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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Dec 16.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날 수 없는 건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

2023년 한 해가 끝나는 달.


11월 30일도,

12월 1일에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 사이 잠시 눈이 내리긴 했지만

비인지 눈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기에

투덜거리다 보니 반나절만에 그쳤다.


세상이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으로 도배되었고

유튜브 알고리즘엔 캐럴 모음이 간간이 보인다.


 그러다 새벽에 잠을 설치고

느지막이 확인한 바깥은

언제부터 쌓인 건지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눈꽃이 피었고 온통 하얗게 변했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지금 역시

창 밖으로 굵은 눈송이가 우수수 떨어지는 풍경.


나만의 방충망 뷰도 나름 운치 있다.


부지런한 어떤 이들은

12월 땡! 하고 종 치자마자

한 해를 돌아보는 의식을 치렀다.


흔히 말하는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지난 11달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칭찬할 것은 칭찬하며


남은 한 달과 다시 돌아올 한 해를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고자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그 기록을 남긴다.




 나는 1일도 31일도 아닌

어중간한 16일 오전,

내리는 눈을 보 한 해를 뒤돌아봤다.


어쩌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끊임없이 몰아치는 한 해였기 때문에

미루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현재진행형'인 일들도 간신히 버티는 마당에

다시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고 하면

적당한 변명이 될 것 같다.


 별안간 나의 반백수 시기 중 7,8월은

깊은 고민과 무기력함으로

여름 바다의 눈부심도 느낄 새가 없었다.


마치 복불복 벌칙이라도 받는 것처럼

어떤 동아줄이든 잡고 바닥으로 처박고 나면

다시 일어나서 다른 줄을 더 꽉 쥐었다.




 수 없는 추락을 반복하며 내게 남은 것이 있을까?

사실 가까운 지인 어느 누구 조차

'추락'과 나를 연결시키지 않을 것 같다.


늘 실패와 좌절이라는 불안감을 견디기 위해

어떤 분야든 새로운 동아줄을 기다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는 뒷 목이 뻐근해지기도 전에

새로운 일들을 붙잡았고

그 끝은 '재수 없는 일'로 분류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어쨌거나 경험이 되어

유용하게 쓰이기도 했다.


 중간중간 성질이 변한 일들의 분류를 위해

나의 서랍장을 정리하다 보니 눈에 띈 것이 있다.


언제나 '내가 사랑하는 것'에 분류되어

어느 한 장 다른 곳으로 섞이지 않았던 것.


마치 짝사랑과도 같은 '글'이야말로

단 한 번도 놓은 적 없이

어느 형태로든 러브레터를 보냈다.


블로그, 공모전, 출판, 작사, 마케팅, 첨삭 등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용할 때도

어떤 불편함도 없이 즐겁게 임했다.


종이책을 고집하던 내가

변한 생존방식 속에서 선택한 것은 '전차책'이다.

종이를 넘길 때의 소리, 내지의 질감,

중고 책방의 냄새 등

감성이 고픈 것이 아니라 글이 고팠다.


함께하는 드립커피도 나의 소소한 행복 중 하나다.


항상 충분히 소화시키고서

늘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썼다.

(그렇다고 해서 똥을 싼 건 아니지만,

모든 글이 똥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소화한 글과 현재의 감정들을 배출하고 나면

언제나 마음이 평온해졌다.


동시에 다른 좌절을 겪더라도 대수롭지 않았다.

잠시 몸을 뉘어 휴식하며

숨통 트일 수 있는 일이 무엇인 지 알았기 때문에.


내가 그동안 사랑했던 것은

시간이 지나면 형태가 변하거나

그나마 길게 지속될 경우

2년 정도 지나면 애증의 관계가 되었다.


하지만 글은 중학생 때 용돈을 모아 샀던

다이어리를 시작으로 여전히,

아니 더 열렬히 사랑하는 중이다.


어려움과 힘듦이 지속되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이 들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만큼은 떠날 수 없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면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지만


각자의 글이자 동일한 무언가로 엮여 함께

비슷한 사랑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음을 느낄 때, 행복하다.


나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 미묘한 감정을 선사하고

사랑의 감정을 공유한다는

짜릿함을 선물하고 싶다.


나의 2024년 계획은 이걸로 충분하다.


Image by cocoparisienn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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