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배워야 할 텐데 그건 또 귀찮은. .
늘 나보다 먼저 기상해 나의 단잠을 깨우던 끈이가 요즘 들어 늦잠을 즐기기 시작했다.
덕분에 아침마다 휴대폰으로 세상 구경을 한다. 국내 뉴스, 국제 뉴스, 스포츠, 연예. . 에서 발견한 기사 제목.
최현석, 김풍의 요리에 '우리 엄마 손 맛이 나'
직접 방송은 못 봤지만 혼자 씩 웃으며 그 장면을 상상해 본다.
남편과 나는 요리를 번갈아하는 편이다. 계획적으로 돌아가는 당번제가 아니라 그냥 그 순간 할 일이 없는 사람이 식사를 준비한다.
남편은 본인의 요리에는 상당한 '요리부심'을 갖고 있다.
캬~~~ 됐어 됐어 됐어
와~~~당신 이거 먹으면 깜~~~~~~짝 놀랄 거다.
남편이 식사를 준비하는 날 이면 온갖 감탄사와 미사여구가 msg 대신 팍팍 뿌려진 음식들이 식탁 위에 차려진다.
반면, 남편은 내가 준비한 요리에 대해 불만이 많은 편이다.
교묘하게 칭찬 속에 불만을 잘도 버물려 놓는다.
언젠가 저녁 준비를 하던 남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와~ 오늘 내가 죽이는 된장찌개를 했어! 완벽해!
끈이 엄마, 내 요리가 왜 맛있는지 알아?
왜?
재료를 과다하게 써서?
아니지~~ 내 요리엔 사랑이 들어갔기 때문이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만들기 때문이지.
남편의 간지러운 말에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찰나에 아니나 다를까 사족이 붙는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알아?
당신이 한 요리가 왜 맛이 없을까 고민을 하다 보니 알게 됐지. 캬캬캬.
이건 뭐. . 말의 요지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날 사랑한다는 뜻인지, 내 요리가 맛이 없다는 뜻인지 아님 자길 좀 사랑해달란건지..
아무튼 우린 늘 그렇게 서로의 요리에 대해 교묘하게 신경전을 벌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분명 서로 똑같은 재료를 갖고 만들었는데 그 맛이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끓인 쇠고기 뭇국과 남편이 끓인 쇠고기 뭇국.
둘 다 쇠고기와 무를 사용해 똑같이 쇠고기 뭇국을 끓였지만, 그 맛은 천지차이..
무엇이 문제일까?
손 맛.
끈이가 태어난 이후 우리 부부에겐 반찬을 할 여유가 사라져 버렸기에 시댁에서 반찬을 갖다 냉장고를 채우고 있다.
꽈리고추를 넣은 멸치볶음, 쇠고기로 끓인 미역국, 깻잎 절임 등 딱 봐도 똑같이 생긴, 여느 집에서나 나오는 집 반찬이다.
그러나 그 맛은 썩 다르다.
그래서 난 늘 집 밥을 먹으면서도 집 밥이 그립다.
엄마의 손 맛이 나는 우리 집 밥. .
엄마의 손 맛
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부엌에서 늘 혼자 중얼거리셨다.
아. . 이상하단 말야.
아무리 해도 엄마 나물 맛이 안나.
우리 엄만 이따금 외할머니의 나물 맛을 그리워하셨다.
삼삼하면서도 단백하고, 고소하고. .
엄만 아무리 재료를 달리해봐도 그 맛을 낼 수가 없다며 외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배워두지 않은 걸 가장 후회한다 하셨다.
그렇게 가실 때까지 옆에서 맛이나 봤지 뭘 어떻게 넣어 무치는지 배울 생각을 왜 못 했나 몰라. .
에휴. .언제까지나 엄마가 살아계실 줄만 알았지. .
아기가 이유식을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나간다.
다행히 식성은 제 아빨 닮아 덥석 덥석 주는 대로 잘 받아먹는다.
만약 잘 안 먹는 아기였다면 난 매일 고민하며 더 맛있는 이유식을 만들기 위해 진땀을 뺐을 텐데, 솔직히 난 이유식 조리 중에 맛 조차 보지 않는다.
말 못 하는 아기가 먹는 음식이라고 맛은 어떤지 확인해 볼 생각을 못 했던 것 같다.
살짝 미안한 마음에 아기의 얼굴을 보기가 민망해진다.
이렇게 맛없는 이유식만 해줘서 엄마 요리 싫어하려나?
이 녀석도 제 아빠 요리가 더 맛있다며 엄마를 교묘하게 깔아 뭉개면 어쩌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문득 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만 남겨진 미래까지 도달한다.
우리 아들도 나중엔 내 손 맛을 그리워할까?
내가 우리 엄마 손 맛을 그리워하듯,
또 우리 엄마가 외할머니 손 맛을 그리워하듯.
언젠가 엄마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그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쿨하게 털어내 본다.
엄마, 이 다음에 우리 세대가 엄마 나이가 되면 그땐 김치를 어디서 가져다 먹지? 우리 세대는 김치 담글 줄 모를 텐데..
걱정할 것 없다~~ 요즘 마트 가면 집에서 담근 것 보다 훨씬 맛있는 김치가 줄을 섰으니 사다가 무그라~
우리 아들은 마트에서 김치 사먹으며 엄마 손 맛에 대한 그리움을 채우면 되겠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