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똥은 봄동
"할머이 밭에 비니루로 가리논게 뭐여?"
"와 궁금하나?"
"응 약간 시퍼런 게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개이 또 쑤석거리지 말고 가매이 기다리. 지금은 추워가꼬 땅빠닥에 바짝 붙애있으야 안 얼고 맛이 좋아지지" 할머닌 나에게 알 수 없는 지령만 남기셨다.
정월대보름도 지나고 5시면 지던 해가 5시 반이 지났는데도 하늘에 떠 있는 요상한 날이 찾아왔다.
할머닌 해가 길어졌다고 하셨는데 고무줄도 아닌 해가 길어졌다는 말을, 여전히 동그란 해를 보며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순아네서 동생이랑 민화투를 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밀 비니루가 덮인 앞 밭에서 할머니가 비닐을 걷고 일하고 계신 것이 보여 반가운 맘에 달려가니 밭에 있던 시뻘건 흙이 찐빵 반죽처럼 털신에 무겁게 들러붙으며 발목을 잡았다.
"아서 드오지 말어. 진태에 자빠진다."
할머니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흙땅은 나의 애착 신발 빨간 털신을 꿀꺽 삼켜버렸고, 갑자기 가벼워진 발에 균형을 잃고 어색해진 나는 무릎까지 꿇으며 요란하게 입장했다.
"아이고야, 거 가매이 있으래니 우찌 그래 말을 맹매이 콧구녕 맨치도 안 듣나? 저 양말이고 바지고 흙 칠갑을 해서 우쨀 끼여?"
할머니는 혀를 차며 걱정하셨지만, 털신을 넘어 양말까지 빼앗으려 쩍쩍 달라붙는 진흙의 말캉거리는 느낌은 새로운 재미로 다가왔다. 나는 만약에 갯벌에 들어간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상상하며 점점 무거워지는 발이 신기한 듯 계속 할머니 곁을 숨차게 뱅뱅 돌아다녔다.
"마한 것, 고새를 못 참고 사람 혼을 다 빼놓네. 발 시리잖나 고매 가재이"
"할머이 요래 서나케이 뜯어서 뭐 해 먹을라고?"
"이게 납닥해 그라지 무치노믄 많어"
마트에 갔다 봄동이 매대 가득 올려진 것을 보며 봄이 오긴 오나 보다 장바구니에 담았다. 할머니가 위 아래 맞지 않는 틀니를 맞추며 드시던 빨갛게 버무린 봄동 무침도 떠오르고 푸른 잎을 손으로 뚝뚝 떼 오랜 시간 우물거리시던 모습도 지나간다. 할머니는 모든 이파리류를 드실 때 손으로 죽죽 찢거나 뜯어 드셨는데 나도 할머니처럼 나물류를 죽죽 찢어 장에 찍어 먹으니 기분 탓인가? 칼로 썰어 먹는 것 보다 더 맛있는 맛이 나는 것만 같다.
작은 아이가 특히나 좋아하는 무침을 하려고 봄동을 데쳤다. 겨울 내내 무얼 먹고 자랐는지 배추 맛이 아니라 사루비아 꽃꿀 빨아먹던 것 같은 단맛에 무치기도 전에 여러 번 집어 먹었다.
시에서 뭔가를 기르는 모양이다. 설마 저것이 봄동은 아니겠지? 미니하우스가 귀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