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릴까 말까 수없이 고민하다가 작성창에서 나갔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내 글을 발행할 수 있다는 게 감격스러우면서도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적다보니 울컥해서 너무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까지 다 적어버릴 것 같아 글을 발행하는게 지금도 망설여지지만 나중에 봤을 때 이 글이 글을 다시 쓰고싶어지는, 유의미한 기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조심스레 적어본다.
직장에 한 달 이상 병가를 냈었다. 다시 복귀해도 될까? 긴가민가했지만 용기내서 다시 직장에 돌아왔을 땐 새로운 부서로 이동을 했다. 생각지 못했던 곳이었지만 언젠가는 읍면지역에서도 근무를 해야할테고, 그 시기가 조금 더 빨리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살기좋고 풍요로운 ㅇㅇ읍'
행정복지센터 청사 간판에 쓰여진 문구를 보면서 내가 정말 살기좋고 풍요로운 읍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 생각했다. 팀장님과 점심식사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올 때, 팀장님이 저 문구만 보면 살기좋고 풍요로운 ㅇㅇ읍을 만들겠다던 그때의 내 건배사가 생각난다고 했다. 1월 초에 나는 그래도 그렇게 말할 기운이 있었구나 싶어서 신기했다.
요즘 나는 기운이 없다. 글도 예전처럼 빨리 쓸 수 없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낯을 가리며 어눌하고 어색하게 인사한다. 전에는 잘 할 수 있었던 일상적인 일들 앞에서 이제는 시도조차 머뭇거리게 된다. 표정이 어둡고 기력이 없다. 그래도 이런 상태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에 일기를 쓰고있는데, 나는 여전히 내가 아팠던 시간들을 저주하고 원망하고 있었다. 일기엔 왜 하필 지금인지 모르겠다는 말로 가득하다. 어서 이 지옥같은 상태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기도한다.
위로가 될 일이 있을까 미친듯이 뒤지고 계속 책만 봤다. 삶은 참 짖궂고 사람들은 한쪽 방향만 보느라 때때로 좌절이 지나간 자리에 다른 새로운 문이 열려있음을 눈치채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난 여전히 마음이 편하지 않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이 난다.
하루에 많게는 50~60명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게 지금 내 일이다. 농업경영체확인서를 뗄 때마다 느낀다. 열심히 살고있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딸을 거주불명자로 만들어달라던 집의 사연을 들을 땐 안타까움도 느꼈다. 아기가 귀한 이곳에서 어렵게 태어난 아기의 출생신고를 받을 때는 그 기쁨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지는 것 같아 기뻤다. 잠깐 보고 마는 일회성 민원이지만 그래도 내 앞의 창구에 왔을 땐 최선을 다해서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내 안에 그런 마음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면서도 조금 놀랐다.
난 여전히 예민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다.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여전히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일이 어렵다. 그래도 이렇게 나를 찾는 일회성 민원에는 최선을 다한다. 한번 보고 마는 민원이라 더 편하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우울한 내면임에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호흡하는 일이 여전히 즐겁다.
병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 우울이 남았다.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말 한마디조차 꺼내기 싫은 날이 있었다. 내가 누군가의 가족으로 살아갈 자격이 있을까 고민하던 날들도 있었다. 항상 마지막은 그래도 어쩌겠어. 어떻게든 살아야지로 귀결된다. 그럴때면 이곳에서 보고, 겪고, 들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생각한다. 찰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뿌듯함이 계속 직장에 출근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3월이 되었다고 금세 따뜻해지진 않는 것처럼, 마음도 금세 넉넉해지지 않고 기분도 금세 좋아지진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구분하며 험한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든 사는 즐거움을 발견하는게 이번 달의 과제다.
더이상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괴로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