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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Nov 19. 2024

아무도 만질 수 없는 기억의 바람

손바닥소설

먼 곳에서 바람이 불었다. 나는 아픈 것처럼 연기를 했다. 호흡을 고를 때마다 안경알은 뿌옇게 변했다. 그래도 그렇게 놓아두었다. 감정이 벅차올라서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빌딩 저편으로 공장들이 보였다. 투박하고 답답한.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뿜어져 나온 공장 굴뚝의 연기는 바람에 흩날렸고, 노을이 젖은 하늘로 피어올랐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에 앉아 나와 같은 방향으로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연기가 흩어지듯 우리 사이의 대화도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지 않았다. 대신 바람이 가져다 준 정적 속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하늘로 흘려보내는 것 같았다.

“다 사라질까?” 

내가 물었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흩어질 뿐이야.”

그 말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연기는 결국 사라진다. 노을 아래 흔적도 없이.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따뜻하게 들렸다. 나는 연기가 흩어지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것은 내가 숨긴 감정 같았다. 무겁고 깊은 것들이 그렇게 가볍게 흩날리다니.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그와 나도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있었다. 그러다 결국, 그가 먼저 일어섰다.

“다음에도 이렇게 바람이 불면 만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가 다시 이곳에 올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나만 남았다. 연기도, 그도, 모두 흩어졌다. 그런데도, 하늘은 여전히 노을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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