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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우구스티노 Mar 20. 2023

이직한 첫날, 밀려오는 후회를 녹여준 그것

22 | 풍운의 꿈을 안고 이직했건만, 이 우울함은 뭐지?



"오빠 어때? 사람들이 잘해줘?"
"어.. 괜찮아.. 다들 뭐 잘해주지..“
”다행이네.. 잘하고 끝나면 전화해~“
”어….”

'아니, 예슬아. 사실은.. 잘못 옮긴 거 같다…‘




첫 회사에서 여러 생각 끝에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하고 옮긴다면 어디가 좋을까 라는 질문에 나는 XX그룹을 내내 떠올리고 있었다. 첫 회사와는 180도 다른 문화를 갖고 있을 것 같은 XX그룹은 행복한 곳처럼 보였다.


특히, 저녁에 대학원을 다니면서 만났던 XX그룹 사람들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나는 매번 눈치 보면서 6시 넘어서 학교로 출발하느라 항상 지각을 했었는데, 휴가였던 어느 날 일찍 학교를 가보니 XX그룹과 ㅁㅁ그룹에서 온 형님들은 이미 다 와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상당히 충격이었다.


'뭐야. 이 회사들은.. 회사에서 일찍 나올 수 있게 해주는 거야? 와.. 좋은 회사들이다!'


학교에서 만난 형님들과 여러 지인들을 통해 XX그룹에 가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커졌고, 나는 퇴사를 결심하면서 XX그룹으로의 이직을 시도했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전략기획'이라는 업무적인 부분과 XX그룹이라는 회사적인 부분에 대한 로망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회사는 쳐다볼 필요가 없었다.


’이직을 한다면 당연히 XX그룹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헤드헌터를 통해 가장 가고 싶은 계열사에 두 번이나 트라이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두번 모두 서류조차 통과가 되지 않았다. ‘에이.. 내 스펙이 많이 부족한가 보다..' 라고 포기하고 있었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헤드헌터로부터 내가 원하는 계열사는 아니지만 'XX회사의 전략팀' 은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XX그룹'과 '전략기획' 이라는 교집합이라면, 지금 이렇게 하루하루 매너리즘과 싸우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단 가보자‘ 라고 마음 먹었다. 더 알아봤어야 했는데 일단 지금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너무 성급했었다.


그리 어렵지 않은 면접을 거치고 최종 오퍼를 받게 되었다. 막상 첫 회사를 떠나려고 하니 망설여진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팀은 자꾸 위축되어가는데, 내 위에 있던 한량 같은 선배까지 있는 현실이 싫었다. 그 때문에 회사생활 자체가 짜증의 연속이었고, 뭔가 자세한 비교분석보다는 ’일단 움직이자!‘ 라는 마음이 컸었다.




며칠간의 휴가를 가진 후에, 드디어 새로운 회사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사실 두 차례 면접을 볼 때도 느꼈지만 건물이나 사무실 내부가 많이 낡았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게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막상 이곳을 계속 다녀야 하는 곳이구나 생각을 하니까 그 낡음이 더욱 진하게 다가왔다. 뭐.. 사무실의 낡고 세련됨이 나의 회사생활에 중요한 판단요소는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의 단점은 이직자에게 없을 수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자리에 괜찮은 웰컴박스가 있었는데도,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이 느낌은 무엇일까.'

'첫날부터 느껴지는 이 허전한 감정은 도대체 뭘까.'

회사의 IT 시스템에 적응한다고 컴퓨터로 여러 가지 해보고 있었는데, 꿔다 놓은 보릿자루의 옆구리에 찬바람이 쉬익 쉬익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


'뭐지? 왜 이렇게 쎄하지?'

'알았다.!'

9시 출근해서 팀장이 나를 자리에 안내해 준 이후로, 나에게 말을 걸어준 사람은 바로 내 옆자리에 있는 사원급 후배를 제외하고는 전혀 없었다. 안 그래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누구 하나 말을 걸어주지 않으니 자꾸 옛날 회사 생각이 난다. 나는 새로운 환경에 매우 잘 적응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해 왔는데, 여기서는 왜 이렇게 허전함을 느끼는 건지..


예전 회사에서는, 자리에서 주위를 보면 전부 다 아는 사람들이고 나와 함께 하는 대화가 아니더라도 여기저기서 대화를 하는 게 들리고, 동기들이나 친한 동료들부터 메신저가 오가던 그 익숙함이 없어져 버렸다. '뭐지.. 그런 것들이 왜 떠오르는 거야..'

그 매너리즘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익숙함으로 여겨져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라는 감정이 코 끝을 찡하게 때린다.



새로운 회사에서는 나만 (자격지심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이상한 텃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풍운의 꿈을 안고 찾아갔건만, 첫 회사와는 완전히 다른 행복의 그룹이라고 생각하고 도전했건만, 나를 환영해 주는 느낌은 결코 없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느낌은 어린애처럼 우울함을 싹 틔웠다.


왠지 모르게 다들 뭔가 경계하는 느낌이었는데, 사실 '경계' 라고 얘기하기에는 너무 오만한 마음이라 감히 조심스럽다. 보잘것없는 나에게 텃세를 부릴 리가 없었다. 그저 OO에서 왔다는 것이, 경력 1년을 오히려 +해서 인정받은 것이 그들은 불편했던 것인가. 거기에 더해서, 전략팀이 갖고 있는 묘한 분위기가 더 문제였던 것으로 생각한다. 팀에서 어떤 비전도 재미도 못 느끼고 있었는지 팀원 모두가 다른 팀으로 옮기고 싶어 하는, 매우 안 좋은 분위기의 팀에 오게 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 대해 텃세를 부리고 싶거나 불편함이 있던 것이 아니라 그 팀의 분위기 자체가 너무 엉망이었던 것 같다. '최악의 팀 분위기에 들어오게 되다니! 이런..'

매우 경직된 문화에 다들 친해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다들 팀은 떠나고 싶어 해서 나에게까지 신경을 써줄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암튼 한량 같은 선배와 같은 팀에 있는 것이 싫어서 옮겼는데, 어쩜 여기 새로운 회사에서도 이런 분위기란 말인가?


환영도 못 받고 팀 분위기도 별로인 게 너무 느껴지는데, 점심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도 전혀 나지 않을 만큼 우울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오후 들어 나랑 같은 직급의 팀원과 처음으로 나눈 대화는,

"최대리님, 아니 OO에서 왜 여기를 오셨어요?"

"XX그룹을 오고 싶었어요. 다들 만족도가 높은 곳 아닌가요?"

"에이. 회사생활에 어떻게 만족도가 높겠어요.. 그리고 계열사마다 다르겠죠. 잘 알아보고 오셨어야죠."

하면서 이상한 웃음을 짓는다.

 

"좋은 회사라고 하던데.. 아닌가요?"

"좋은 회사? 아닌데.. 음.. 모르겠네요."

‘뭐야..’

"뭐, 그래도 열심히 해야죠."


안 그래도 오전부터 우울했는데, 첫 대화까지 이런 식이라니.. 머릿속에 떠올리기 싫은 생각이 자리 잡는다.


이런.. 잘못 왔다!



우울한 팀 분위기에 전혀 기대할 수 없는 환영(welcome), 그러한 분위기가 그저 나에 대한 텃세라고 여기던 나의 옹졸한 마음들이 겹치면서, 옛 회사의 사무실과 동료들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OO 공채 출신으로 잘 나가고 있었는데 나는 도대체 무슨 선택을 한 걸까. 이건 돌이킬 수가 없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옛 회사가 떠오르고 뭔가 돌이킬 수 없는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것 같은 그 시각은 오후 2시 반 정도였다. 잠깐 사무실에서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바로 그때, '지이잉~ 지이잉~' 전화가 왔다. 집에서 첫 출근이 걱정이 되었나 보다.

 

"어.."

"오빠 어때? 사람들이 잘해줘?"

"어.. 괜찮아.. 다들 뭐 잘해주지.."


대답을 하는데 정말 눈물이 날 것 같다. 다소 우스워보였던, '발리에서 생긴 일' 이라는 드라마에서 조인성이 주먹으로 입을 막던 장면처럼 나도 목소리 빼고는 모든 몸짓으로 울고 있었다. 진짜 울어본 적이 거의 없는데 왜 눈물이 날 것 같냐. 인생에서 어마어마한 결정을 했는데 후회는 이미 늦어버린 순간이라서.. 그래서 이렇게 눈물이 핑 도는 것이냐.

 

"다행이네.. 잘하고 끝나면 전화해~“

"어.."


눈치를 못 챘나 보다. 다행이다. 어떻게든 눈물을 참으면서 괜찮다고 말은 해야겠기에, 혹시라도 나의 울먹거림을 들킬까 봐 '어..' 라는 말 이외는 더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팀장님이랑 저녁이라도 먹으려나 싶었는데 팀장님은 6시가 되어도 나타나질 않는다. 사람들은 다들 저녁 먹고 야근하겠다는 분위기라서 나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첫날부터 같이 저녁을 먹고 야근을 해야 하는 건가. 도대체 여기는 나의 사수 같은 사람이 없는 건가.'

'대리 말년차 정도면 알아서 하라는 건가.. 그럴 수 있지.. 그래도 그렇지, 입사 첫날부터?'


그렇게 저녁을 먹으러 따라나서는데, 옆자리 후배가 나에게 말한다.

"대리님, 저녁 드시게요?"

"네, 다들 드시러 가니까 저도 가야죠."

"에이, 오늘 첫날인데 그냥 들어가세요."

"그러고 싶어도 팀장님이 안 나타나셔서 퇴근하겠다는 말도 할 수가 없어요."

"어디 갑자기 식사하러 가신 거 같은데요. 그냥 전화라도 드리고 그냥 가세요."


그런 말을 나누고 있는데, 누가 봐도 잠시 사무실에 들어온 듯한 팀장님이 나타났다. 오늘 오전에 안내받고 처음 보는 팀장님이다.

"아. 최대리님. 들어가세요. 내일 얘기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회사에서 나와서 집으로 퇴근을 해야 하는데, 너무나도 멍청한 짓을 한 것 같은 이 기분으로는 집에 가서 가족을 보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왠지 가족을 보면 눈물이 날 수도 있으니, 어떻게든 기분을 변화시키고 가야 한다.


'일단 걷자. 환영회식이 있었던 것처럼 아예 좀 늦게 들어가자.'


그렇게 회사 바깥을 무작정 걷는다. 명동 주위의 저녁 거리를 걷다 보면, 사람들의 활기에 나 역시 에너지가 채워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저 수많은 인파 속으로 들어간다. 그때만 해도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너무 많아서 명동만의 느낌은 강남과는 상당히 달랐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명동 메인거리를 걷는데도 좀처럼 우울함이 나아지지 않는다. 머리와 가슴 모두에서 '내가 뭘 한 거지?' 라는 후회가 계속 밀려온다.


이직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구나..


어떤 사람이 있을지, 어떤 팀의 분위기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회사만 보고 또는 보상만 보고 움직이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는 선택임을 깊이 깨닫는다.

'회사는 다 거기서 거기이구나.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


그렇게 계속해서 똑같은 곳을 몇 바퀴나 돌았지만 후회가 몸속으로 너무 많이 밀려들어온다. 밥 대신에 후회를 잔뜩 먹어서 그런지 배는 특별히 고프지도 않다. 먹고 싶은 게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딱 하나가 눈에 밟힌다. 어렸을 때부터 보이기만 하면 항상 사서 먹던 달고나(뽑기)이다.

'저걸 먹으면 왠지 우울함이 조금 가라앉을 것 같다.'

엄청 우울한 건 아니었던 건가 아니면 달고나의 힘이 그렇게 대단한 건가. 우울함이 가라앉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다니..


일단, 앉아계시는 할머니 같은 분에게 큰 동그라미의 달고나 2개를 산다. 동그란 달고나를 뚝하고 부러뜨리니까 우울한 마음도 같이 부스러진다. 부러뜨린 달고나를 입에 조금 넣고 녹여 먹는다. 후회스러운 마음이 같이 녹는 듯하다.


'강남에 없던 달고나가 여기는 있네! 회사 나오면 바로 이걸 사 먹을 수 있네!'

'그래, 찾았다. 새로운 회사에서의 첫 번째 장점!'

'그래, 우울함은 날리자. 후회는 이제 그만. 장점을 찾아보려고 노력하자.'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후회 많이 해봤자 우울해지기만 할 뿐이지.. 내가 선택한 거다. 어쩔 수 없다. 그만 후회하자.'

이렇게 마음을 달리 하니 좀 행복해졌다. 달고나가 우울한 마음도 부수고 후회도 녹여주면서, 이제는 가족들을 봐도 눈물이 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다양한 감정 끝에 집으로 돌아가면서, 새로운 회사에서의 첫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나에게 첫 이직은 정말 힘든 경험이었다. 첫날 이후에도 '뭐야.. 여기는 왜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고, 첫회사의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그리워했다. 즐거운 일보다는 후회가 떠오르는 날들이 더 많았는데, 그때마다 나는 달고나를 사 먹었다. 그것이 진심으로 큰 위안이었다. 얼마나 많이 사 먹었는지 모른다….


내가 첫 이직했을 때 첫날부터 눈물이 나려고 했던 것처럼 아마도 처음 이직을 하면 상당기간 우울함을 겪을 수 있다. 학생들에게 전학이 상당한 스트레스인 것처럼, 어른들에게도 이직은 큰 파도와 같아서 파도에 잘 적응을 해서 파도를 잘 타면 좋겠지만 잘 적응을 못하면 파도에 삼켜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첫 이직은 정말 신중해야 한다. 나중에 이직을 할 때 중요하게 판단해야 할 것들을 다시 한번 쓰겠지만, 이직은 절대 신중해야 한다는 점은 우선적으로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혹시 이직을 하고 옛 회사가 떠오른다던가, 너무 힘들다던가 하는 사람들은 너무 우울해하지 않길 바란다. 어차피 옛 회사에서 남아있었다 해도 매일 회사를 험담하면서 지냈을지 모르는 것이고, 또 새로운 회사에서는 얼마동안의 기간을 보내면 또 다른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는 것이니까 말이다.


사람이 미래의 일을 어찌 알겠는가. 그저 본인의 실력을 갈고닦고, 정말 몇 안 되는 좋은 사람들(회사에서 좋은 사람들은 있을지언정 그중에 나랑 친한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과 교류하면서 지내도록 노력해보자. 그러다보면 새로운 회사생활 역시 버틸 수 있고 시간이 흘러 결국 다시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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