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씨 따는 일은 어려워
경작지가 예전대비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지금도 부모님은 마늘농사를 많이 지으신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으신 농사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니 대를 잇는 효자 작물인데 그 경륜 덕분에 아버지는 마늘 품평회나 축제에서 여러 해 우수 농부상을 받으셨고 자부심도 대단하시다. 하지만 마늘 농사가 호락호락한 농사는 아닌 것이 늦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나고, 여름 장마가 시작되기 전 기가 막힌 시기에 수확, 건조를 해야 과정이 있기에 있는 듯 없는 듯 사계절을 함께 하는 작물이었다.
아부지 생신을 맞아 추석 이후 다시 찾은 집. 이 날은 아부지 생신을 빙자한 가을걷이의 날이다. 손오공의 분신술이 있다면 쓰고 싶을 정도로 손이 모자라지만 또 일사불란하게 각자의 영역에서 일을 진행하면 어느새 뚝딱 끝나 있다.
"할머이 뭐 해? 오늘도 산에 안 갔어?"
"산은 카시, 지금 어느 걸 해얄 지 증신을 못 차리는디. 여 보래이 마늘씨도 안즉 이매큼 밖에 못 또갰잖나"
"나도 쫌 하까?"
"아서, 니는 못해. 발부리가 났는지 잘 노나야지. 씨 잘못 노믄 농사 망치"
"어휴, 이건 쉽게 하는 방법은 없어?"
"그라믄 니 이 마늘통 대가리 구녕에 이 젓갈글 느 반만 또개나 보래이. 마늘통이 을매나 마든지 손끝이 드가덜 않아 아주 애 묵네"
"할머이 내가 해노께 쫌 쉬"
"오이야"
나는 할머니가 말씀하신 대로 단단하고 동그란 육쪽마늘 가운데에 젓가락을 넣어 반으로 쪼개 할머니 앞으로 보란 듯이 밀어 놓았고, 할머닌 저린 손을 주무르며 쉬셨다
"니 저 마늘 한 박스 들이붓고 받아 와"
"엄마 이거 풍차 아니야?"
"니 이거 모르나? 풍차 아니고 마늘통 쪼개주는 기계여"
"우와 대박. 파종 기계만 있는 게 아니라 통 쪼개주는 기계도 나온 거야? 난 왜 모르고 있었지?"
"해마다 마늘 다 심고 비니루 씌울 때쯤 오니 못 봤지"
"엄마 이 기계 엄청 좋네. 역시 사람들이 힘드니깐 기계를 개발해 내네. 근데 생각 나? 마늘밭 비니루 덮던 일 지금 생각해도 지긋지긋해. 씌우는 것도 일이지 바람 불어 다 뜯기고 날리고, 툭하믄 송아지 뛰나 마늘밭 비닐 다 뚫어 놓음 푹푹 빠지는 진탕에 삽 들고 따라다님서 흙으로 덮고 그랬는데"
"아휴 그때 생각하믄 징글징글해. 꼭 마늘밭 비니루 싹 씌워노믄 날 잡은 거처럼 송아지 뛰나 밭 다 짓쌂고. 송아지 잡을라고 니들 보초 세워 놓음 니는 겁이 많아 벌벌 떨민 서 있고. 엄마소는 지 새끼 어떻게 할까 봐 소리소리 지르고 벽 부수고 소통 다 엎고"
"나 그때 벌벌 떨던 거 지금도 기억나. 그때 알았잖아. 양팔을 펴고 송아지를 겁 주는 것보다 지게짝대기를 들고 있음 송아지가 말을 잘 듣는다는 걸"
"송아지도 애들은 얕잡아 본다니"
"뭐여 나는 송아지한테도 밀린 거야?"
나의 말에 엄마가 고개를 젖히고 한참을 웃으셨다.
"언니야 퇴근했나?"
"했지. 저녁은?"
"아직. 밥 할 기운이 읍네"
"나도. 손 끝에 기운이 없어"
"나도. 뭐 때문인지 손 끝이 다 아파"
"그거 마늘씨 쪼개느라 손 끝에 힘을 너무 많이 줘서 그래. 나도 오늘에서야 부은 손가락이 가라앉았어"
"아! 그래서 그랬구나. 난 그건 생각 못하고 계속 왜 아픈가 했네. 하루 종일 한 것도 아니고 몇 시간 한 게 이리 아프면 몇 날 며칠을 하는 엄마랑 아빠는 얼마나 힘들까?"
"그러니 맨날 아프고 골병만 남았지"
또렷한 어린날의 영상이 조용히 흘러간다.
해마다 마늘 파종의 기초 작업을 해 주셨던 굳은살 가득했던 할머니의 손 끝. 파종이 끝난 밭에 온 식구 달려들어 비닐을 덮느라 바통을 든 계주선수처럼 비닐 끝자락을 움켜쥐고 힘차게 뛰던 나. 비닐에서 뿜어져 나오던 극한의 정전기를 버티던 아버지의 팔근육과 꽉 문 어금니. 그래서 치아가 많이 망가지셨는지도 모르겠다.
해마다 아부지한테 농사를 줄이시라 잔소리하면서 나는 여전히 감자며 고구마, 배추, 무, 들기름, 참기름, 고춧가루 등 트렁크 가득 훔쳐온다. 내가 가져다 먹지 않으면 농사를 덜 지으실 텐데, 우리에게 주실 재미로 힘든지 모르고 일하신다는 아부지 말을 들을 때마다 심한 내적 갈등이 생긴다. 나는 효녀인가? 불효녀인가?
늦은 저녁 안부 전화를 드리니 전화 받으신 아부지 콩타작하고 들어와 저녁 드시고 김장하시려 마늘을 까고 계신단다. 아부지와 엄마의 11월은 마늘과의 전쟁의 달인가?
몇 날 며칠을 부모님이 밤잠까지 아껴가며 마늘 씨를 준비한 덕분에 파종도 비닐 덮는 일도 무사히 지나갔다. 이제 작은 촉을 품고 있던 마늘쪽이 거뜬히 겨울을 나고, 초봄이 되면 힘차게 기지개를 켤 것을 기대하며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