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과자

1화

by 쏴재

"어르신"

"어르신, 정신이 드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지혜..."

'김지혜였던가, 이지혜였던가. 머릿속의 안개가 짙은 안개가 낀 거 같았다'

'여긴 도대체 어디지?'

며칠이 흘러 지혜는 무겁게 감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며,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펼쳐진 곰팡이을 멍하니 응시했다. 거대한 배양기 어두운 조명 아래 서서히 형태를 갖춰가는 균사체를 연일 관찰하였다. 자신도 저렇게 괴이한 방식으로 이 미지의 공간에 당도한 것일까? 어제만 해도 동전 크기에 불과했던 것이 오늘은 성인의 손바닥만큼 자라 있었다. 작은 콩나물처럼 생긴 검은 포자들이 점차 농밀해지더니 하루가 다르게 색채가 미묘하게 변하며 세력을 늘려가고 있었다.

그 형상이 뒤틀린 고목나무에 낀 이끼 같기도 하고, 때로는 층층이 쌓인 자루 같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더 지나자, 정말로 그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 배양체 깊숙한 곳에서 작은 나체의 노인 한 명이 탄생한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의 세상과 동일한 신체를 가진 모습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노쇠하여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고 들었다. 임종 직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와 점차 젊음을 되찾아가다가, 결국 배아세포로 회귀하여 소멸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지혜는 자신의 손등을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어제보다 핏줄의 돌출이 덜하고, 거울에 비친 안색도 그러했다. 기미와 잡티들이 옅어지고 피부아래 지방이 생기면서 주름이 펴져가고 있었다.

"컨디션이 호전되고 계시는군요."

담당 의사가 병실로 들어서며 말했다. 정민준이라고 했던가. 며칠 전부터 이 사람과 대면해 왔지만 여전히 낯설기만 했다.

"선생님, 여기가 정확히 어떤 곳인지요?"

지혜가 되물었다. 동일한 질문을 몇 차례나 반복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기억이 흐릿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차츰 되살아날 겁니다."

민준은 의자에 몸을 맡겼다. 행동엔 피로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얼굴은 아니었다. 그런 부조화가 지혜는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이미 대답해 주신 거 같지만... 저는... 죽은 건가요?"

"죽음이라 규정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곳은 저승입니다. 생을 마감한 이들이 도달하는 세상이죠."

"저승이라고요?"

"여기서는 육체가 역순으로 노화가 진행됩니다. 임종 직전의 상태에서 출발해 점진적으로 젊음을 회복하죠. 감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최후 순간의 감정부터 차례대로 되짚어가게 됩니다."

지혜는 창문 너머를 응시했다. 회색빛 무채색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늘인지 운무인지 경계가 모호했다.

"지금 당신이 체감하고 있는 것은 인생의 종막에서 느꼈던 감정들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더 먼 과거의 기억들이 되살아날 것입니다. 이해하기 힘드시겠지면 물리학자가 한 말에 따르면 우리는 지금 수축하는 우주에 있다고 합니다."

최후의 순간. 지혜는 그 찰나를 떠올려보려 애썼지만 어떤 잔상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가슴 한편이 아련하 따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