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가 필요하지 않은 거래
블록체인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지만, 위변조는 불가능하도록 데이터를 저장하는 기술입니다. '비트코인'과 함께 등장했고, 중앙 서버 없이 여전히 초기 설계에 따라 동작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블록체인은 알려진 것처럼 해시 함수, 채굴 보상 알고리즘, 작업 증명, 전자서명, 노드 동기화, 분산 네트워크 등 다양한 기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실 블록체인은 자료구조의 일종으로, 기존에 데이터 저장 기술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전혀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내부적으로 데이터가 저장되는 방식을 보면, 비트코인을 포함해 대부분의 블록체인 기술은 내부적으로 'hash' 함수라는 단방향 암호화 기법을 사용합니다. hash 방식을 통해 블록들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체인'이 구성됩니다. 중간에 하나의 블록 안에 있는 단 한 글자의 데이터만 변경이 되어도 hash 값은 완전히 달라지는데, 이렇게 누군가가 데이터를 살짝 바꿔치기한다면, 달라진 hash 값을 가진 해당 블록은 다른 블록들과 연결이 끊어지게 되고 해당 내용은 일종의 폐기 처리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블록체인은 위변조나 손실 없이 '프로그래밍된 통제'를 가능하게 합니다.
이렇게 블록체인에서 한번 거래된 내용(비트코인 예시)은 변경할 수도 없고, 삭제할 수도 없습니다. 즉 익명의 상대방을 중재자가 아닌 모든 참여자가 서로를 감시하여 강제로 신뢰하도록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모르는 누군가를 '신뢰'할 필요조차 없도록 합니다.
기존의 불특정 상대방과의 '거래'를 위해서는 중재자가 반드시 필요했는데, 익명의 타인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책임을 물을 수 있고, 신뢰를 보장하는 중재자를 대신 신뢰하고 중재자를 통해 거래해왔습니다. 하지만 직접 거래가 아닌 중개자를 거쳐야만 하는 간접 거래의 방식으로 인해 시간과 수수료라는 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블록체인은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거래할 건인가?"로 바꿨습니다.
익명의 거래 관계에서 신뢰란, 내가 이 거래와 이 관계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기도 합니다. 블록체인은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프로그래밍된 통제"를 선택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