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유 Feb 08. 2024

행복의 나라

“미국 살아서 좋겠다”

“부럽다”


큰 의미 없는 안부라는 걸 알지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성급히 다른 화제로 돌리거나 대충 둘러대고서 상대방의 안부를 되묻곤 한다.


한국과 미국, 때때로 제3국을 넘나드는 생활을 한지 벌써 7년이 되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석사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에 처음 도착했던 2017년 여름만 해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될지 몰랐다. 어쩌다 보니 박사 과정에 등록했고, 어쩌다 보니 베트남에서 잠깐 일 했고, 어쩌다 보니 한국에 다시 돌아가 정착한 듯싶었으나 또 어쩌다 보니 미국 회사에 취업했다.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미국에 사는 게 얼마나 좋은지, 비자를 연장하거나 영주권을 받아 더 오래 미국에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상한 소외감을 느꼈다. 나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미국에 온 것이 아니라 그저 매 순간 내 앞에 놓인 선택지 중에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한 결과로 여기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선의 선택이 나를 인도한 곳이 우연히 미국이었을 뿐이다. 적어도 오늘까지는 말이다. 혹여 내일 더 좋은 선택지가 나타나서 한국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다른 나라로 갈지 모르는 일이다.


단 한 번도 미국이 좋다거나 해외에 사니 좋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냥 여기서 사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행복과 국경을 연결시키는 언어는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외국어처럼 들린다. 치폴레를 먹거나 미세먼지 없이 공기가 맑은 날이 이어지면 “미국 좋다”라는 말이 무지성으로 내뱉어지긴 했으나 그 건 음식이 맛있고 공기가 상쾌해서 기분이 좋다는 감상이었지 미국이 좋다는 선언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미국의 단점들이 피부로 와닿는 날이면 최선이라 믿었던 내 선택들이 과연 최선이었는지 의심하곤 했다. 가족과 오랜 친구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일상의 모든 불편한 순간들까지. 출근길에 지하철 플랫폼에 서 있을 때면 수상한 사람 근처에 서지 않고, 몸이 슬슬 아파오면 “아프다”는 느낌 보다 병원비 걱정에 “망했다“라는 생각이 앞서고, 회사 사람들이 주고받는 농담을 이해하지 못해서 억지웃음을 짓거나, 모두를 향한 불친절함을 나를 저격한 인종차별로 오해하게 될 때. 한국이라는 익숙한 이불속이 그립다.


미국에 거주하지만 이곳이 싫지도 좋지도 않다.

그저 작은 꿈과 인내, 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철없는 기대를 구겨 넣은 짐가방을 챙겨 몸만 여기로 옮겨왔을 뿐이다.


나는 어디에 살아야 행복할까를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돌아보니 그 질문은 이미 오답이었다. 행복이 속한 나라는 없다. 한국을 떠나면 행복할까, 한국으로 돌아가면 행복할까 수 없이 고민하고 실행도 해봤지만 그 질문의 끝엔 어둠 속에서 나를 무심히 바라보는 존재만 있었다. 너의 질문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정직한 눈빛이었다.


행복이 속한 곳은 어딜까.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 쓰겠다는 다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