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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Oct 27. 2022

너무 아픈 사랑

노래는 감정이고 체험이다

중, 고등학생 시절 내 또래들은 습관적으로 팝송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했다. 부모님들은 노래 때문에 무슨 공부가 되겠냐고 핀잔을 줬지만 당시 젊은이들에게, 팝송은 유행이었고 트렌드였다.


유행이 파도라면 트렌드는 조류라 할 수 있다. 그 트렌드가, 절대 바뀔 것 같지 않은 조류가, 지금은 K-Pop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서 대단한 호응을 얻고 있다. 그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내 자식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뿌듯함을 느낀 곤 한다.


어쨌든 그 습관이 굳어 성인이 된 후에도 운전 등을 할 때 음악을 틀어 놓곤 한다. 이래서 3살 버릇이...? 좀 변한 것이 있다면, 팝도 팝이지만 포크나 발라드, 혹은 클래식 등에 더 관심이 간다는 정도?


그런데 요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음악을 들어야 하는 곳이 있다. 바로 헬스장과 캘리 그라피 강의실에서다. 헬스장에서는 빠른 박자의 노래를 틀어준다. 아마 힘차게 운동하라는 배려일 것이다.


반면 캘리 강의실에서는 강사가 발라드 류의 노래를 선별해 핸드폰의 볼륨을 최대로 높여 들려준다.  새로 캘리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그 분위기가 소란하다고 어색해 하지만 기존 멤버들은 그 음악에 중독(?)된 지 오래다.


며칠 전, 오후부터 가랑비가 내리더니 해 질 무렵에는 비가 제법 굵어졌다. 수업 시간에 늦어 허겁지겁 강의실에 들어가, 깔판을 깔고 쓸 붓을 고르고 있는데...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 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이 나누나...]


김광석이다.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에 흘러내리는 못다 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다.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람 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후렴 부, 고음으로 목 놓아 부르는 [어느 하루 비라도...]라는 대목에서는 나는 붓을 내려놓고야 말았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같은 박자와 음으로 만들어져 겨우 3여분 동안 불리어지는 보통 노래에서, 각자가 겪은 기쁨과 슬픔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노래에 얽힌 상대방의 추억의 시간을 가늠할 수조차 없다.


시는 감정이 아니라 체험이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노래는 감정이고 체험이다. 노래는 시의 목소리이고 시는 노래의 그림자다. 시가 정신이라면 노래는 몸이다. 노래는 전화나 카톡처럼 직접적이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노래는 또한 삶의 배경이기도 하다.


종이 누군가에 의해 울려지기 전까지는 진정한 종일 수 없다. 노래도 누군가에 의해 불리어지거나 그렇지 않는다면 스스로 라도 불러야 한다. 그래야 가슴을 적신다. 조용히 혹은 힘차게 때론 뜨겁게 울려 퍼지면서...


우연히 이 노래 듣고 김광석이란 가수를 알게 되었다는 소설가 신경숙. 그니는 라디오에서 그의 자살 소식을 듣자마자 그만 울음을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다는 한다.


이렇듯 노래는 그저 땅만 바라보며 사는 이들에게 가끔 고개를 들게 한다. 그리고 웃음과 눈물에 얽힌 긴 여운을 선사한다.  


캘리 수업 내내 그날 창 밖에는 추적추적 밤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울음을 참듯이 떨리는 김광석의 목소리에 붓을 들 힘을 잃은 나는, 결국 일찍 자리를 털고 일어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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