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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 Oct 14. 2024

닿지 못할 편지

한강 작가님께

 작가님, 광주에 살던 한 소년의 이야기를 3-4년여 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때도 책을 좋아할 뿐 많이는 읽지 않던 학생이었는데, 그 책을 학교에서 권장도서로 지정한 덕에 당신 특유의 섬세하고 애틋한 필체로 묘사된 한 소년을 알게 되었죠. 당시 읽었던 몇 안되는 책 중에 훗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실 작가님의 책이 있었다니 학교에 참 감사해요.

 저는 꽤 오래전 딱 한 번 읽었는데도 그 이야기를 잊지 못합니다. 그날의 광주에 대해 다룬 많은 예술 작품을 접했지만 사뭇 다른 시선으로 그날을, 그 사람들을 묘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혼. 영혼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읽은 지 정말 오래되어 기억이 흐릿하네요. 다시 그 책을 펼쳐 봐야겠습니다.

 무튼 작가님은 갑작스런 폭력과 준비하지 못한 죽음에 적응하지 못하고 갈 데 없이 방황하는 투명하고 어린 영혼들의 이야기를 쓰셨습니다. 그들의 속삭임과 당황스러움이 저에게 흘러들어오는 경험을 하며, 그에 반해 정제되지 않은 폭력의 묘사를 읽으며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 당시 저는 그들과 동갑이었는데, 저와 제 친구들을 어느 정도 투영해서 보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생존했다면 푸르른 스물을 지나 꿈을 꾸고 사랑을 하며 같은 땅에 살아갔을 그들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민주주의의 수호와 같은 대의를 위해 싸우기보다 당장 오늘 저녁식사에 무얼 먹을지 고민하는 일이, 잘 치지 못한 시험의 성적이 나오는 날이 가장 큰 인생의 고민이어야 할 꽃피지 못한 나이를 헤아려 보았습니다.

 그날의 광주를 배우고 작품을 통해 접할 때면 늘 마음이 아려 결국 눈물로 넘쳐 흐르지만, 소년의 이야기는 그런 감정으로 끝맺기 힘든 소설입니다. 아주아주 오래 끔찍한 폭력을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단순히 슬픈 감정을 넘어 분노, 불편함까지 불러옵니다. 역사에 대한 연대책임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중간에 덮을지도 모를 만큼 긴 분량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현대인들의 연대책임은 기본 역사교육과정에 대한 앎과 그들에 대한 감사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연대책임은 피로 칠갑된 수많은 희생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어 보이지만, 이런 마음도 수백 수천만이 모인다면 얇고 작은 영혼들, 흙바닥에 겹겹이 쌓여 있던 조그만 숨들이 이제는 호흡할 수 있을까요.

 어제는 때아닌 독서 열풍이 불고 있다는 기사들을 보았습니다. 노벨상의 여파로 전 세계인들이 광주라는 도시의 이야기에 대해 알게 되리라 예측하는 기사들을 보았습니다. 소년이 온다 속 주인공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의 어머님께서 눈물짓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작가님이 오랜 시간 동안 행해 오신, 결코 유쾌하지 않았을 아픔에 대한 관찰과 기록이 결국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이 시간에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며 마음껏 기뻐함을 거부하신 작가님은 이것이 과연 결실이며 꽃을 피운 것인가 부정하실 것 같습니다. 모두가 당신의 소식에 행복에 겨워하지만 당신만은 이름처럼 잔잔하고 고요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글이 탄생하나 봅니다.

 사람들은 허구의 세계를, 사랑을, 해피엔딩을 무의식적으로 좇습니다. 왜냐하면 현실, 특히 이미 일어나 꽉 닫힌 새드엔딩을 확신하며 짚어가야 하는 참혹의 역사는 기록하는 이도, 읽는 이도 많은 정신력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자가 글을 쓰고 읽는 동안 기쁨과 감동을 준다면, 작가님의 글은 읽을 때 너무나도 힘들고 마음이 아프지만 다 읽은 후 깊은 여운을 주고 많은 상념에 잠기게 합니다.

 그래서 작가님께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결코 닿지 못할 걸 알지만, 작가님께서 옳다고 여겨 감수하셨을 오랜 시간의 글 창작이 한 고등학생에게, 이제는 세상의 모두에게 생각을 하게 하고, 여운을 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고 있을 수많은 생명과 영혼에 대해 슬퍼하게 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글이 세상을 바꾸고 전쟁을 멈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제는 대학생이 된 삼 년 전 <소년이 온다>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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