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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미 Sep 05. 2015

자식을 얻고 만나게 된  感.

모자이크 유무로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던 시리아 꼬마 난민 크루디가 잠들어 있는 모습이다.

 살 배기 아이가 파도에 휩쓸려온 사진.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말들이 많다.

어쩌면 나도  사진을 보고 충격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내게 자식이 없었더라면 말이다.

너무 적나라한 모습 보여줘도 되는 건지 혼자 따져보고 었을지도 모르.

 곁에 끈이가 다면 말이다.


하지만 자식을 낳고 키우고 있어서일까?

크루디가  거둔 채 해안가에 누워있는  또렷 모습을 봐도 결코 징그럽다거나 끔찍하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저 내가 른 따뜻하게 안아 올려주고 싶단 마음 함께 심장 저밋저 묘한 고통 느껴질 .

모자이크를 했니, 안 했니 그런 대화는 나누고 싶지도 않다.


2014년 4월.

나는 아주 극심한 입덧 탓에 병가를 내고 하루 종일 물 한 모금 마시지 못 한 채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누워있었다.

그렇게 무려 네 달을 누워 지냈는데 그 기간 동안 내가 유일하게 한 것은 숫자를 세는 것이었다.

세월호에서 인양되어 올라온 학생들의 숫자.

나는 교사다.

비록 지금은 휴직 중이나 나의 직업은 교사이다.

수학여행 중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학생들, 그리고 동료 선생님들의 소식은 정말 절망적이었다.

태교에 해롭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하루 종일 뉴스를 보며 그 속상한 이야기들을 지켜봐야만 했다.

울부짖는 부모들의 모습.

한탄하는 가족들의 모습.

많이 안타까웠지만 어느 순간 점점 그 안타까움은 담담해져 갔다.


그리고 1년 후.

끈이를 안고 가족 나들이를 가던 중 달리는 차장 밖으로 '세월호 추모 1주년'이란 글자가 지나갔다.

'벌써 1년이나 지났구나.'

그리고 1년 전에는 몰랐던 감정이 갑자기 울컥하고 솟아올랐다.

'그 부모님들은 썩은 가슴을 안고 1년을 살았겠구나.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버렸다.

누가 볼까 봐 얼른 눈물을 닦았다.


예전에는 내게 없었던 어떤 감정.

무엇이라 명명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어떤 감정이 새로이 생겼다.

내 '자식'이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난 이후로.


처녀시절 학교에서 학생들이 다치거나 싸우거나 울거나 혹은  억울해할 때

어떤 단순한 인간의 공감력과 교사로서의 사명감이 어우러져 나름 따뜻하게 학생들을 잘 보살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저 아이가 내 자식이라면'이라는 자세는 부족했다.

아니, 전혀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젠 길에서 울고 있는 아이만 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왜 울지?

길을 잃어버렸나?

어디 아픈가?


남편도 그렇다고 한다.

마트에서 떼를 쓰다 바닥에 누워 울고 있는 아이만 봐도 우리 끈이가 겹쳐 보여 가슴이 찡하다고 한다.

여러 친구들 사이에 둘러싸여 울고 있는 꼬마를 보니 우리 끈이가 겹쳐 보여 그냥 지나갈 수가 없더라고 한다.


자식을 얻었더니 예전에는 몰랐던 어떤 새로운 감정이 우리 부부에게 생겨났다.

그 감정은 무어라 불러야 할지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을 대하는, 아니 적어도 세상의 아이들을 대하는 시각을 더 진실되게 해주었다.


차가운 바다에서 스러져간 학생들과 크루디를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안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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