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 왜 왔어? 왜 하필 독일/뮌헨이야?”
교환학생을 온 2주 동안, 이름과 나라를 제외하고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이 바로 이 두 개일 것 같습니다. 서울대에서 교환을 가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 다른 나라의 수업이 궁금해서 그리고 외국에서 연구해보고 싶어서라는 친구들이 정말 많았는데요, 사실 저는 이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조금 가벼운 이유로 왔습니다.
‘놀려구! 여행 다니기 편하고 치안 좋은 나라로 오고 싶었어! 유럽 문화도 경험하고 싶어.’ 가 제 답변이었거든요.
사실 처음에는 조금 초조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제 4학년 1학기이고 랩인턴 한 번을 안했는데 여기서 생각없이 지내는 것은 아닐까? 해외의 랩에서 연구를 진행하려는 몇 친구들을 보니 더 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과거형인 것을 보면서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지금의 저는 이 선택에 300% 만족하고, 이렇게 와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대학원 가면 연구는 충분히 많이 할텐데 한 학기 정도 색다른 경험을 하면서 보낸다고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다른 것을 많이 배우고, 또 행복했어요ㅎㅎ
그래서 여러분께 제가 교환을 하면서 생각하고 느꼈던 점을 짧게 나눠보려고 합니다. 교환학생에 대한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으면서 글을 좀처럼 쓸 수 없었습니다. 교환학생 자랑하고 홍보하기? 아니면 한국 대학교랑 비교하기? 듣는 과목 소개하기? 그래서 그냥 한 번 다 적어보려고 합니다. 글을 쓰는데 정답은 없을 테니까요. 다만 이 글의 작은 부분이더라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 TUM(뮌헨 공대)에서의 수업
저는 독일에서 공대로 가장 유명한 학교 중에 하나인 TUM의 informatics 학부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저는 독일어로 수업을 들을 정도의 실력이 없고, 영어 수업을 찾다 보니 지금은 대부분 석사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독일의 학사는 3년으로 한국에 비해 짧아서 그런지 사뭇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 대학과의 차이점이 많이 보였는데요.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수강신청이 무척이나 자유롭다는 것이었는데, 우리처럼 수신전쟁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강의 없이 '팀플'로만 진행되는 아주 소수의 수업을 제외하고서 수강 인원 제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듣고 싶으면 무조건 들을 수 있었고, 학기 전체가 수강신청 및 변경기간이었기 때문에, 중간에 수업을 들어가는 것도 드랍하는 것도 자유로웠습니다. 여기에 더해, 같은 시간에 여러 과목을 신청하는 것 또한 제한이 없었는데, 대부분의 과목이 강의 자료와 녹화본을 올려주는 만큼 스스로 공부할 자신만 있다면 최대한 자유를 보장해주는 분위기인 것 같더라구요. 또, 그렇기 때문에 출석도 전혀 체크하지 않아서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부여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시험 성적에 있어서는 한국보다 깐깐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제가 소속되었던 informatics 학과의 경우 많은 수업에서 40% 정도의 학생이 fail을 받았고, A에 해당하는 학점도 약 10% 정도만 받는 듯 했습니다. 수업 자체도 조금 더 실용적이거나 직접적인 과목이 많다는 느낌을 줬는데 저희 학과의 경우 Protein Prediction, Games Engineering, Sound Effects 등 보다 실무와 관련된 과목이 많이 열렸습니다. 저는 Virtual Machine, Compiler Construction, Introduction to Deep Learning과 독일어 수업을 들었는데요, 그 중에서 I2DL 이라 부르는 딥러닝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납니다. 약 1600명의 학생이 수강하는 TUM의 대표강좌라고 해요. 수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데,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tutorial이 무척 상세하고 잘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또 기억에 남는 것은 해당 수업의 커뮤니티입니다. 서울대에서 실습 과제가 나왔을 때 생각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생각보다 성능이 안 좋은 경우 혼자서 해결하는 게 기본이었던 것 같습니다. 알 수 없는 에러가 아니고서야 이게 생각보다 성능이 안좋은데 어떻게 해야할까요? 라는 질문은 게시판에 잘 올라오지도, 올라와도 답변을 상세히 하기보다는 열심히 시도해보세요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여기는 이런 저런 방법을 조교님도, 다른 학생들도 많이 제시해줍니다. 아무래도 과제가 성적에 직접적으로 반영되기보다는 추가점수의 형태로 들어가서 그런게 아닌가 싶네요.
서울대와 TUM, 어느 한 학교의 수업 방식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색다른 방식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무척이나 만족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선착순으로 과목을 못 듣는 일이 없다는 점, 그리고 한 학기 수업을 다 들은 후에 시험 1주일 전까지 시험을 볼 지 드랍할 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네요.
2) 국제 학생들과 친해지기, 그리고 영어,,,,, 영어!
교환학생을 가려는 사람들이 가장 꿈꾸는 것 중 하나는 다양한 나라의 사람을 만나고 친해지는 것 아니겠어요 ㅎㅎ 저도 다른 국제 학생들과 친해지고 싶었고, 개강 전 Party Animals라는 오리엔테이션 위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렇게 파티피플이 아니고.. 술도 잘 못하기 때문에 (교환 오기전에 제 최고기록은 맥주 300cc 이랍니다 ㅎㅎ) 처음에 조금 걱정을 했었는데요, 다른 나라의 문화을 접했던 것은 물론 22년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잔뜩 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인생 첫 클럽도 이 친구들이랑 갔었어요.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저를 조금 괴롭힌 게 있었다면.. 바로 영어입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한국 내에서 저는 영어를 못하는 편이 아닙니다. 토플도 110을 넘는 점수로 여유롭게 교환학생 커트라인을 통과했고, 영어가 불편하다고 느낀 적은 없으니까요. 정말 원어민처럼 영어를 하는 친구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나름 그래도 못하진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는 실력이거든요.
그런데 막상 여기와서 계속해서 영어만 쓰는 건 다른 문제였습니다. 말하기 전에 혹시 나 이상하게 말하는 거 아니야? 문법이 맞나? 라는 생각만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말을 하기 전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조금 고생을 했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지금은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내뱉고 보는 게 중요하더라구요. 특히 저는 유럽권으로 교환을 갔고, 여기 대부분 교환학생들도 유럽에서 왔으며, 결론적으로 원어민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죠. 여기서 수일치나 시제 등에서 틀린 점이 있어도 아무도 잘못했다고 지적하지도 않고 이해를 못하지도 않습니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이 한국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보거나 핀잔을 주는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래서인지 그냥 하고싶은 말을 하면 문제가 없었습니다.
영어 때문에 교환학생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망설이지 마시고 일단 가서 아무말이나 해보는 것을 적극 추천합니다.
의외로 복병은 다른 곳에 있었는데, 문화적 관심사가 유럽 친구들이랑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중국, 싱가폴, 태국, 일본 등에서 온 친구들과는 서로 대화가 통하고 알고 있는 것도 많고, 간단한 인사도 아는 등 할 얘기가 많고 문화도 비슷합니다. 그에 반해 유럽 친구들은 문화는 물론이고, 음악과 영화 취향 등등에 이르기 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보니까 이야기를 하다가도 뚝 끊기기 마련이었어요. 그러다보니 아시아에 관심이 많은 애들이 아니면 유럽 애들과는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한국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도 많고, 아시아 친구들도 많아서 다양한 친구를 사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3) 여행 이야기
유럽에 온 만큼 다양한 여행을 다녔습니다. 저는 교환학생동안 뮌헨을 제외하고 베를린,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헝가리, 스위스, 영국, 체코를 다녀왔는데 나름 알차게 다녀왔습니다. 여행은 특별한 건 없었던 것 같은데 몇 가지만 조언을 해 드리자면 1] 체력을 과대평가하지 말 것 2] 여행과 교환학생 생활 중에 시간 분배를 잘 할 것 이 있는 것 같아요. 생각보다 여행이 체력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여행을 너무 자주 가기보다는 휴식하는 시간도 많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두 개 이상의 나라를 연달아 갔을 때 조금 힘들어서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또, 중간부터는 여행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행은 나중에 와도 똑같겠지만(경비가 많이 드는 것을 제외하고 경험 자체는) 교환학생 생활은 지금이 아니면 즐기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후반에는 뮌헨에 거의 머물렀어요. 지금 생각하면 해외 여행을 적게 다니고 차라리 그 시간에 독일 여행을 좀 더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의외로 당일치기 여행이 재미있었는데 뉘른베르크,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 잘츠부르크 등 기차로 2~3시간이면 가는 도시들을 부담없이 가는 것도 좋았던 것 같아요.
4) 한국 친구들
외국 친구들과 친해지는 것도 교환학생의 목표였지만, 아무래도 한국 친구들이 편하긴 하더라구요. 차라리 미국을 갔으면 문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았을텐데 유럽쪽은 문외한이라서 말을 하다가도 무슨 대화를 해야하지?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중반부터는 한국친구들과 더 많이 지냈던 것 같습니다. 다만 한국에서와 다른 점은, 여기서는 10명 정도의 친구들만 지속적으로 본다! 였습니다.
사실 그러다보니까 원래라면 너무 달라서 친해지지 않았을 수도 있을 사람들도 알게 되었는데 이게 좋은 점도,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잊지 못할 시간들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너무 같은 사람만 계속 보니까 평소라면 신경쓰이지 않았을 단점들이 거슬리기도 하고 한국의 다른 친구들이 보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게 교환학생의 묘미 아니겠어요 :) 그리고 한국가서도 만날 친구들이 생겼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ㅎㅎ
6) 마지막으로 독일에 오는 사람들에게!
여행을 오든, 교환학생으로 오든, 아니면 유학을 오든 어떤 이유에서나 독일, 특히 뮌헨에 오는 사람들에게 몇가지 팁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 뮌헨의 맥주
맥주하면 독일이지만 그중에서도 뮌헨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옥토버페스트의 도시인 만큼 다양한 브랜드의 맥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 나름 많이 팔리는 파울라너부터, 뮌헨인들의 원픽 아우구스티너, 유명한 호프브로이, 그리고 슈파텐, 바이엔슈테판, 프란치스카너 등의 다양한 양조장이 맛있는 맥주를 제공하니까 뮌헨에 간다면 다 경험하셨으면 좋겠어요.
가장 익숙한 종류인 라거 - 헬레스부터, 조금 더 진한 색깔의 바이스 비어, 그리고 헬레스에 레몬에이드를 섞은 라들러와, 바이스비어에 레몬에이드를 섞은 루스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으니 어떤 맥주를 좋아하는지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뮌헨의 음식
독일하면 슈니첼, 학센만 떠올리시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바이에른 주의 대표적은 음식은 몇 개 더 있습니다. 맥앤치즈 위에 튀긴 양파를 올려주는 Käsespatzle, 샌드위치 같은것에 넣어먹곤 하는 Leberkäse, 폭신하면서 Senf라는 소스와 같이 먹는 Weißwurst 등 매력적인 음식이 넘친답니다.
#현금 문화와 팁
독일은 아날로그를 사랑합니다. 나름 큰 가게인데도 카드를 받지 않는 경우가 꽤 있고, 일정 금액 이상만 카드를 받거나, EC카드라는 유럽의 현금 카드(한국 카드 해당 없음)만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심지어 우체국에서 택배를 부칠 때도 카드를 받지 않더라구요. 꼭 어느 정도의 현금을 가지고 다니기를 추천합니다. 그리고, 저나 제 친구들이나 유럽은 팁을 안준다고 많이 들었었는데요, 상당수의 나라가 팁을 받더라구요. 특히 독일은 미국처럼 팁을 강요하지는 않지만, 독일 친구들한테 물어봤을 때 모두가 약 10%의 팁을 준다고 했습니다. 맛있게 먹었으면 조금 아깝더라도 기분좋게 팁을 주고 가는게 어떨까요? 참고로 잔돈 등을 테이블에 놓고 가거나, 카드 결제할 때 결제 후 팁 금액을 영수증에 쓰는 미국과 달리, 돈이나 카드를 낼 때 팁을 포함한 가격을 웨이터한테 말하는 것 같아요. 20유로가 나왔다면 웨이터한테 22유로요~ 하고 결제하면 됩니다.
#뮌헨의 치안
치안은 매우 좋은 편인 것 같아요. 뭘 두고 정신을 놓으면 사라진다는 일반적인 유럽의 편견과 달리, 뮌헨 사람들은 그런 것을 걱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하철에서 저는 여러 번 자봤을 뿐더러, 공원에서 돗자리랑 가방 등등을 놓고 다른 곳을 간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저는 친구 집이나 파티에 갔다가 새벽 세 시에 대중교통을 혼자 타고 집에 온 적이 종종 있었는데 전혀 무섭지 않고 잘 왔던 것 같아요. 지하철도 새벽 2시~4시반을 제외하고 항상 다니고, 지하철이 끊기면 나이트버스가 정말 구석구석을 연결해줘서 늦은 밤에도 집에 갈 걱정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뮌헨의 축제
사실 뮌헨하면 떠오르는 것이 옥토버페스트로 가장 유명한 축제지만, 다들 아실만큼 저는 다른 축제를 소개해드리려합니다. 4월 중순부터 열리는 봄 축제(Frühlingsfest)입니다. 옥토베페스트와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데 규모가 작긴 하지만 비슷합니다. 여러 놀이기구는 물론이고 다양한 푸드트럭, 그리고 맥주 텐트까지 다 와서 즐길 수 있습니다. 사람도 적게 오기 때문에 오히려 자리 찾기는 더 쉽습니다. 여기서도 여자는 디른들, 남자는 레더호제라고 부르는 바이에른 전통 의상을 입는데 혹시 가능하다면 입고 참여하면 더 재밌을 것 같아요. 두 축제 모두 맥주를 1L 단위만 팔며 당연히 엄청 비쌉니다. 독일은 팁이 필수가 아니지만 축제에서는 거의 필수라고 하는데, 팁을 주지 않으면 해당 테이블에 웨이터가 영영 오지 않거나 심하면 쫓겨날 수도 있다고 들었어요. 저는 11.3유로의 맥주를 13유로씩 주고 구매했었는데, 아마 옥토버페스트 때는 더 비싸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서도 현금만 받는 것은 물론입니다.
또 옥토버페스트는 뮌헨 내의 양조장만 참여가 가능해서 그 기간 전후로 프라이징, 에르딩 등의 다양한 지역에서 지역축제가 열리니 다들 뮌헨 가신 김에 이런 축제 꼭 경험하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하자면 섣부른 걱정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는 100%를 기대했는데 교환학생이 끝난 지금은 500%로 만족하고, 걱정하고 온 친구들도 지금 안왔으면 어쩔뻔 했어~ 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물론 전혀 다른 곳에 떨어지는 만큼 불안할 수도 있지만, 그 불안함에 경험하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여러분들께, 이 글이 조금이나마 교환학생을 꿈꾸고 기대할 수 있게 만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