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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Mar 01. 2024

내 것이었던 적이 있던가

소유에 관하여

대단한 무엇이라도 숨긴 것처럼

노트북과 보부상 가방을 바리바리 챙겨

추천받은 카페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따뜻하고

사람도 그리 북적이지 않은 

이곳이 맘에 들었고


건물과 가장 가까운 주차 자리가 비어있어

나이스를 외치며 가뿐하게 후방주차까지 완료!


직접 원두를 로스팅해서 커피를 내리는

로스터스 카페이기에

커피 맛은 어느 정도 보장되었을 거란 기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어디 앉아야 좋을까 싶어 둘러보다

노트북을 쓰기 편한 자리에 앉았다.


사실 모든 자리의 테이블 마음에 들어 고민했다.


콘센트가 적절히 배치된 벽면 테이블을 위주로

모두 4인석인 이 넓은 공간을 선택해서 앉을 수 있다니..


커피 한 잔을 시키더라도

사장님께 죄송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고


사실 케이크를 먹고 싶었지만

최근 장염으로 인해 음식을 조심하는 중이었기에

모든 상황이 적절히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정돈된 인테리어 톤, 깔끔한 화장실,

소파의 푹신함과 대낮의 햇볕이

유독 따사로웠다.




나는 노트북의 전원 버튼을 눌렀고

푸른 들판이 펼쳐진 바탕화면을 마주했다.


그리고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었는지 잊어버렸다.


눈앞에는 부팅된 노트북의 화면이 대기 중인데

정작 나는 강제종료된 것처럼

바사삭하며 꺼진 것 같았다.


'일하는 글은 쓰기 싫었는데..'

'개인 원고 작업을 해야 하나?'

'후기 글을 써야 하나?

이런 기분이면 조금 의욕이 날지도?'


내게 물질적인 풍요를 돕는 일에 지쳐

물질적 보상을 통해 충전이 필요했던 나는

막상 제대로 쓸 글이나 글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끌어당겨 앉은 의자가 무색하게 말이다.


잠깐 멍- 한 상태를 유지하다가

카페인 한 모금 마시며 재부팅이 되려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마주한 것은

'요상한 허무주의'인 탓에

이 글의 제목이 탄생했다.



사실 그렇다.


내 것이라 생각했던 차,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흰색 테두리,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

아메리카노 한잔,

마음에 드는 내 자리,

얼마 전 공방에서 구매한 갈색 머리끈까지.


단 한 가지라도 온전히 내 것인 것은 없었다.


내가 어떤 노력이나 대가를 지불하고

잠시 빌려와 큰 제한 없이 사용하고 있을 뿐

결국 내게 영원히 종속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언젠가 나의 제닝이는 중고차 매장에 넘겨

누군가에게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테고

혹은 내게서 수명이 다 해서 폐차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더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고심 끝에 골라 앉은 이 테이블은

내 것이 아니고 내 자리도 아니고


내가 일어나는 그 순간부터

빈 테이블이자 카페의 요소 중 하나인 셈이다.




내가 번뜩이며 메모해 둔

혹은 하루에도 지나치는 많은 생각들 중

온전히 내 것인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오고 가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

미래에 대한 고민,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한 상상,

사회생활을 포함한 수많은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들.


깨달은 바를 토대로 글을 쓰려고 하면

그 당시의 느낌은 온 데 간 데 없고

기껏 메모해 놓은 단어나 한 줄의 문구로는

당시 내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었던 적도 많다.


가까스로 적어놓은 몇 줄의 이야기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그럴듯한 문장의 나열뿐이다.


'님'이라는 단어에 점하나를 찍어 '남'이 되듯이

비슷하지만 다른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꾸며내기 바빴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박수받을 수 있을진 몰라도

스스로는 안다. 


그 생각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님을.




그럼 온전히 내 것인 것은 무엇일까?


당신에게

'눈을 감고 온전히 내 것인 것을 떠올려 보시오'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아마도 열에 여덟쯤은 '나'라고 대답할 것 것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마지막 그 순간까지 나와 함께이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오롯이 나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Only one'을 자기 주문걸 듯

소중히 여기자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나를 스쳐왔고 지금도 스치고 있으며

앞으로도 다가올 많은 무언가를 어떻게 여겨야 할까?


고민했다.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쌀 한 톨만큼의 크기도 되지 않는 이 미련을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다시 고민했다.


내게 있는 모든 것과

내게 올 모든 것을 손님 대하듯 대하는 것.


이조차도 부부상담 솔루션 프로그램에서 본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다.


환영하는 손님만 손님으로 대하지 않고

늘 오는 단골손님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불청객 같은 손님은 매몰차게 내쫓지 않듯


그 모든 것에게 친절한 주인장이 되어

손님대접 해주는 것이

어느 것도 온전히 가진 적 없는 내게

가장 어울리는 태도인 것 같다.


더 잘해주지 못해 아쉬운 마음 들지 않게

언제 떠나더라도 미련남지 않게

다시 마주하더라도 환하게 웃으며 안아줄 수 있게

'Special one'으로 여기기로 했다.


사람, 생물, 무생물을 구분 짓지 않고

내게 온 손님을 손님 대하듯 하는 것은

지당하고 당연한 태도라는 걸 다시 상기해 본다.


이곳, 나의 서랍 역시

나의 특별한 '기록의 공간'이므로

조금 더 소중히 대할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방문해 준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어서 오세요, 오시는 길 불편하진 않았나요?"




24.03.0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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