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한 주간의 휴가가 끝나가고 있다. 미국 동부에 사는 후배가 딸과 함께 방문해 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는 치열한 법정싸움까지 벌이며 이혼을 한지 이년이 넘었고, 일 년에 한 번 정도 딸과 함께 우리 집에 오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에게 이혼을 매우 힘든 일이었고, 그 이후 무언가의 빛이 그 안에서 사라져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다행히 그에겐 그의 피를 끓게 하는 축구라는 하나의 큰 취미가 있어 그를 지탱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하나쯤은 미치도록 좋아하는 게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면서 그 강렬한 감정들이 어른의 생활이라는 무게로 희석되어 무뎌지기에 더 이상 그런 게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겨우도 있다.
나는 어린 시절 처음 읽은-아마도 처음 읽은 책은 아니겠지만, 내 기억 속에는 아주 강력하게 각인되었기에- 에드가 엘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은 나의 소설에 대한 선호도를 만들어냈다. 그 이후로 나는 추리소설과 공포소설만을 찾아 읽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나의 최애 장르는 추리 혹은 범죄소설이다.
가끔 나는 일을 하면서도 나의 이런 추리소설에 대한 애정을 느낀다.
앞으로의 미래에 인공지능은 우리의 많은 직업을 앗아갈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심지어 항공기 운행이나 외과수술도 인공지능으로 인한 기술력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수의사는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동물들을 키우는 보호자들이은 그들이 너무나 사랑하는 동물이 어디가 아픈지에 대해 아주 엉뚱한 의견을 내어 놓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자궁축농증; 중성화가 안된 암컷의 자궁에 염증이 생겨 농이 차는 질병'이다. 처음에는 생리와 비슷한 증상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상황에 따라 전혀 증상이 없이, 밥을 안 먹거나, 배가 불러오거나 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럼 보호자들은 본인의 아이들이 변비가 있다거나, 위장염이 있다고 착각을 하기도 한다. 보호자의 말을 듣고 환축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는 건 가끔은 질병의 알고리즘을 따라가는 추리의 형태와 비슷하다.
스릴러 소설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고 있다. 이전에 읽은 책들은 그가 오래전에 쓴 글이라, 글의 내용 이외에 저자의 사회에 대한 생각을 느낄 수는 없었는데, 이번에 읽은 'Holly'라는 책은 '홀리'라는 한 여성 사설탐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아마도 전에 그의 책에 이 인물이 등장한 적인 있는 듯하다- 저자의 코로나 사태나 트럼트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의견을 느낄 수가 있어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유난히도 음모론에 대한 생각이 많은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이던 시절 '난 코로나 믿지 않아. 그거 다 우릴 조종하려는 세력의 음모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고, 이게 무슨 집단 최면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스티븐 킹은 책에서 그들의 무지에 대해 야유를 보내며, 트럼퍼들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낸다.
나를 오랜 기간 가둬놓은 나쁜 습관이 있다. 나는 그 습관을 이제 버리려고 한다.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누군가가 나쁜 습관을 버리는 것은, 그의 의지가 남보다 특별해서가 아니라 변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길들여진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을 힘들어한다.
나쁘더라도 그것을 바꾸는 것보다 그냥 하는 게 더 쉽고 편하다. 그래서 불평하면서 계속한다.
또한 사람들은 다수에 속하기를 원하고 소수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다수의 무리에 들어가 그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소수를 비난하고 공격한다. 그것은 종교가 되기도 하고, 이념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 이제 변화는 삶의 일부가 되었고, 머나먼 타국에서 소수의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게 두려워 어느 집단에 가입되는 것보다 그 틀에서 벗어난 자유를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