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ina Mar 27. 2023

여자가 하다 하다 할 게 없으면...

나는 설계사가 되기로 했다.

43년간 나고 자란 진주를 떠나 부산으로 이사를 왔다.


사실 나는 집을 소유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흔히들 말하는 영끌족이나 하우스푸어가 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이모는 부동산이 바닥이 친 이 시기가 아니면 집을 살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며 마치 신이 들린 사람처럼 나를 몰아붙였다. 오를 만큼 오른 금리는 어떡할 거냐고 물으니 그 정도는 투자라 생각을 하라는 것이었다.

추석 연휴 이틀 동안 나는 이모의 말에 세뇌를 당했는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온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덜컥 집을 사버린 걸 보면 말이다.

그렇게 나는 영도에 내 생애 처음으로 집을 갖게 되었다.

평생 내 밥벌이가 되어준 영어수업을 정리하고 이제는 백수의 삶을 살아야 하니 시댁에서는 걱정이 말이 아닌 눈치다.

"집이 생겨서 좋긴 한데 요새 가게 장사도 안되고 너무 걱정이 돼서 밤에 잠이 안 오는 거라.., "

한 달 2~300씩 버는 돈이 없어진 것도 문제인데 빚까지 졌으니 당연한 걱정이겠다 싶었지만 또 반대로는 서운한 마음이 슬슬 올라오는 거다.

임신을 하고도 출산하기 일주일 전까지 수업을 하고 아기를 낳고도 한 달 만에 수업을 시작했다. 부산에 이사를 와서도 두 그룹이나 화상으로 수업을 하고 있는데...

새집 산 기념으로 시댁어른을 모셔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거기서 또 아버님까지 이 시국에 우리 처지에 집을 산 것은 무리가 아니었냐는 말까지 하시니 서운함이 끝까지 차올랐다.

"제가 벌어서 다 갚겠습니다."

화가 나서 지른 말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진심이었다. '내가 이까짓 돈 몇억 못 갚을까 봐?'

대출을 받고 남은 얼마간의 돈으로 몇 달 간만 지내면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낸 후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얼마 남았어?"

남편은 가끔 생활비가 얼마나 있는지를 물어봤다. 돈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예민해져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시험 쳐서 합격하면 150줄 게"

또 이모다.

설계사 시험 합격하면 150을 준다니 꿀인데? 할 일도 없었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 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설계사가 된 것이다.


여자가 하다 하다 할 게 없으면 보험하고 남자가 하다 하다 할 게 없으면 택시기사가 된다는 말이 있다던데... 맞는 말 같기도 하고...

보험회사로 유인해 두고는 어디 가서 설계사 한다고 얘기하지 말고 영어선생한다고 말하라는 우리 이모... 무슨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는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영어 잘하는 설계사하면  되지 안 그런가?


작가의 이전글 깊은 밤 깊은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