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환상 Jun 10. 2024

피터팬 증후군

가끔은 괜찮을지도

 녹음이 짙음에도 보석처럼 조각조각 스미는 햇살의 흔적이 아름답다. 너무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질감의 공기가 가득한 세상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눈을 돌리면 빛바랜 철조망 너머로 토끼풀이 담뿍 피어있는 공터가 각막에 맺힌다. 그곳에 어린 내가 아른거리고, 어린 나와 함께였던 친구들이 까르르 웃는다. 술래잡기라도 하는지 뜀박질을 끊임없이 하다가, 쪼그려 앉아 토끼풀을 톡톡 뜯어서 세상 가장 예쁜 팔찌도 서로 채워준다. 머리를 맞대고 조잘조잘 의논을 하다가도 천진한 미소를 가득 띄우고 힘껏 뛴다. 우린 그렇게 매일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며 영원히 즐거울 것만 같았는데.

 철조망 너머의 다 큰 난 그곳에 홀려 있다. 얇은 철사들로 가려지지 않는 공터는 여전히 가득히 부어지는 햇살로 충만하고, 초록으로 수놓여 있다. 오래 전 엄마가 틀어주셨던 비디오 플레이어의 검정색 삼각형을 딸깍, 누르면 영화가 재생되듯, 눈꺼풀이 끊임없이 그리움과 애정을 담아 아이들을 불러온다.

 유진아! 날 부르는 언니의 목소리에 대답하면 그제야 내 존재를 상기한다. 언니의 뒤로 울창한 숲길로 이어지는 단정한 나무계단이 보인다. 바람은 살랑거리고 그곳에는 키득거리는 두 아이가 웅크려 앉아있는 것 같았는데 계단은 그저 조용하고 단단히 존재할 뿐이다.

 걸음을 옮기며 언니에게 이 정도의 습도와 바람이라면 난 여름을 사랑할 수 있을거라고 떠들었다. 늘 내 말에 공감해주는 언니는 진심어린 목소리로 나도, 한다. 얼마 안 있어 우리는 전공 얘기, 교수님 얘기, 연애 얘기 같은 걸 하며 평범해빠진 대학생들이 된다.

 살랑이는 바람이 심장도 간질이고 갔는지 참 오랜만에 감상에 젖은 하루였다.

 막무가내로 커버린 몸뚱이가 버겁긴 했지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고개 들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