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에서, 꿈이 현실이 되는 놀이를 하고 놀았다.
나는 큰 회사의 직원이었다. 무슨 목적에서인지는 몰라도 새로 나온 게임이나 증강현실 기반 시뮬레이터를 체험해보고 리포트를 쓰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한 줄 적고 과장님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과장님이 꽤 자신이 없나보다고 면박을 줬다. 나는 잘못하면 결재라인을 다시 탈 텐데, 그러면 너무 오랜 시간이 더 걸릴거라고 했다.
꿈 속의 게임은 한 주인아이가 다른 아이를 창조해내서 때리고 학대하고 종으로 부리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게임이 이상하게 두려웠는데, 그건 바로 그 게임 속 학대받는 아이가 주인 아이가 써낸 책에서 나온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주인 아이는 이상한 문장들로 술수를 부려 자신의 영원한 노예를 만들어냈다. 노예 아이는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모르는 상태로 끝없는 학대를 견뎠다. 그러다가 일기를 썼다. 어느 날 삶이 시작됐다고 일기에 적었다.
이 게임이 존재한다는 건 곧 이 게임 또한 현실이 된다는 뜻일텐데. 이 괴로운 아이들이 현실로 나오면 세상에 얼마나 복수하고 싶을까? 노예 아이가 일기에서 만들어낸 아이는 또 얼마나 잔인한 괴물일까. 꿈 속에서 나는 복도를 뛰어다니며 과장님한테 보고하려고 애를 썼다. 다만 과장님이 이사님 픽업하러 가느라 너무 바빴다.
꿈이 끝나고 눈을 뜬 나는 출근했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삶이 시작됐다고 적었다.
꿈 속에서 노예아이가 누군가를 만들어내려 일기를 쓴 것처럼, 나 또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글을 적는다. 내가 만들어내는 존재는 낮 동안의 삶을 지속해주는 그림자라는 면에서 노예의 노예와 비슷하다.
낮의 불안은 글 속에서 온갖 종류의 꿈으로 투영되고, 나는 그걸 보며 불안과 애써 거리를 둔다. 나를 통과해 백지 위에 반사되는 사물은 낮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2024년 겨울, 침대에서 졸던 밤 중 이상한 소식에 잠을 깼다. 시동을 걸고 입김을 불어가며 회사로 돌아가던 기억이 오래 나를 괴롭혔다. 2025년의 마지막 날에는 눈 앞에서 세계의 빈틈이 벌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누가 1년 전 영상의 재생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
견고하다고 믿었던 바닥이 꺼지는 걸 눈앞에서 본 순간, 그 순간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사람을 바꾸어놓는다. 긴 겨울밤 이후의 나는 이전과는 달라서 별 수 없이 다시 백지 앞에 앉는 사람이 되었다. 삶이 시작됐다고 적는 밤에는 나조차 아직 모르는 두 번째 삶이 시작되기에. 그것만이 낮의 찬란한 불안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