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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우구스티노 Jul 09. 2023

대기업에서 원하는 부서로 옮기려면 울어야 한다

27 │ 조직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지만..



내 경우에는 직장생활 19년 동안 많은 부서를 거친 것은 아니다. 전략/기획, IR, 법제, 재무 등을 거쳤으니 스탭부서 사람 치고는 좀 많이 움직인 듯 보이지만, 3년 단위로 보직을 순환시키는 회사들에 비하면 많은 곳을 거쳤다 말할 수 없다.


IR에서 기획으로. 그리고 다시 IR로 복귀.

처음에 IR에서 기획으로 옮긴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고, 상무님이 지시한 일이어서 바로 옮기게 되었다. 근무지가 너무나도 다른 곳이라서 사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입사한 지 1년 갓 넘은 나에게 위에서 지시하는 일은 당연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서 기획에서 다시 IR로 돌아갈 때는 정말 험난했다. 당시 임원분이 "기획에서 3년 배우면 다시 IR로 보내줄게"라고 하셨으나, 상당한 기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기획팀은 너무 힘들었고 무엇보다 비효율적이라 생각해 왔기 때문에 버틴다는 표현이 맞았다. 하루하루 그저 퇴사를 해야 하나, 좀 더 기다리면 돌아갈 수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도저히 못 참겠다 싶었다.

‘말해보고 안 보내주면 그때 퇴사하자'라는 마음으로 상무님께 말씀을 드렸다. 그때 그 마음가짐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거의 무슨 왜장을 베러 나가는 일개 장수의 느낌이었다. 정말 비장했다. 이제 겨우 만 4년을 채운 주니어로서 비장하지 않으면 전혀 통할 상대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무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 뭔데?”

“상무님, 진짜 죄송합니다. 이제 이동을 하고 싶습니다.”

“어? 다시 IR로 갈려고?”

“네, 3년 다 되어가니까 이제 다시 가고 싶습니다. 가서 진짜 잘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3년 있다가 다시 기획으로 오겠습니다.”

“벌써 3년 다 됐냐?”

“네..”

“너무 당당하네. 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

“아, 상무님. 감사합니다!”


다행히도 상무님과는 그동안 관계가 좋아서였는지, 그리고 3년여의 시간을 버텨서였는지, 조금 고민하신 후에 흔쾌히 보내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그 상무님께 참 고맙다. 주니어에 불과했던 나의 외침을 상무님은 그래도 들어주셨고, "내가 약속 지키는 거다"라고 하시면서 조치를 취해주셨다. 그 덕분에 나는 퇴사하지 않을 수 있었고 다시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IR로 돌아가게 되어 정말 너무 기뻤다.



그리고서는 이전 글에서 나온 이유처럼 회사를 옮기게 되었고, 이직한 회사에서는 부서 이동은커녕 아예 퇴직을 했기 때문에 특별히 말할 것이 없다.


절묘한 타이밍으로 법제에서 자금으로 이동.

부서이동은 세 번째 회사에서 다시 이루어졌다. 세 번째 회사에는 법제팀이라는 곳으로 들어왔다. 내가 원래 지원했던 분야가 IR/공시 업무였는데, 내가 입사하기 직전에 그 업무 자체가 경영지원팀에서 법제팀으로 이관되면서, 나는 법제팀으로 들어가서 IR/공시 업무를 했다. 아니,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들어와 보니 IR 업무는 없었다. 나는 IR에 대한 매력과 혹시나 상장을 할 수도 있는 건가 라는 기대감에 이 회사를 들어왔건만, 상장은 커녕 IR 자체에 아예 생각이 없었다. 거의 대부분의 업무가 공시와 이사회/주총을 준비하고 많은 자회사들의 이사회 주총을 챙기는 Governance 업무가 주된 일이었다.


벌써 세 번째 회사이기도 해서 또 옮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회사에 비하면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괜찮은 조직문화였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었다. 그리고, IR과 전략기획 일만 해보다가 새로운 업무를 배우겠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첫 회사에서 배운 다양한 스킬을 이식시키면서 좋은 칭찬을 많이 들었었다. 특히 governance 업무는 많은 임원들에게 노출이 되는 일이었고, 이사회 안건은 회사 전반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회사 사람들의 얼굴과 업무를 익히는 데에는 좋은 업무였다.



그러나, 1년이 지났을 즈음부터 상당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변호사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고개를 들었다. 법제팀의 업무 중 하나를 내가 하고는 있었으나, 법률 검토 업무가 당연히 법제팀 고유기능이었고 그것을 위해서 부서에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변호사였다. 그래서 어디 저녁에 외부 미팅을 같이 나가보면,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느낌을 받으면서 마치 별동부대처럼 메인이 아닌 일을 한다는 다소의 자괴감이 들었다.


나도 일을 그래도 잘한다고 칭찬받던 사람이었는데, 어떤 업무던 잘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심지어 다른 두 회사에서 어떤 것이든 잘해왔는데 왜 이 조직에서 겉도는 상황을 맞이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너무 옮기고 싶었다.


이미 충분히 셋업은 해놓은 거 같고, 이제 어느 정도 알아서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되었기 때문에, 내가 이 회사에 더 기여할 수 있는 곳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전략기획은 너무 고생만 했었어서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부서였고, 마치 IR처럼 금융시장과 소통할 수 있는 곳에 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자금팀이라는 부서를 떠올렸다.


1년 지난 시점부터 재무부문과의 접점을 만들고자 재무 쪽 사람들과 친분을 더욱 깊게 가져가기 시작했고, 재무 쪽 상무님에게 여러 차례 ‘이쪽으로 옮기고 싶습니다’라고 장난인 듯 진심인 듯 얘기하곤 했다. 그렇게 기회를 보던 중에, 법제팀장님이 상무로 승진을 했고, 법제팀의 차석은 법제팀장으로 승진을 했다.


‘이 때다. 지금이 기회다!’


승진 발표 나고 다다음날이었다. 상무님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이러 저렇다. 여기서는 내가 더 역할을 하고 더 기여를 하고 싶은 열정이 없다.‘


‘팀에 와서 조직이 성과를 내는 데에 상당한 기여를 했고, 이제 상무님 되셨으니까 저는 역할을 충분히 한 거 같다. 이제 보내주십시오.’


‘만약에 안 보내주시면 정말 죄송하지만, 저는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서를 옮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감히 상무님께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경력으로 입사한 지 1년 4개월 만에 다른 팀으로 가겠다고 하는 미친놈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기에 조심스럽긴 했다. 그러나, 여기서 변호사가 아닌 팀원으로서의 상대적 소외감을 집중적으로 얘기했다.


"상무님, 저 보내주십시오. 어차피 상무님 나중에 더 잘되셔서 사업이나 기획 쪽으로 더 올라가셔야 하지 않습니까. 제가 재무 쪽 가서 배워놓고 상무님 그렇게 옮기시게 되면 제가 거기로 가서 진짜 더 잘하겠습니다. 제가 여기 있는 것보다 그게 상무님에게 더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상무님에게 헛웃음을 짓게 했지만, 어느 정도 내 말이 먹히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 부서에서는 보내줄 의향이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받아줄 곳인 재무 쪽 팀장님에게는


"팀장님, 저희 팀에서는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자금 쪽 와서 제가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받아주십시오.“


"오케이~"


그렇게 양 부서 간에 마무리가 되었고, 인사위에서 팀원이동에 대한 결정이 나면서 이동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인사위에서도 경력사원을 1년 4개월 만에 움직인다는 것에 많은 이슈가 있었다는데, 잘 통과가 되었다.


많은 것을 걸고 비장한 각오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동을 못했을 것이다.



한 부서에서 너무 오래 눌러 앉게 된 아쉬움.

그 이후 자금팀에서 4년여의 기간이 지나니까, 나는 이번에는 사업팀을 경험하고 싶었다. 12년을 스탭에서 일했으니 이제는 사업팀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자금 쪽에서 시니어로 점점 성장하고 있었고 업무 경험과 연차가 올라가면서 팀 내에서 많은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받아줘야 하는 사업팀 쪽에서는 이미 충분한 얘기가 되어서 내가 FA로 풀리기만 하면 받아준다는 분위기였는데, 지금 부서에서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김 차장, 1년만 더 해보자. 1년 더 하고 내가 보내줄게.”


‘하….정말.. 작년도 올해도. 맨날 1년이래..’


“네..”


모든 임원이 그렇게 쿨하지 못하다. 아니 대부분의 임원이 보통 자기만 생각한다. 그래서 어디 옮기고 싶다면 ‘그래. 좋다. 내가 보내줄게’ 하는 시원시원한 임원은 거의 없다.


물론 어떤 회사는 사내공모 제도가 있어서 조금 다른 얘기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상사가 스스로 업무에 자신이 없다면 밑에서 일 잘한다는 사람들을 옮겨주려 하지 않는다. 왜냐면 본인들이 조금 힘들어지고 성과가 덜 나온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비겁한.. 자신감이 없는 임원들이 많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부서 옮기는 것은 정말 어렵다.

정확히 말하면 1. 본인이 원하는 부서로 2. 원하는 타이밍에 옮기는 것은 진짜 너무 어렵다. 조직이라는 곳은 개개인을 일일이 신경 써주지 않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어렵다.


그래도 그나마 부서를 옮기려면 적당한 기간을 한 부서에서 보내야 하며, 나의 대체자가 충분히 있어야 하고, 받아주는 쪽에서도 빈자리가 생겨야 한다.  심지어 이 조건들이 맞아도 상사가 부하사원들의 커리어에 관심이 없으면 옮기기 진짜 어렵다.


그런 그들에게 그나마 통할 수 있는 카드는 퇴사를 슬쩍 내비치는 것이다. 자기 조직원이 퇴사하는 것은 그들에게 약점이 될 수 있기에 퇴사한다고 하면 그나마 말이 좀 먹히긴 한다.


하지만,

‘저 보내주십시오. 안 그러면 저 퇴사하겠습니다.‘ 하다가 뭔가 자꾸 꼬이게 되어 진짜 얼레벌레 퇴사까지 가버리는 경우도 있다.


또는 퇴사를 진짜 할 수는 없기에

‘어어.. 이게 아닌데..’ 하면서 말을 주워 담다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반드시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정말 못 버티겠으면 퇴사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부서 이동을 말씀드릴 수밖에 없지만, 갑자기 11~12월에 퇴사 카드를 쓰는 것보다는 5~6월부터 자주 어필을 해야 한다. 아무래도 우는 사람에게 떡을 주는 법이다. 그게 먹고 떨어져라 라는 의미의 떡일지도 모르지만 본인 커리어패스를 그런 식으로라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잦은 어필을 할 때 꼭 주의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예의 바른 언행’이다. 언급할 때마다 그것을 지킨다면 부서 이동의 결과를 떠나서 당신에게 황당한 꼬리표는 남지 않게 될 것이다.





[표지 : '회사에서 부서이동이 힘들다는 것을 표현한 그림을 그려줘'에 반응한 AI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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