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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훈 May 17. 2022

요즘의 중국에서 살아가는 법


 중국 곳곳의 봉쇄 소식이 한국 언론에 소개되며 제 안부를 물어오는 지인들이 부쩍 많아진 요즘입니다. 제가 있는 곳은 주 5회 정도의 핵산 검사를 강제하고 있고, 확진자가 나오면 아파트 단지 전체를 봉쇄하긴 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아직은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상해에 거주하고 계신 분들께 진심 어린 존경과 응원을 보냅니다)


 그런 제게 진짜 문제는 봉쇄나 검사가 아닙니다. 문제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입니다. 이 영화가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 도 개봉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왜 이 영화들을 볼 수 없는지에 대해 아직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메신저 단톡방마다 줄기차게 올라오는 스포성 후기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일이 너무 힘듭니다.


 중국에서 참기 어려운 일 중에 또 한 가지는 바로 초대리를 하지 않는 중국의 스시를 먹는 일입니다. 상해나 북경 같은 곳은 당연히 제대로 된 스시를 팔겠지만, 제가 있는 곳에서 맛보는 스시의 샤리에는 대부분 초대리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바닷가임에도 불구하고 활어를 네타로 쓰지 않고 옥수수나 미역, 망고, 오쿠라 같은 것을 더 즐겨 사용하는 점도 저를 분노케 합니다. 제가 까다롭다고요? 저는 신라호텔 <아리아케>의 고급 오마카세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다시 한번 지그시 눈을 감고 <미다래>와 <코스트코>의 초밥들을 떠올립니다.


 다행히 이곳에는 이런 분노들을 식혀주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중국의 과일은 그 품질과 가격에서 한국과의 비교를 불허합니다. 맛있게 익은 멜론은 압구정 현대백화점 지하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맛있음에도 가격은 1/4 수준입니다. 큼지막하고 먹음직스러운 과일과 야채들이 진열된 마트의 매대를 바라볼 때면 잠시나마 베네딕트 컴버베치가 잊혀집니다.


<중국 마트의 저렴하고 맛있는 멜론들>


 마트의 한켠에서 또 의외의 기쁨을 발견합니다. 페란 아드리아 셰프와 지금은 없어진 그의 <엘 불리>를 떠올릴 수 있는 이네딧 맥주입니다. 한국돈 7,000원 정도에 750ml 짜리 큰 병을 사서 먹을 수 있는 것은 분명 행복입니다. 10년 전쯤인가요? 토미 리 셰프님의 청담동 <비스트로 디 욘트빌>에서 6만원을 내고 마셨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가격의 하락을 보고 있자니 제가 보유한 코스닥 바이오 종목들이 떠오르네요.


<10년 전 청담동에서 6만원을 주고 마셨던 그 맥주, INEDIT>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 다시 치밀어 오를 때가 있습니다. 확진자가 1명 나왔다고 동네의 모든 헬스장 영업을 중단시키는 일이나, 날씨가 좋아 오랜만의 등산을 떠났는데 등산로 입구에서 입산을 거부당한 일 같은 경험들이요. 재외국민 투표를 하러 옆 동네를 갔다 왔다고 7일간 자가격리를 당했을 때는 짜증이 상한가를 쳤습니다. 이런 날이면 오갈 수 없이 중국에 고립되어 있는 제 처지를 비관하게 됩니다.




 이런 중국에서 제가 살아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런 비관과 좌절을 정화하는 저만의 방법입니다. 집 앞 골목을 걷고 있을 때 이곳은 중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여기는 뉴욕이야. 여기는 맨해튼의 차이나타운이야’ 혼자 걸으며 중얼거립니다. ‘뉴욕에도 중국 사람들이 참 많아졌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차이나타운 치고는 너무 본토스럽지만, 아니요 여기는 맨해튼이 맞습니다.


<Chinatown by Giuseppe Mio>


 사실 이 방법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내가 실성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더해져 더 큰 좌절이 밀려오기 전에 저는 국가를 바꿔줘야 합니다. 곧 날씨가 더 더워지면 저는 방콕을 떠올릴 겁니다. ‘여기서 더 걸으면 후알람퐁 역이 나오겠지? 쭉 더 걸어서 룸피니 공원까지 가볼까?’ 중얼거릴 대사도 이미 생각해 놨습니다. 겨울에는 러시아나 캐나다 북부를 떠올릴 예정입니다. 심지어 러시아는 가보지 못했음에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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