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10 │ 뽑아? 말아? 의 경계선은 얼마일까?
결론을 말하기 전에 먼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 글이 당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수는 없다는 점이다. 비겁하지만, 절대 이 글을 보고 “XX%까지 질렀는데 안 뽑혔어요. 책임지세요..” 라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 어떤 법적 책임도 질 수가 없다. 이 글은 경험에 의한 추측이지 팩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의 이직 경험과 각기 다른 문화를 가진 3개 대기업 인사팀의 특성을 감안하여, 혹여 이직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글을 써 본다. 본인 책임하에 행동할 수 없다면, 지금 여기까지만 읽고 이제 그만 나가기 버튼을 눌러야 한다.
나는 두 번의 이직 경험이 있는데, 연봉협상에 있어서 항상 아쉬움이 있었다. 큰 회사 간의 이동에서 연봉을 많이 올리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성과급을 제외하면 연봉이 아주 크게 차이 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첫 번째 이직할 때는 저녁에 학교 다닌 것을 인정해 줘서 연차를 1년 올려주었으나 연봉은 크게 오르지 않았던 거 같다. 두 번째 이직은 성과급이 일정하게 많이 나온다는 당근책에 속아서 기본연봉 자체는 미세하게 오른 수준으로 입사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나의 연봉은 오히려 첫 번째 회사에 있었다면 나의 연차에 받을 수 있는 연봉에 비해 많이 낮다.(첫 번째 회사는 직급이 오를 때마다 점프업이 좀 있는 회사였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아.. 이직할 때 확실히 잘 받았어야 했는데..’ 라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이직할 때 연봉이 중요한 이유는 대부분의 회사에서 입사할 때의 연봉을 베이스로 그다음 해부터 전사 공통 수준의 상승률을 적용하여 연봉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갑자기 '아이고.. 자네 회사 들어올 때 너무 낮게 받고 왔네. 내가 이번에 확실히 다른 동일직급 사람들과 똑같이 맞춰줄게.' 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이직할 때 얼마 연봉으로 입사했느냐가 앞으로 회사생활 연봉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계산을 한번 해보자.
만약 A는 5,000만원을 받고 입사했고, B는 5,500만원을 받고 입사했다고 가정하자. 매년 연봉상승률이 5%라고 가정하여 반영하면, A는 입사한 해부터 5,000만원 → 5,250만원 → 5,512만원 → 5,788만원 → 6,078만원 순으로 올라간다. B는 5,500만원 → 5,775만원 → 6,064만원 → 6,367만원 → 6,685만원이 될 것이다. 첫 해 연봉 500만원 차이는 5년 누적으로 2억 7,600만원과 3억 400만원이 되어 2,800만원 차이로 변한다. 만약 첫 해 연봉 차이가 5,000만원 vs 6,000만원 이었다면 5년 누적금액 차이는 5,500만원이 넘는다!
그러니까 다시 정리해 보면,
첫 해 연봉 차이 500만원 차이는
5년 누적으로 2,800만원 차이를 가져오고,
첫 해 연봉 1,000만원 차이는
5년 누적으로 5,500만원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처럼 첫 해 500만원 차이가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다. '500만원 차이 정도야 뭐. 별거 아니지 뭐. 그대로 해도 되지 뭐.' 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계산을 미처 안 해봤거나, 그 정도 돈은 뭐 정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아니면, 일단 무조건 이직 자체에만 포커스를 맞춤 사람일 것이다. 대부분 이전 회사가 싫어서 옮기는 경우이기 때문에, ‘돈보다 이직’ 에 집중을 한다.
나 역시 그런 식으로 일단 이직이 중요했기 때문에 연봉보다는 움직임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여기를 벗어날 수 있다면..‘
‘여기보다 조금 주는 것만 아니라면 뭐..’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직 자체에 의미를 둔다 해도 너무 위축될 필요가 없다. 회사의 생리를 안다면 우리에게는 (아주 크지는 않지만) 협상의 여지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이번에는 대기업 기준으로 인사팀의 경력사원 채용 프로세스와 담당자/팀장/임원의 사고방식을 생각해 보자.
1) 프로세스
일반적으로 서류를 통과하고 (인적성을 통과한 자에 한해서) 면접을 보게 된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실무자 팀장 선에서 1차 면접을 보고, 임원들이 최종 면접을 본다. 어떤 회사는 임원이 1차 면접에 참석하고 C레벨 또는 CEO가 직접 최종 면접을 본다. 신입사원과 달리 경력사원의 경우, 서류통과부터 최종 면접까지 한 달은 족히 걸린다.
특히 C레벨 또는 CEO가 직접 면접을 보는 회사라면 더욱더 그 기간이 길어지고, 최종면접자에게 최종합격의 통보가 되기까지 또 일주일에서 보름의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최종합격자에게 연봉 등에 대한 오퍼를 주고, 오퍼에 대한 답변을 기다리는데 또 얼추 일주일. 그렇다면 거의 서류통과부터 최종합격자와 연봉협상이 마무리되는 데까지 2달이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오래 걸리는 프로세스가 바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포인트다.
2) 실무자/팀장/임원의 사고방식
일반적으로 경력사원이라 하면, 회사를 옮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다. 아마 십중팔구 그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경우 '을'은 보통 최종합격자이다. 합격자는 회사에 합격했다는 소식에, 지긋지긋한 기존 회사를 떠날 수 있다는 안도감과 새로운 회사에 대한 기대감에 매우 기쁜 상태가 된다. 그 기쁜 상태에서 혹시라도 연봉협상에서 트러블을 일으키면 찍히는 것은 아닐까. 혹여 합격이 취소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불안감이 든다. 그래서 '을'의 마인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인사팀에서는 이 점을 충분히 이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아무리 잘 났어도 당신이 가고 싶어 하는 회사에서는 당신에게 당신의 연차와 직급에 맞는 연봉을 제시할 뿐 엄청난 보상을 제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은 아마도 당신이 기존 회사에서 받았던 연봉보다 비슷하거나 조금 높을 것이다. 그런데 그 조금 높은 연봉이, 새롭게 가게 될 회사에서는 그 연차/직급이 일반적으로 받는 연봉 수준에 불과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대단한 연봉을 당신에게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옮기는 것이 1순위인
'약자'이기 때문이다.
실제 그 경력사원을 필요로 하는 해당팀에서는 사람을 왜 뽑겠는가? 사람이 없어서 뽑는 것이다.(1년 후에 필요한데 그냥 미리 뽑아놓자 하는 경우는 진짜 드문 일이다)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들어와서 업무 인수인계도 해야 하고, 빨리 적응도 시켜서 업무에 투입을 하고 싶을 것이다. 경력사원을 뽑는 해당팀에서는 일단 빨리 뽑는 것이 중요한 사안이다.
자, 다시 정리를 해보자.
기본적으로 경력사원 채용에는 2~3달 가까운 프로세스를 필요로 한다. 거기에 경력사원이 기존 회사에서 마무리하고 옮기게 하려면 한 달 이상의 기간을 줘야 한다.
인사팀은 당신의 '을' 입장을 활용하려 하지만, 해당팀에서는 빨리 그냥 뽑아달라고 얘기할 것이다. 만약에 임원 면접까지 통과한 최종합격자를 취소시키려면 인사팀 입장에서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1차 면접부터 다시 시작하거나 최종면접 2등에게 다시 연락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임원이 1등을 뽑았는데, 2등에게 굳이 연락을 해야 하는 경우는 사실 1등의 연봉을 도저히 못 맞추거나 1등이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안 오겠다고 통보할 때뿐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최종합격자라면 1등을 한 것이고, 당신의 연봉에 이슈가 없다면 2등에게 연락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임원까지 또는 CEO까지 보고가 된 최종합격자를 Marginal 한 연봉 때문에 위에 다시 보고하는 것은 인사팀 입장에서 매우 불편한 일이 되어 버리고, 해당팀에서는 당연히 '그 정도라면 그냥 맞춰주고, 뽑아주세요. 또 절차 진행하려면 너무 오래 걸려요' 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여기서 '그 정도라면'의 그 정도는 도대체 얼마일까. 당신은 도대체 어떤 마인드로 협상에 임해야 하는 것일까. 3가지의 팁을 기억하길 바란다.
1. 시간은 당신 편이다.
당신은 최종합격자이다. 최종합격자가 된 순간 갑을이 바뀔 수도 있고, 바뀌지 않는다 하더라도 거의 동등한 위치에 선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부터 동등한 입장의 마인드를 가져도 된다. 단, 매우 예의 바르게 말이다. 돈은 더 줄 수 있어도 예의 없는 사람은 인사팀에서도 해당팀과 임원에게 보고할 수밖에 없다. 인사팀 채용담당자에게 예의 없게 언행을 하다가, 인사팀 담당자로 하여금 ‘귀찮아도 이 사람은 입사 못하게 해야겠다’ 라는 마음이 들게 해서는 안된다.
새로운 회사에서는 당신을 빨리 오라고 할 것이다. 성과급을 많이 주는 회사라면 일찍 가는 게 좋다. 그래야 일할 계산으로 성과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과급은 일회성에 불과하니까 성과급과 당신이 마지막 재충전할 시간을 저울질해봐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직할 때만큼은 최대한 쉬는 것이 좋다. 회사 생활 하면서 그렇게 오래 쉬는 기간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동하기 전에 충분히 쉬길 권장한다. 나의 생각에 동의한다면 새로운 회사에 일찍 갈 수 있다고 말하지 않길 바란다. 기존 회사에서 안 놓아준다고 당장 움직이기 어렵다는 말을 하면서 시간을 벌어라. 기존 회사의 퇴사 시점에 맞춰 새롭게 가는 회사 직전에 적어도 2주 이상은 꼭 쉬길 바란다.
2. 성과급에 속지 마라. 기본 연봉에 집중해야 한다.
성과급은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다. 아니면, 많이 나올 수도 있고 적게 나올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변수가 심한 성과급이 마치 상수처럼 당신의 연봉에 플러스알파로 계산되면 안 된다. 작년까지 회사의 실적이 엄청나게 나오다가 올해 당신이 입사하는 순간부터 실적이 떨어져서 성과급이 줄어드는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기본 연봉을 많이 받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인사팀에서 기본 연봉 + 성과급 구조로 제시를 하더라도 당신은 최대한 기본 연봉에 훨씬 무게중심을 두게끔 협상하는 전략을 가져야 한다. 기본 연봉에 집중하는 최종합격자는 사실 인사팀이 당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유가 너무 합당하기 때문에 인사팀에서도 마냥 거부하기 어렵다. 인사팀 채용담당자는 생각할 것이다.
‘아, 이번 합격자는 만만치 않네. 협상이 쉽지 않겠군..’
3. (이번 글의 핵심으로) 연봉 카운터오퍼는 5%가 베스트, 7%가 마지노선이다.
카운터오퍼라는 말을 잘 곱씹길 바란다. 당신의 기존 연봉 × 5~7%를 더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아마도 새로운 회사에서는 당신의 기존 연봉 대비 조금 상승된 수준의 연봉을 제시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6,000만원 연봉을 받고 있었다면, 새로운 회사에서는 6,300만원 정도를 연봉으로 제시할 수 있다. 그 제시를 받은 순간부터가 중요하다.
매우 예의 바르게, 6,300만원이라는 오퍼에 대하여 5%를 더한 6,600만원 정도로 카운터오퍼를 날려보면 좋다. 5% 카운터오퍼는 인사팀 채용담당자 선에서 안된다면, 인사팀장 선에서 충분히 받아들일 수도 있는 수준이다. 혹시 임원 선까지 올라갈 수도 있는데, 임원 입장에서 5% 정도는 '그 정도는 받아줘' 라고 할만한 수준이다. 왜냐. C레벨에게 보고하기 싫기 때문이다.
6,300만원에 7%를 더한 6,740만원도 사실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종면접을 C레벨 임원으로부터 받았던 회사라면 7%까지도 질러볼 수 있다. 지른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5%는 아주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닌데, 7%는 부담이 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인사팀 쪽에서 또는 경력사원이 필요한 해당팀 쪽에서도 '이 합격자가 조금 욕심이 있네.' 라고 생각할 만한 기준점이 7%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C레벨에 '1차 오퍼를 냈는데, 7%를 더 달라고 해서 검토 중입니다.' 라고 보고하기에는 상당히 애매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계선이 바로 7%이다.
그래서 정리하여 추천컨데, '너무 욕심쟁이 느낌을 안 주고 싶다. 혹시라도 이랬다가 불합격을 통보받으면 너무 힘들 것 같다' 라고 생각한다면, 5%가 적정할 것으로 판단된다. 7% 카운터오퍼는 「C레벨 최종면접 + 당신의 기존 회사가 충분히 네임밸류가 높은 회사」 의 조건을 만족한다면 지를 만하다고 생각된다.
만약 카운터오퍼 5%가 수용이 되어 6,600만원을 받게 된다면, 당신이 기존회사에서 받던 6,000만원 대비 10% 연봉 상승이 있는 것이다.(대기업 간의 이직에서 연봉 10% 올리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연봉 상승이 5년 누적으로 하면 격차가 훨씬 벌어진다는 것은 위에 언급된 대로 중요한 포인트다.
법적 책임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으나, 이 글을 보고 실행했다가 실패하는 사람이 나올까 봐 우려스럽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사실 이보다 훨씬 큰 연봉 상승률이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 by 사람, 케이스 by 케이스 일 것이다.
따라서 카운터오퍼 5~7%라는 숫자에 매몰되기보다는, 경력사원 채용에 있어서 회사에서의 프로세스가 어떤지, 가고 싶은 회사 내부 사람들의 Dynamics가 어떤지 알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특히 대기업의 경력채용 프로세스는 분명 이 글과 매우 비슷할 것이다)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협상에 있어서 열위에 서지 않을 수 있다.
최종합격 문자나 전화를 받으면, '아, 감사합니다.' 라는 마음이 든다. 그 이후에는 ‘일단 옮기는 게 중요하다’ 라는 마음으로 '을' 입장을 갖게 될 수밖에 없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2번의 이직에서 연봉협상 실패와 다년간의 면접관으로서 경력사원을 채용해 본 경험을 혼합하여 생각해 보면, 최종합격자는 '을'의 입장을 갖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최종합격이 된 순간, 당신은 더 이상 ‘을’이 아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회사내부의 사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백승에 가깝게 되도록 전략적으로 연봉협상에 임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협상에 있어서는 반드시 예의 바른 언행이 있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실행에 대한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점이다.
이직하는 수많은 직장인들이여, Good Luc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