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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명 고민중 Apr 20. 2024

로기완을 만났다, 뒤이어 벨기에가 찾아왔다

En Belgique, ils parlent français.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넷플릭스에 볼 수 있다는 영화 ‘로기완‘과 그 원작에 대한 이야기를 평일, 아마도 최근의 어느 월요일? 점심 식사 후 차담에서 들었다.


올해는 책을 읽으면 조금이라도 기록을 하고,

막상 기록을 못하고 넘어가더라도 자책하지 않고

꾸준하게  읽자는 것이 몇 가지인지 정리되지 않은 목표 중 하나여서 드라마가 된 소설은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참 쉽게 들었다.


바로 남편에게 중고라도 좋으니 소설을 주문해 달라고 했고, 어느 날 저녁 집으로 배송된 조해진의 장편 ‘로기완을 만났다’가 퇴근 후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으려는 중(이었을 것임)에 내 방 책상 위에 포장 없이 서점 매대 베스트셀러 도서처럼 놓여 있어서 반갑기도 하고, 내 책을 주문해서 배송을 기다렸다 포장을 제거하고 내 눈에 바로 띌 수 있도록 배려한 남편이 고마웠다.


하지만 책을 발견했음에도 바로 책 표지를 열거나

살펴보진 않았다. 그저 그 소설을 언제고 읽으면 되겠다. 아니면 ‘곧 읽을 것이니 그대로 놓여 있던 대로 두자‘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올 초부터 독서를 완료한 몇 권의 책 중 기록한 것만 내 인지의 영역에서 언제든 바로 떠오르는 것을 보니, 방법도 중요하지만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도 조금 전부터 정리하면서 다시금 스스로 깨닫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 일이지만이 소설도 언제부터 읽기 시작했는지는 바로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이다 보니, 매사 주의를 집중하지 않으면 그저 흘러 보내기 일쑤어서 기억이 사라지면 흔적조차 없던 일이 되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니 기록에 대한 강박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하나씩 늘어나고 있다. 설마 하면서 내지를 열었더니 ‘2024. Avril. 1’이라 연필로 적혀 있었다. 읽기 시작한 날을 확인할 수 있어 반가웠다. 4월 7일 일요일인 오늘 새벽에 갑자기 눈이 뜨여서 몇 페이지 남지 않은 ‘로기완을 만났다’를 마저 읽고 조금 전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어떻게든 소감을 적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내용과는 관계없지만  이 소설이 발행된 지 몇 년 지나 한 참 뒤인 2019년 10월 어느 날 나는 벨기에를 방문한 적이 있고 한 2-3일 머물렀나? 그런 다음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향했던 적이 있다. 짧은 며칠간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 말고도 몇 군데를 돌았는데 내가 스스로 세운 계획으로 방문한 곳도 아니고 한 무리의 일행으로 다녀왔다 보니 당시 사진을 보거나, 떠올려도 정확하게 어디를 다녀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소설을 읽는 동안 내가 벨기에에 갔었고, 책을 다 읽고 난 후 브런치에 글을 작성하기 시작하면서 벨기에를 방문한 당시의 상황들이 꽉꽉 채워진 채로 기억저장고에 한참 동안 갇혀 있다가, ‘로‘라는 열쇠로 우연히 문이 열렸고, 그 내용물이 한꺼번에 바깥으로 빠져나와 버린 것처럼 같이 있었던 사람들과 장소, 물건, 상황들이 연달아 떠오르고 있다.


당시 일정 중 약간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고, 그동안 브뤼셀 시내를 돌아다녔으며, 본래의 큰 무리와는 떨어져서 뜻이 맞은 4명이 함께 유럽연합 본부를 다녀왔다. 함께 한 일행 중 지금은 누구와도 연락이 잘 되는 이 없지만 기꺼이 같이 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기념품을 사고 커피도 마시던 그때의 여정이 떠오르게 되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이나 소설 속 화자가 ’로‘의 일기내용을 따라서 다녔던 곳 어느 곳이든 내가 들린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은연중에 지명이나 장소에 유의하면서 글을 읽어 내려갔지만, 겹치는 곳이 발견되거나 떠오르지는 않았다.


’로‘의 일기를 쫓아가며 3년 전의 로기완의 행적을 복기하는 작중 화자와, ‘로’가 벨기에서 머물다가 마침내 영국으로 가서 자신의 삶을 꾸리기까지 과정에서 도움을 준 박, 작중 화자가 벨기에로 오기 전까지 오고 난 이후에도 쉼 없는 상념을 하게 만든 전 연인이자 동료였던 피디와 작중 화자인 그가 마음의 가책을 안고 있던 윤주까지 작품에 등장하거나 언급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삶의 고통과 외로움, 사랑으로 인한 상처를 안고 있었고 그런 결핍 등이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회복하려는 원동력이나 속죄의 의미로서 다른 이를 돕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소설을 읽는 동안 탈북인의 현실, 북한이 처한 상황이나 작중화자의 번뇌, ‘로’를 만나러 가기 전까지 과정이나 에피소드에 집중하면서도 큰 줄기가 되는 내용보다는 줄기로 이어지는 일부 내용에서 내 일상을 떠올리게 되었고, 몇 해전 여행에서 방문했던 벨기에를 떠올리게 되었다. 한 권의 독서를 마치고 책을 덮고 난 이후 작정하고 기록을 하는 것도 새로운 습관을 작정하고 만드는 것이라 어색하고, 소설의 배경을 통해 내 생각과 기억이 줄줄이 이어 나오는 경험도 새롭다. 벨기에를 방문했던 때인 약 5년 전, 2019년이라는 내 인생의 어떤 이정표 같은 시기를 보내고 그 이후로는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르고 헤매듯이 살아온 것 같다. 변화가 그다지 없고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때때로 몇 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진 듯해서 종종 아쉬움보다는 이렇게 살아도 될지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층층이 쌓여 있던, 뒤죽박죽이든 어떻게든 내 삶의 과정은 기억 속에 남아 있었고 하나씩 떠올려보면 내가 그렇게 허투루 살고 있지는 않는 것 같은데, 다만 여전히 방향을 모르는 채로 아니면 목적지도 없이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쉽다.


다른 책처럼 그렇게 줄을 그으며 읽지는 않았지만(그중 몇 개의 문장 정도는 기록하려 곧 책을 들쳐 확인도 하겠지만 - 작성하고 있는 시점에서) 한참을 이 소설에 집중했었고, 어제는 토요일 오후 시월드의 행사를 향해 남편이 운전하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도 계속 읽을 정도로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았다. 이 소설의 화자가 서술한 방식이 그의 물리적 심리적 여정을 함께 기록한 것 같아 읽는 동안 나도 화자 옆에서 동행하며 화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 같았다. 내가 다시 벨기에로 향한다먄 비록 일부는 허구의 장소였다고 밝혔지만, 소설에서 언급된 유사한 장소를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다 읽고 보니 소설 덕분에 내가 했던 여행의 과정도 순서는 섞였지만 함께 떠올리게 되었다.


내 마음에 들어온 문장이 몇 개가 있다.

‘한번 전파를 타고난 후에는 누구도 다시는 들춰 보지 않는 종이 뭉치 속에서’라고 평소 하나의 작업이 끝나면 밀려오는 허전함이 느껴지는 부분에서, ‘일은 더없이 단순했지만, 일 이외의 것들은 늘 피곤했다 ‘ 내 상황과 비슷하다 느껴지는 문장에서 지난 5년간의 일상을 곱씹게 하고 ‘일 이외의 것들을 견디기 위해 일을 이용한 건지도 모르겠다’와 함께 ‘모든 사람들을 견디고 지나오면서 나는 제법 성공적으로 사회화되었다’(50-51p)라고 일에 대한 나의 태도와 내 사회생활의 현재를 바라보는 것 같은 문장에서 공감했다. ‘타인의 고통이란 실체를 모르기에 짐작만 할 수 있는, 늘 결핍된 대상‘ (124p) 내 자신에게 매몰되어 타인에 대한 공감이 어려운 것 아닐까?’하고 생각하는 나라는 사람을 바라보게 하였고, ‘스스로에게 한치의 관용도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127p), 내게 스스로 엄청 관대하게 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에게 제일 냉정한 시선을 보이는 나를 마주친 것 같은 문장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추가하자면 소설 속 박이 로에 대한 자신의 소견서 내용을 프랑스어로 작성한 부분을 소리 내어 읽어 보았다. 내가 이해한 것과 한글로 번역된 내용에 차이가 많았고- 나의 배움이 좀 더 필요한 탓이라- 계속 프랑스어를 익혀서 실력을 높여야겠다고 나를 다독이고, 여기에서 생각을 정리하면서 떠오른 - 당시 벨기에에서 프랑스어로 말하려 했다가 무시당한 - 기억으로 그때의 부끄러움을 만회하고 싶어졌다.


벨기에라는 장소와 배경을 생각했지만, 한 번씩 외국을 가더라도 프랑스어로 말할 일이 별로 없었고, 필요한 경우 대게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서 그런지, 소설을 읽는 동안 내가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다는 점이나 벨기에와 프랑스어가 일절 매칭이 되지 않았던 이유는 프랑스어를 제대로 익혀서 능숙하게 말하고 읽고 듣고 말하고 싶다는 나의 열망에 대한 노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소설은 로와 화자가 결국에 만나는 순간을 묘사하며 마무리짓지만 나는 엉뚱하게도 마지막까지 박과 그의 아내가 헤어진 스토리에 집중하면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누구에게도 누를 끼치지 않고 인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렇다면 무엇일까를 생각하였다. 존엄사 또는 조력자살 또는 안락사에 대해서 평소 관심을 갖고 있었던 터라 이런 주제를 다룬 책을 찾아서 읽어 보고 싶다.

(2024.4.7.(일), 1차 저장, 읽어본 후 다시 정리할 것)


4.10.(수) 선거가 있던 날, 일찌감치 사전 투표를 했던 터라 집에서 빈둥거렸다.  그리고 ‘로기완’을 넷플릭스에서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 내가 순진한 탓인지 소설 속 ‘로기완’을 맡은 배우가 송중기라고 알고 있었음에도 원작을 어떻게 그대로 재현하였을 지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내 주관적인 감상이지만, 영화의 시선이 누구의 것인지 명확하게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영화는 영화대로 재미있었고, 단단한 내면을 가진 청년으로서 연기한 송중기의 눈빛이 좋았다. 로기완의 ‘단단한 내면’이 소설과 영화에서 내가 구한 핵심 단어. 소설 속 로기완도 스스로를 구원해 낸 힘이 응축되어 있는 눈빛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


- 글쓰기가 쉽지 않지만, 응어리를 하나씩 풀어가는 기분에 중독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24. 4.7. 오전부터 쓰고 4.20일 저녁에 발행하다


+주말일상(20. Avril. 2024)

7주간의 토요일 프랑스어 수업을 마쳤고,

델프 A1을 도전해 볼까 하다가 응시료가 비싸서

좀 더 공부해서 A2로 도전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다음 수업까지 2주 동안 그간 배운 내용을 복습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길. J’ai viens de finir le cours de français A1(4/4) aujourd’hui. 하나의 문장이지만, 나중에 실력이 늘어서 오류를 확인하거나, 문장을 더 추가하고 표현이 아쉬운 부분을 수정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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