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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훈 May 14. 2022

여행을 계획할 때 자주 하는 실수들

 드디어 다시 여행 계획을 세울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여행지를 고르고, 항공과 호텔을 예약하기 위해 정보를 찾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온라인 상에 존재하는 후기들을 탐독하는 모습을 수험생 때와 대비해서 생각하니 불현듯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몰려옵니다. 저는 과거에 누구보다 열심히, 거의 모든 후기를 찾아 읽었습니다.


 그런데, 후기를 과하게 보고 여행 계획을 세우면 쉽게 탈이 납니다. 여행을 즐기는 것보다 계획을 수행하는 데 초점이 맞춰집니다. 임무를 달성하듯 여행의 시간을 해치웁니다. 호텔 앞 이름 없는 식당이 맛있어 보이지만 갈 수 없습니다. 수영장에서 더 쉬고 싶지만 나가야 합니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도, 그래도 우린 목적지로 향합니다. 우리에겐 임무가 있으니까요. 성공적인 여행의 기준이 ‘내가 느낀 감정들’이 아니라 ‘내가 다녀온 곳들(혹은 내가 한 것들)’이 되어버렸습니다.


<방콕 통로의 유명 망고가게 - Mae Varee>


 눈을 감고 잠시 반성합니다. 내가 원래 이렇게 여행을 했었나?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을 ‘잘’ 한다는 것이 이런 모습일까? 그리고 17살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일본 백배 즐기기’라는 가이드북 하나를 손에 쥐고 도쿄로 떠났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너덜너덜해진 론리플래닛 한 권을 들고 카트만두 시내를 돌던 때를 생각합니다. 물론 그때의 여행과 지금 하는 여행은 그 목적과 유형이 다르겠죠. 하지만 요즘의 정보 과잉이 설렘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한 게 아닌가 반성합니다. 이제 그 자리를 다시 설렘과 의외성, 우연, 박진감, 긴장감 등에 내어주려 합니다.

 

 후기의 과한 습득은 비슷하지만 또 다른 문제를 만듭니다. 이전에 이런 기대를 했었습니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비즈니스로 승급이 되고, 친절한 사무장을 만나고, 도착한 곳의 날씨는 (우기임에도)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하고, 객실은 당연히 업그레이드가 되고, GM이 나를 칵테일파티에 초대하고, 현지에서 외국인 친구가 생기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선 난기류 없이 꿀잠을 자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들만 하나하나 뽑아서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당연히) 찾아올 거라는 헛된 기대를 만들어냅니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나오는 제 몸속 도파민은 이 망상을 멈출 수 없게 합니다.


 이런 기대는 내 여행을 방해하는 괴물이 됩니다. 기대는 초조함으로 바뀌고, 이내 진한 아쉬움이 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지’에서부터 ‘저 직원이 나를 차별하는 건가?’ 같은 근거 없는 비하로까지 이어집니다. 다른 사람의 어마어마한 행운이 누구에게나 당연히 주어지는게 아님은 물론이고, 기실 그 행운 이면의 사정들을 제가 다 알 수도 없습니다. 후기에 모든 것이 다 쓰여 있지는 않으니까요. 업그레이드된 사람의 티어와 티켓 클래스가 나와 다를 수 있습니다. 업그레이드를 도와준 직원이 보유한 주식이 상한가를 쳤을 수도 있죠. 외국 현지에서 친구를 잘 사귀는 사람이 저보다 매력적일 수도 있는 거니까요(아마 그럴 겁니다)


<기타큐슈에서 만난 예쁜 플레이팅의 오징어회 - 숙소 앞 이름모를 이자까야>


 실제 여행에서 후기와 다른 상황이 발생하면 스스로를 자책합니다. ‘내가 후기를 너무 덜 읽었나?, 왜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지?’. 잘못된 자책이죠. 이제는 달라질 겁니다. 정말 필요한 최소한의 후기만 읽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의 행운은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강남에 아파트를 사지 못하고 비트코인을 50만원일 때 매수하지 못한 건 제 잘못이 아닌 겁니다. 여행에 대한 그림을 미리 다 그려놓고, 그 그림을 실제로 정확히 그렸는지 확인하는 여행은 잘 되어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는 본전보다는 좀 더 버는 삶을 살까 합니다. '남들 다 받는 업그레이드 못받아서 실패한 여행'이 아니라 '업그레이드 못받은 사실은 기억도 안날만큼 즐거웠던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중요한건 내가 어떤 여행을 누구와 무엇을 위해 하고 있는가를 잊지 않는 것이겠죠.


<망중한 - Suiran Kyoto Luxury Collection> 


 여담으로, 내가 자주 가봤고 익숙한 여행지일수록 후기를 많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움과 의외성보다는 조금 더 심도 있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말이죠. 그리고 그곳에 대한 내 경험과 이해도는 후기의 내용 중 내게 필요한 부분만 적절하게 습득할 수 있게 도와주겠죠. 저는 이렇게 후기를 활용합니다. 물론 이런 제 방식들이 정답은 아닐 겁니다. 그저 반성문으로 읽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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