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총량의 법칙
'고통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하죠?
'무덤에 가서도 사춘기는 꼭 겪는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고요.
그래서, 우리 인생을 '다사다난'하다고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봐요.
모두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위로해 주기 위한 배려의 말들이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행복해 보이는 사람의 인생도 파헤쳐 보면 깊은 수렁에 빠진 날도 있고 절벽 앞에서 안절부절못한 날들도 참 많잖아요? 그 힘든 세월을 견뎌내며 쌓인 담대함과 맷집 덕분에 지금 행복을 누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온실 속의 화초보다 비바람을 견뎌낸 꽃이 더 튼튼하고 생명력이 있는 것처럼요.
저도 지난해 갑작스럽게 계약 종료를 가장한 해고로 제 인생이 모두 부정당하는 경험을 했어요. 자랑 같지만 제가 기관장으로 근무했던 3년 동안 센터 역사상 가장 좋은 실적과 평가를 받았고 수익을 거두었지요. 그런데, 운영주체 내부에 문제가 생겨 호봉이 높은 직원을 정리해야 됐는데, 제 자리로 발령을 내시겠다고 했어요. 원래 그분이 기관장으로 있다 승진해서 간 자린데요. '퇴사를 못하겠다며, 다시 재발령을 내달라'라고 하니 타 지역민이었던 저에게 칼이 들어온 거였죠? '자리는 하나인데 사람이 둘이라 미안하다. 지역민이 아닌 게 안타깝다.'라는 게 그분들의 이유였어요.
지역이기주의의 희생양이 되고 너무 억울하고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어요.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저만의 굴을 파고 가족과 절친 2-3명을 빼고 모든 연락을 끊어버렸어요. 그럴수록 커지는 공허와 외로움에 발버둥 쳐야 했지만 제 입으로 퇴사 이유를 말하는 게 죽기보다 싫었거든요. 아파트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도 두려워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서울과 제주로 달아났고요.
누구보다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이라 상처가 더 크고 깊었던 것 같아요. 보란 듯이 더 잘 돼서 코를 납작하게 해 주겠다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덤볐어요. 잠자는 시간 5-6시간을 빼고, 분 단위 계획표를 세워 놓고, 하나라도 빼먹으면 금방이라도 어떻게 될 것 같은 강박에 몸을 혹사시켰어요.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그들에게 매여있는 제 자신이 초라해지고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마음을 내려놓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생각의 문을 닫고 앞만 보고 걷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억울하고 분해서, 나중엔 백지가 되기 위해 무식하게 살다 보니 안 아픈 곳이 없더라고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곡소리 나는 몸과 달리 편안해지기 시작했어요.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진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요. 그때부터, 제가 끊었던 관계를 다시 연결하기 시작했어요. 너무 아파서 잘린 채로 두고 싶을 때도 많았어요. 하지만, 이를 악물고 열심히 고름도 짜고 연고도 발랐지요.
그게 약이 되었는지 어느 날부터 새살이 돋기 시작하더라고요. 절대 아물지 않을 것 같던 상처가 아물고 다시 웃기 시작한 거예요. 아니 웃으려고 애를 썼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네요. 제가 밝아지니 새로운 기회도 찾아오는 거 있죠? 절망과 비관의 늪에 빠져있을 땐 끝도 없는 수렁 같더니, 희망의 끈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자 가제트 팔이라도 된 듯 쑥쑥 늘어나는 게 느껴졌어요.
다시는 재취업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여기저기서 제의가 들어오고 기회가 찾아왔어요. 새로운 희망이 배실 배실 웃는 것 같았어요. 용기라는 한 바가지의 물을 부었을 뿐인데, 그게 마중물이 되어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길어 올리게 된 거죠.
전 지금 다시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꿈을 꾸며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맷집이 굵어지다 보니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넘을 힘도 생겼고요. 두렵고 떨리는 세 번째 스무 살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할 수 있는 근육이 단단하게 생겼어요. 이런 걸 두고 밑지는 장사 없다고 하나 봐요.
또다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일이 없도록 강력한 예방주사를 한 대 맞았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홀가분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아픔만큼 성숙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