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블랙박스

by 유영원


작은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 버려진 책들은 어디로 가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팔린 책들은 중고서점에도 가고 도서관으로 납품된 책들은 손에서 손을 타며 여행하겠지만, 한꺼번에 대형 서점 판매대에서 끝내 선택받지 못해 쏟아져 돌아오는, 도서정가제 이후로 할인도 재정가도 어려워진 책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지. 영업 부장님은 모두 다 묻어버린다고 했다. 세상 어딘가에 책들의 무덤이 있어서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는 책들은 그곳에 묻힌다고. 그때 이후로 나는 물류 창고에 가면 거대한 책더미가 무덤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인쇄소의 인쇄기는 끊없이 돌아간다.


익숙한 골목을 지키는 단골집. 하루가 한 주가 한 달이 되어 나오는 급여. 이번 달도 고생하셨다는 인사.

10여 년 전부터 곁에 있었던 친구. 매해 가는 가족 여행 때 4시간을 운전해도 끄떡없는 아빠. 어린 시절 홍시를 한 숟가락씩 떠 먹여주던 외할머니.


못 박혀 있다고 믿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들. 어떤 순간도 못 박혀 있지는 않다. 모든 것이 매 초마다, 매초의 수십만분의 일 마다 변화한다. 불안과 초조 위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나는 매번 부정하고 싶었다. 무언가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줄 것이라고.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간과 싸워야 했고 무덤으로 가야만 했다. 그건 곧 소모의 이미지였다.


나는 물을 좋아한다. 특히 흘러가는 강물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물결을 바라보다 보면 언젠가, 단 수십만분의 일초만이라도 물결의 정지한 순간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릴 땐 눈도 깜빡이지 않고 계속해서 바라본다면. 언젠가 기적처럼 멈춘 순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믿었다. 성공한 적은 없었다. 강물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끊임 없이 흐르는 건 정말 이상하다. 댐처럼 갇혀져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래야 힘이 보존될 것 같은데. 그런데 계속해서 흐른다. 멈춰져 있던 순간에도 무언가가 흐르고 있다.


최근까지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크게 놀라는 일을 반복했는데 그건 그들이 너무나 지혜롭게 살고 있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멈춰있는 것처럼 보이는 강물처럼. 결혼식장에서 다같이 웃으며 찍는 사진처럼. 그들은 영원을 믿는 듯 했다.


어떤 친구가 이혼 위기 앞에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우리 사이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의 떠남에 놀라지는 않았다. 우리는 나이가 들었고 배운 것이 있으니까. 그 친구가 불행을 껴안는 방식에는 좀 고결한 데가 있었다.


어린시절 나는... 도저히 모두가 나와 같은 감정과 싸운다고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건 결국 파랑새는 없다는..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는 무서운 결론에 도달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영원을 믿으면서 영원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론은 아직 내 안의 블랙박스에 담겨 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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