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by 유영원


십 수년 전에 부안에 발이 묶인 적이 있다. 아빠는 꼭 1년에 한 번씩은 고향이라는 이유로 그 바닷가 도시를 방문하고 싶어 했다. 그 해 부안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오래되어 몇 번이나 엔진을 고친 구형 카니발을 타고 달려가 격포항에서 백합죽을 먹었다. 식당을 떠나려 후진을 하던 순간 갑자기 차가 주차장에서 멈췄다. 눈이 펑펑 내리는데 카센터 아저씨는 엔진 보링을 하려면 3일은 더 걸린다고 했다.



부안에는 그렇게 볼 만한 게 많지 않아서, 바닷가에 들르고 아빠가 아주 어릴 때 빠져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해 들으며 채석강을 산책하고 낡은 동물원까지 찾아간 이후에도 시간이 남아돌았다. 나는 느긋한 대학생이었고, 시간이 언제까지나 그렇게 남으리라 생각했다. 바닷가 절벽 위에 지어진 펜션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연기대상을 보다가 잠에 드는, 새해를 세는 카운트다운 소리가 희미하게 멀어지는 그런 해들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리라고. 계절이 지나고 일 년이 가는 건 마치 네 개의 칸으로 된 기차를 매번 갈아타는 것 같았다. 언젠가 기차가 멋진 곳에 데려다 주리라 믿으며.


2025년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작년 이맘때 썼던 글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썼다. [상처는 언젠가 일상 안에 편입할 수 있을 만큼, 다룰 수 있을 만큼 평범해진다. 그건 마치 허리가 아픈 사람이 기어코 허리를 쓰지 않고 잠자는 법을 배우는 과정 같다. 그러니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또 1년이 지났다. 막상 지나갈 땐 아무 감각도 없었던 시간이 이제는 만질 수 있는 덩어리로 눈앞에 놓여있다. 그 덩어리는 상상 속 기차보다는 조금 더 단단하고 만지면 아릿한 통증이 올라온다.


저 글은 고양이 다람이가 내 인생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날 썼다. 몇 주 동안 지켜보다가 집으로 구조해 온 날이었다. 하루 종일 숨어서 나를 노려보던 다람이는 새벽쯤에 갑자기 이불 위로 뛰어올라왔다. 마음을 어렵게 주는 고양이는 아니었다.


본가에 처음 데려갔을 때에는 아빠가 다람이를 대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순전한 호의를 가지고 쓰다듬는 손길이 턱을 밀어내듯 거칠었다. 거기 말고, 귀 뒤를 긁어줘. 아빤 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계속 다람이가 싫어하는 부분만 만지작거렸다. 며칠이 지나자 아빠는 내가 다람이에게 꼼짝 못 한다며 탐탁지 않아 했다. 냉장고에 올라간 모습을 보고 껄껄거리며 크게 웃은 게 호의적 반응의 전부였다. 어리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를 쓰다듬기엔 너무 투박한 손과 그 내민 손을 맞잡지 못할 만큼 겁이 많은 존재. 그건 다람이와 아버지의 풍경만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채 사랑한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 혹은 피치 못하게 어느 순간 사랑하게 됐더라도 사랑하게 된 것에 옳으냐는 그런 문제, 그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렇겠지.


그러나 내 안에서 아빠와 다람이는 오돌토돌한 이음매 없이도 이어 붙어있다.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와 사랑하는 아버지. 거칠게 쓰다듬듯이, 밤새 우는 소리로 뜻을 알리듯이 번역된 사랑은 내 안에 존재했다. 깨닫는 과정은 눈이 천천히 내리듯 느렸지만 어느 순간 세계를 하얗게 물들이며 확연했다. 길거리에서 만난 고양이와도 그 고요한 풍경을 나눌 수 있을 만큼.


2026년은 소리 없이 매끄럽게 왔다. 옮겨 탄 적도 기대감을 가진 적도 없는데 여행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 나는 연예대상도 연기대상도 보지 않는다. 그래도 올해도 나는 친애하는 가족들과 이토록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에 다시 한번 놀랄 준비를 할 것이다.


흐르는 시간의 물결을 뭉쳐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드는 건 오로지 몇 가지 장면들 뿐이니까. 눈 쌓인 주차장 위의 고물 자동차, 햇빛을 쬐면서 조는 고양이, 오래전에 용서해 버린 어떤 중년 남자의 얼굴 같은.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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