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곳곳의 봉쇄 소식이 한국 언론에 소개되며 제 안부를 물어오는 지인들이 부쩍 많아진 요즘입니다. 제가 있는 곳은 주 5회 정도의 핵산 검사를 강제하고 있고, 확진자가 나오면 아파트 단지 전체를 봉쇄하긴 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아직은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상해에 거주하고 계신 분들께 진심 어린 존경과 응원을 보냅니다)
그런 제게 진짜 문제는 봉쇄나 검사가 아닙니다. 문제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입니다. 이 영화가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 도 개봉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왜 이 영화들을 볼 수 없는지에 대해 아직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메신저 단톡방마다 줄기차게 올라오는 스포성 후기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일이 너무 힘듭니다.
중국에서 참기 어려운 일 중에 또 한 가지는 바로 초대리를 하지 않는 중국의 스시를 먹는 일입니다. 상해나 북경 같은 곳은 당연히 제대로 된 스시를 팔겠지만, 제가 있는 곳에서 맛보는 스시의 샤리에는 대부분 초대리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바닷가임에도 불구하고 활어를 네타로 쓰지 않고 옥수수나 미역, 망고, 오쿠라 같은 것을 더 즐겨 사용하는 점도 저를 분노케 합니다. 제가 까다롭다고요? 저는 신라호텔 <아리아케>의 고급 오마카세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다시 한번 지그시 눈을 감고 <미다래>와 <코스트코>의 초밥들을 떠올립니다.
다행히 이곳에는 이런 분노들을 식혀주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중국의 과일은 그 품질과 가격에서 한국과의 비교를 불허합니다. 맛있게 익은 멜론은 압구정 현대백화점 지하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맛있음에도 가격은 1/4 수준입니다. 큼지막하고 먹음직스러운 과일과 야채들이 진열된 마트의 매대를 바라볼 때면 잠시나마 베네딕트 컴버베치가 잊혀집니다.
마트의 한켠에서 또 의외의 기쁨을 발견합니다. 페란 아드리아 셰프와 지금은 없어진 그의 <엘 불리>를 떠올릴 수 있는 이네딧 맥주입니다. 한국돈 7,000원 정도에 750ml 짜리 큰 병을 사서 먹을 수 있는 것은 분명 행복입니다. 10년 전쯤인가요? 토미 리 셰프님의 청담동 <비스트로 디 욘트빌>에서 6만원을 내고 마셨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가격의 하락을 보고 있자니 제가 보유한 코스닥 바이오 종목들이 떠오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 다시 치밀어 오를 때가 있습니다. 확진자가 1명 나왔다고 동네의 모든 헬스장 영업을 중단시키는 일이나, 날씨가 좋아 오랜만의 등산을 떠났는데 등산로 입구에서 입산을 거부당한 일 같은 경험들이요. 재외국민 투표를 하러 옆 동네를 갔다 왔다고 7일간 자가격리를 당했을 때는 짜증이 상한가를 쳤습니다. 이런 날이면 오갈 수 없이 중국에 고립되어 있는 제 처지를 비관하게 됩니다.
이런 중국에서 제가 살아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런 비관과 좌절을 정화하는 저만의 방법입니다. 집 앞 골목을 걷고 있을 때 이곳은 중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여기는 뉴욕이야. 여기는 맨해튼의 차이나타운이야’ 혼자 걸으며 중얼거립니다. ‘뉴욕에도 중국 사람들이 참 많아졌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차이나타운 치고는 너무 본토스럽지만, 아니요 여기는 맨해튼이 맞습니다.
사실 이 방법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내가 실성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더해져 더 큰 좌절이 밀려오기 전에 저는 국가를 바꿔줘야 합니다. 곧 날씨가 더 더워지면 저는 방콕을 떠올릴 겁니다. ‘여기서 더 걸으면 후알람퐁 역이 나오겠지? 쭉 더 걸어서 룸피니 공원까지 가볼까?’ 중얼거릴 대사도 이미 생각해 놨습니다. 겨울에는 러시아나 캐나다 북부를 떠올릴 예정입니다. 심지어 러시아는 가보지 못했음에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