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릴 결심
나는 상체가 하체에 비해 가늘고, 특히 상대적으로 팔은 더 가늘어 말라 보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굵은 종아리에 비해, 나의 팔은 가늘고, 근육도 별로 없고 무거운 것도 드는 일이 없어서 그런지 꽤나 힘을 못 쓰는 팔이기도 하다.
몇 주전 우연히 알고리즘으로 흘러들어 간 릴스에서 영상의 주인공이 철봉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 가볍게 자신의 몸을 놀리는(?) 그분의 팔을 비롯한 몸 전체를 휘감은 근육을 보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부러웠다.
생각해 보니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루었지만,
있는 그대로 남에게 고스란히 주고 싶어도 절대 주고받을 수 없는, 교환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운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지성, 통찰력, 겸손한 성품, 뛰어난 외국어, 몸에 붙어 있는 근육, 그 외에도 내가 모르는 다양한 것이 있겠지만,
외양과 내면에 그 사람의 구성하는, 남에게 절대 줄 수 없는 무엇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부러움과 별개로 영상 자막에 실린 그분의 멘트; 인간이 매달릴 것은 철봉이라는 말도 인상 깊었다.
평소에 옷 건조대로 쓰이는 우리 집 철봉대가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시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매일 야근은 아니지만, 평일을 기준으로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이런저런 잡다한 여러 가지 일을 마무리하면 거의 11시가 넘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피로에 쩔어 물먹은 솜뭉치처럼 몸이 무거울 수 밖에 없는 시간임에도
오롯이 나만 소유할 수 있는 근육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은 나를 매달리게 만들었다.
영상을 본 날을 기점으로 거의 매일 밤, 식구들이 잠이 들어 있을 때 철봉에 매달린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에 해도 좋으련만, 하루의 마지막 루틴으로 고착화될 것 같다.
첫날 목표는 30초 매달리기였다.
며칠 전에 1분을 넘겨 기분이 좋았는데, 오늘은 40초 만에 내려왔다.
상대성의 원리가 작동하는 시간은 역시나 철봉에선 천천히 흐른다.
그저 매달려 있어야 한다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없고, 잠시나마 호흡에 집중하게 된다,
내 몸을 가는 양팔과 두 손으로 매달고, 내 존재의 무게를 오롯이 느끼는 얼마간의 시간.
뭔가 절박하게 매달리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기분이 좋아진다.
같이 사는 고양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인간이 안간힘을 쓰며 매달리는 것을 지켜본다.
고작 며칠 동안 했을 뿐인데, 오늘 저녁에는 남편에게 팔 근육이 단단해진 것 같다며 자랑을 했다.
고맙게도 수긍을 해준다. 더 신이 나서 계속 꾸준히 하고 싶어 진다.
굵은 종아리만큼 팔도 그만큼 굵어지게 매달릴 결심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