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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실재 Oct 31. 2024

이사 (4)

뒷산연대기


9. 차고지


   잠을 미뤄가며 밀린 과업을 끝낸 당신이 7로 시작하는 서울 시내버스를 타게 된다면, 눈을 뜰 때쯤에는 나와 같은 곳을 보고 있을 공산이 크다. 서부권의 대부분의 버스들은 은평공영차고지로 흘러오기 때문이다. 적적해진 버스에서 기사님과 일과의 마무리를 함께하는 우리다. 낭떠러지라고 묘사되던 세상의 끝에 서있는 듯 아마 당신은 아찔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지도 앱을 급히 켜 차고지 이전의 정류장으로 향하는 경로를 탐색한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뒤로하고 유유히 차고지 이후를 향해 걸어갈 것이다. 아침해가 봉산과 만나 드리우는 그림자, 대도시가 작별을 건네오는 곳. <경기도 고양시 향동동>은 새로운 세계이다. 


   향동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한참 거슬러 간다. 유치원 버스가 평소보다 오래 달린다. 낯설고 허름한 시골길로 인도하더니 처음 보는 친구를 태웠다. 신기하게도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이 모두 어렴풋한데 그 영상만큼은 유독 강렬하다. 선명하다고는 할 수 없는 연유로 이곳은 본질적으로 흐릿하다. 시 경계를 벗어나자마자 악셀 페달을 밟기 바쁜 대로 위에서, 탑승자들이 밖을 내다보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고요하고 황량한 잔상뿐이다. 바다안갯속을 항해하는 듯하다. 항로를 벗어났다간 짖는 개를 피해 논두렁 사이를 헤엄쳐야 할 테니 말이다. 그러한 해무의 흐릿함은 숨거나 숨겨두기에 더없이 알맞다. 향동이 '향의 마을(香洞)'일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코에 손을 올리는 사람들을 피해 군부대의 화약향, 저유소의 기름향, 화장터의 잿향, 쓰레기장의 부패향이 흘러든다. 잡초라 불리는 풀꽃들도 향기를 가득 머금은 채 향동의 무의미성에 몸을 숨겨 생존을 궁구한다. 이들도 의미를 가지는 순간이 있었다. 버스가 다니지 않던, 그래서 시내버스와 시외버스의 구분마저 무의미하던 시대에, 할머니는 나물을 캐러 향동으로 가셨다. 그날 잡초는 다발로 갈려나가는 대신, 하나의 반찬거리로서 가족에게 소소한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무의미한 것이 의미를 가지는 순간은 소중하다. 그렇기에 평범한 하루를 기록하고, 아기와 강아지, 때로는 돌멩이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혹여 나와 당신 사이의 공고한 차고지가 소중한 기회를 놓치게 하고 있지는 않던가. 내가 버스에서 내리던 곳은 항상 안쪽이었다. 삶의 조건들은 모두 안쪽에서 충족되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의 끝은 늘 봉산과 산 아래 차고지였다. 하지만 지금 나는 향동을 향하고, 바깥을 들여다보고 있다. 생애의 많은 지점들이 시간 속에서 옅어지기 마련이지만 전환의 지점만큼은 선명하다. 다른 원주민들처럼 결국은 떠날 운명이었다는 듯 우리 가족은 또 한 번 이사를 하게 되었다. 급히 구한 우리의 새 보금자리는 향동에 있었다. 20년 이상을 함께 해온 증산동을 뒤로한, 해체와 재조직의 시간이 다가왔다.




10. 이삿짐


   이른 아침부터 이삿짐센터가 찾아와 소란스럽다. 편의점 토스트로 요기를 하며 아파트 벤치에 나와 앉아있는데, 익숙한 건물들이 새롭다. 교차로가 개천까지 뻗어 빛줄기를 가다듬을 때, 출입문의 대리석에 반사되는 아른거림마저 아름답다. 한결같은 조경수, 놀이터, 주체할 수 없는 욕구의 발생이 느껴져, 빈 몸뚱아리를 이끌고 산길을 딛는다. 수풀이 걷힌 틈으로 보이는 작은 증산동이, 세상을 보기 위해 우주정거장으로 올라서야 한다면 그 필요성을 다시 한번 검토하게 만든다. 산길은 얕았다. 언제든 올라설 수 있던 길이었다. 봉산은 집 뒤가 아니라 마음 뒤에 존재했던 것일까. 뒷산이 곧 앞산이 되었다. 지체 없이 뛰어내린 끝에서 데이지꽃밭의 향과 새 집이 될 아파트들이 수수하게 날 반겼다.


   들어선 새 집은 이삿짐을 다시 올리는 작업으로 똑같이 소란스럽다. 남성 직원들은 가구를 옮겨 조립하고, 여성 직원들은 옷을 개고 음식을 냉장고에 담았다. 투박한 현장 속에서는 각 방의 주인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배치하는, 놀랍도록 교묘한 작전이 수행되고 있었다. 그들은 나의 방에서 어떤 이야기를 볼지 궁금했다. 내 방이 2킬로미터나 자리를 옮겨 와도 여전히 내 방일 수 있는 이유는 그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매 순간 오래된 때가 밀려나며 새 살이 자라나고 있어도 내가 나라고 불릴 수 있는 이유, 이어지는 고전, 내가 산을 넘으며 들고 온 가장 가벼운 이삿짐이다. 어린 나무 대신 창밖을 지키는 봉산의 조각을 바라보며 낯선 땅에서의 새 삶을 생각한다. 차고지에서 버스를 내린 나는 조금은 지겨워진 도로 대신 샛길로 새서 이웃 단지의 놀이터를 통과해 집을 향한다. 잡초로 무성한 운동 코스에는 아이스크림 할인점은 더이상 없지만 이백오십년 된 당산나무를 벗삼은 상가에 들러 가공식품과 음료로 허기를 달랜다. 이곳은 무에서 유를 이룩한, 유리 빌딩과 고층 아파트가 공존하는 신도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판의 이야기를 꿋꿋이 지켜 온 이 동네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를 잘근잘근 곱씹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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