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우구스티노 Oct 10. 2023

정규직의 불만은 계약직의 OOO이다

30 │ 계약직과 정규직은 어디서부터 차이가 난 걸까



내가 처음 회사를 이직했던 2011년 말 즈음까지, 나는 '계약직'이라는 표현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전까지는 정직원, 계약직이라는 구분을 몰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아마 너무 주니어라서 그런 신분의 차이를 몰랐거나 관심이 없었을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실제로 나의 첫 회사에는 계약직이라는 용어 자체가 거의 안 쓰일 정도로 계약직이 매우 드물었다.


첫 회사에서는, 비서직도 사무지원직도 계약직이 아니었다. 그저 직급밴드가 달랐을 뿐, 다들 정직원이었다. 지금도 그 회사는, 그 그룹은 여전히 그런 시스템인지 모르겠으나 그때는 분명히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졸 사원(G1), 전문대졸 사원(G2), 대졸 사원(G3)의 구분이 있었을 뿐 정직원과 계약직의 차이는 아니었다. 다만, 고졸사원 또는 전문대졸 사원이 대리(G4)가 되기 위해서는 대졸사원(G3)으로 시작한 직원들에 비해서 오래 걸리긴 했다. 대졸사원(G3)이 G4가 되려면 4년이 걸렸는데, G2로 시작한 친구들은 그보다 2배 이상 가량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천장을 아예 막아놓은 것은 절대 아니기에 G1, G2 친구들의 절망감이 별로 없었던 듯 하다.


그래서, 나는 계약직의 개념을 잘 몰랐다.

그러다가 첫 이직을 했는데, 거기서 같은 부서에 사무지원직 여직원이 한 명 있었다. 첫 회사와 마찬가지로 으레 G2 정도 되는 친구이겠거니 했는데, 팀원들이 대화 중에 '계약직'이라는 표현을 쓰길래 '응? 계약직? 예전 회사랑 다르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계약직의 존재를 제대로 알게 되고, 얼마 못 지나 두 번째 이직을 한 곳에는 계약직이 정말 많았다. 비서들은 거의 모두 계약직이었으며, 비서가 아닌 직원들 중에서도 몇몇은 계약직이 있었다. 전체 인원수 대비하면 5% 이상이 계약직인 것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노동 정책이 2010년대 들어서 뭔가 바뀐 것도 같은데, 사실 그런 부분에 무지한 나로서는 계약직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안타까웠다.




두 번째 이직을 한 세 번째 회사에서 10년을 넘게 보내면서 많은 계약직들을 만났다. 우리 부문에는 계약직이 2명 정도가 항상 함께 했었다. 그 계약직들은 2년 또는 4년에 한 번씩 바뀌었다. 어떤 회사에 소속된 체로 우리 회사에 파견되어 2년, 그리고 괜찮다 싶으면 우리 회사가 직접 계약직으로 채용하여 2년을 더 근무하게 하는 시스템이었다.


비서들을 포함한 여러 계약직을 만났고, 그중에서 열심히 일하는 친구들에게는 나름 잘해주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은, 내 자식들 또는 내가 잘 아는 지인들이 충분히 겪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공감대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열심히 일하는 한 친구가 계약기간이 끝나서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 같은 나부랭이가 뭘 해줄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저 안타깝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 친구는 새로운 회사를 찾을 때, 무조건 정규직을 원했다. 계약직이더라도 성과급을 포함하면 다른 회사에 비해서 다소 괜찮은 연봉이었는데, 그런 성과급을 포기하고 연봉을 낮추더라도 정규직을 희망했다.


그것은 연말마다 또는 2년에 한 번 돌아오는 계약 시즌마다 불안하고 짜증 나는 상황이 싫어서일 것이다. 연봉이 좀 낮아도 좋으니 안정감과 소속감을 갖고 싶었고, 나 혼자 다른 포지션인 것 같은 그 소외감을 떨쳐내고 싶어서일 것이다.


계약직으로 시작하여 또 계약직으로 옮기는 설움찬 그 루프를 그만하고 싶어 했는데, 다행히도 그 친구는 새로운 회사에 정규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아는데, 그 모습에서 잘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고 결국 좋은 결과가 나왔다.


언젠가 나에게 새로운 직장의 명함을 건네주는데, 환하게 웃으면서 전해주는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절실했던 것만큼 그 자리가 좋았을 것이고, 이제 불안감을 떨치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듯하여, 더욱 응원하고 싶었다.


명함을 함께 받은 한 동료가 나에게 말한다.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얼굴이 밝아졌어요."

"네, 그래 보이네요. 잘됐어요. 정말.."


"팀장님, 여기 계약직 친구들 너무 조금 받아요. 아세요?"

"아, 잘 몰라요.. 그냥 좀 적게 받는다는 정도만.."

"아이고, 너무 적어요. 참 안타까워요."


"휴.. 회사원들 중에 회사가 맞지 않는다고, 정말 재미없어서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자리에 간절히 가고 싶은 어떤 누군가에게는 그런 불만조차 그저 부러운 소리겠죠..

"그렇죠.."

“어떤 친구들이 재미없어하는 건 그거대로 이해가 되고, 또 어떤 친구들은 부럽고 서러운 마음 갖게 되는 것도 너무너무 이해가 돼요.“

“그러게요, 왜 이렇게 형태를 나눠서 마음 아프게.. 도대체 어디서부터 차이가 났을까요?“





정규직과 계약직..

正規 직원, 규정에 맞는 정상적인 상태의 직원이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계약직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인가. 그래서 계약직이라는 표현 자체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누구는 정직원, 누구는 계약직이 되는 차이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고등학교 때 공부를 좀 더 잘했다는 이유로 어떤 사람은 좋은 대학에 갔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한 대학에 갔거나 대학을 가지 않았다. 좋은 대학을 나왔더라도, 누군가는 스펙을 잘 쌓고 면접을 잘 봐서 좋은 직장에 갔고 누군가는 어떤 연유로든 잘 풀리지 않아서 정직원으로서의 발을 내딛지 못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시작지점에는 겨우 이 정도의 차이로 정직원과 계약직이라는 다른 포지션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 사회에 나왔을 때는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그 차이는 생각보다 경제적, 심리적으로 짜증 나고 우울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계약직인 친구들이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업무역량이 다소 떨어지는 친구들도 있고 꺾여버린 의지가 다시 올라오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 그러나,  정직원 이상으로 충분히 일을 해낸다던가 또는 일을 잘 해내려는 열정이 보이는 친구들도 있다.


사실 정규직들의 일이라고 해서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이 있을까. 큰 회사라 할지라도 대부분의 업무는 어떤 대학을 나왔던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일머리와 센스라는 것이 대학을 따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에 계약직 친구들이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계약직 친구들 중에서 가끔은 상당한 애사심이 있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런 친구들은 정말 잘 됐으면(정규직으로 채용이 됐으면) 좋겠다. 나는 결정권자가 아닌 나부랭이에 불과하여 지금 이 회사에서의 그들의 성공(정규직으로의 채용)을 보장할 수 없지만, 어떻게든 그들이 잘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기회가 생길 때 감히 그들에게 꼭 얘기한다.


"승준아, 다른 건 몰라도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영어는 꼭 공부하면 좋겠다. 지금 네가 가진 것에서 영어 하나만 제대로 채워도 충분히 잘될 수 있어. 영어가 힘들면, 뭐라도 자격증을 꼭 따는 게 좋아. 그런 것들을 가지고 다른 회사에 계약직 말고 무조건 정규직으로 가. 좀 작은 회사라도 그렇게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리고 그 후에 거기서 경력 쌓고, 그러면 그때 다시 훨씬 좋은 회사 정규직으로 이직하면 돼. 너는 기본적으로 일을 잘하고, 센스도 좋으니까 충분히 잘될 거야."


그들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율좌석제 시도가 결국 실패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