프채를 몇 개 추천받아 빌렸다. 오래된 거니 그냥 가지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골프 연습장으로 출발.
겉은 허름해 보이는 연습장인데 안으로 들어가 보니 꽤 넓고 괜찮아 보였다. 골프 연습장이라고 해서 넓지 않은 공간에 그물망을 쳐서 연습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시원한 공간에서 공을 뻥뻥 날릴 수 있는 곳이었다. 가까이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G선생님이 골프연습장 시스템을 설명해 줬다.
비어있는 타석에 짐을 내려놓고, 골프공 자판기에서 공을 사 와서 마음대로 연습하면 된다고. 심플했다.
100엔을 넣으면 골프공 20개가 나온다.
G선생님도 나도 200엔씩 공을 구입했다. 자기는 공을 실제 치기 전에 공을 앞에 두고 연습을 네다섯 번씩 한다고. 그렇게 하면 400엔 정도면 1시간 30분은 즐길 수 있다고 했다.
G선생님께 간단한 레슨을 받았다.
발을 어깨너비로 벌리고, 하체에 힘을 주고 서서, 손목이 아니라 팔을 돌려야 하고, 처음에는 멀리 치려고 하지 말고 맞춘다는 생각으로 톡 치는 연습부터 해야 하고.... 많은 설명이 있었는데 복잡했다.
무엇이든 실제 해보는 게 중요!
골프공을 세팅하고, 몇 번을 시뮬레이션 스윙(?) 했다.
그래 이렇게 치면 되겠지?
그렇게 힘껏 스윙을 해봤다. 딱! 소리가 나며 날아갔다.
오 재밌네...
다시 치니 툭 소리가 나기도 하고, 삑 소리가 나기도 하고, 탁 소리가 나기도 하고, 오른쪽으로 날기도 하고, 바닥으로 구르기도 하고, 나의 자아처럼 제멋대로였다.
그래도 제대로 맞추면 딱 소리를 내고 제법 쭉~뻣어나갔다.
뻥 뚫리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나쁘지 않았다. 좋았다.
중간중간 G선생님이 코치를 해줬다.
S선생님한테 받은 골프채를 보더니, 너무 오래된 골프채라 쉽지 않다고, 자기 골프채로 한번 쳐보라고 했다. G선생님한테 빌린 골프채로 맞췄더니 역시 소리가 달랐다.
그렇게 치다가, 200엔 치 공을 더 샀다. 그리고 100엔 치 더 샀다.
대략 1시간 조금 넘게 연습을 했다.
한번 와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는 길에 있고, 500엔 정도면 한두 시간 재밌게 운동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매우 흡족했다.
골프공 자판기. 100엔을 넣으면 20개가 나온다(좌) 골프를 치고 있는 G선생님(우)
그날 밤에 숙소로 돌아와서 간단하게 한 잔 하면서 G선생님이 골프채 두 개를 선물로 주셨다. 자기도 받는 거지만 나름 괜찮은 제품이니, S선생님한테 받는 것보다 괜찮을 테니 한번 써보라고. 이 골프채들로 제대로 맞추기 시작하면 아주 재밌을 거라고 했다.
달리기를 꾸준히 하고 있지만 재밌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고, 뛰고 싶을 때고 있고 뛰기 싫을 때도 있다. 좋은 운동이지만 그렇게 재밌는 운동이라고 하기에 애매하다. 사실 몸을 위해 좀 억지로 하고 있다. 그리고 너무 자주 많이 달렸더니 몸에 살짝 무리가 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근데 골프는 꽤 재밌을 것 같다. 아직 잘 모르지만 조금 배우고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게 되면 운동도 되고 스트레스 해소도 될 것 같다. 제대로 맞추려면 꽤 집중해야 하고, 몸도 제대로 쓸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골프는 비싸다고 들었는데, 골프채는 받았고 연습장 비용은 하루 5000원 정도면 충분할 것 같으니, 비용은 문제가 안 될 것 같다. 비록 연습장에서 하는 골프지만 즐기면서 운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좀 익숙해지면 라운딩도 가끔 나가기로 했다. S선생님은 30년 전 동경방송국에서 근무했었는데, 그때는 한 라운드에 3만 엔은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아오모리에는 5천 엔에서 1만 2천엔 정도면 라운드를 돌 수 있다고 한다.
G선생님이 선물한 골프채(대문 사진에 나온 골프채는 S선생님이 선물한 오래된 골동품급 골프채)
열린 마음으로 살자
역시 경험이 중요하다. 골프를 직접 해보고 느꼈다. 이 번이 딱 두 번째인데, 몇 년 전에 라운딩을 한 번 따라 나간 적이 있다. 그때 골프를 처음 쳐보고 꽤 놀랐다. 이렇게 재밌고 운동이 되는 스포츠라니! 내가 놀랐던 이유는 골프란 재미없는 운동이란 선입견이 강했기 때문이다. 아마 어릴 때 티브이에서 골프 경기를 보면서, 정말 재미없다고 느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가끔 골프 시합이 티브이에 나오면 룰도 모르겠고, 지겨워 보이고 그랬다.
그래서 호주에서 유학할 때 친구들이 그냥 몸만 오면 된다고, 같이 골프 가자고 몇 번 권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아까울 것 같아 안 갔었다. 근데 직접 골프를 해보니 이 재밌는 걸 왜 안 했지, 그때 왜 안 따라갔는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때 한 번이라도 해볼 걸 그랬다. 비교적 열린 마음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더 열린 마음으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