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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Nov 16. 2024

야나할머니네 모과향

파란 모과

"할머이 할머이 방에서 좋은 냄새가 나"


"뭔 냄시가 나나?"


"무슨 냄샌지 몰라. 그냥 안 나던 냄새가 나"


"니코가 개콜세"


할머니가 윗목 앉은뱅이책상 밑에 효자손을 밀어 넣어 끌어낸 소쿠리엔 내 주먹보다 큰 누런 과일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게 뭔데?"


"니 이거 모리나? 이게 모개잖나"


"이거 먹을 수 있어?"


"그라믄 을매나 맛있다고"


나는 할머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빤질빤질 기름기가 묻어 있는 모과를 덥석 집어 앞니로 콱 물었는데 머리가 띵할 충격이 강타했고 손을 대지 않아도 떨어지지 않고 앞니에 박혀 있었다.


"개안나? 이 나간 거 아니여?"


"아 뜰버. 할머이 왜 거짓말했어. 이거 맛이 없잖아"


"이 마한 것. 클 날뻔했네. 이 안 흔들리나 보게 이리 와본나. 이건 약이여 지침약. 약으로 무야 맛있지"


모과는 향은 좋았으나 식감도 맛도 빵점이었다.




할머니방 화롯불 위에는 늘 작은 주전자가 보글거렸다.  주전자 안에는 삽주뿌리나 둥굴레, 도라지, 영지버섯이 끓고 있었고 빨간 대추가 달콤한 향을 내며 시커멓게 변해가고 있었다.


"이 마한 것 이빨 자국 내놔가 모개가 썩을라카네. 저 정지 가서 도매 떼기 들고 온나"


나는 얼른 부엌으로 가 도마를 들고 왔다.


"마들기도 마들기도 모개 짜르다 도매 떼기 쪼개갰네"


"할머이 내가 하까?"


"아서 잘못하다간 손가락 달아나"


나는 손을 움켜쥐며 흠칫 뒤로 물러났다.


할머니는 힘들게 모과를 쪼개 씨를 꺼내고 벌레가 먹은 부분을 도려내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정성스레 얇게 써셨고 그날 이후로 할머니 방에선 모과차 향기가 났다.




노랗게 익어가는 모과. 손이 닿질 않는다.

작은아이 친구 엄마가 친정에서 따 왔다며 모과 나눔을 해 주셨다. 모과 세 알에 거실이 환해지는 기분에다 향긋한 향을 맡으니 어린 날 할머니방에 앉아 할머니의 일수거일투족 사사건건 호기심을 보이며 간섭하며 사고 치던 모습이 떠오르고, 기가 막혀 웃던 할머니 얼굴과 틀니를 빼고 무섭게 호통치던 할머니 모습, 뜨거운 차를 들이켜시며 속이 시원해진다고 감탄하시던 모습도 떠오른다.

모과 봤다~~

모과를 썰고 손에 물집이 잡혔다. 손목도 시리다.

썰어 꿀에 저미면서도 과연 이게 맛있는 모과차가 될까?애궂은 꿀만 버리는거 아닌가?의심부터 앞서고 내년에 아님 후년에라도 혹 누가 모과를 주신다면 다시는 결코, 절대 썰지 않고 거실이 환하게 방향제로 시들어가게 두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게 된  깨~달음을 얻은 이었다.


추신 : 모과차가 맛있게 익기를 바라며 기침도 뚝!

날이 추워진다 합니다. 모두 감기조심하시고 혹 기침이 심하시면 모과차 드시러 오세요~ 언제든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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