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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대 Jun 11. 2022

그리 대단한 꿈은 없습니다만 (2)

(주의) 군대 이야기

상실감을 극복하는 방법


상실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혹은 방법을 찾고 있거나, 찾는 것을 포기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다 던지고 입대라는 선택을 한 뒤로 둘러싼 환경이 상실감을 서서히 극복하게 해 주었던 것 같다. 


그동안 너무 멀리 있는 꿈과 목표만 바라보다 이루지 못했을 때 낙폭의 규모가 나를 압도했다면 이제는 하루 단위의 작은 목표들을 성취해나가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작은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웬만하면 뭐든 시도할 담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과거나 미래를 좇는 것보다 현재에 살아가는 편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들은 상실감을 극복하고 현재에 집중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줬다.


그러나 알게 되었다고 해서 잘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작은 목표보다 대단한 꿈과 목표를 갈구하고, 별로 가진 것도 없으면서 그마저 잃을까 봐 시도해보는 것에 주저하고,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간다. 그래도 알게 된 것들을 믿고 실천하려 노력을 해본다. 조금씩 나아지길 바라면서.


(1편에 이어서)

하나. 작은 목표라는 심폐소생술


그렇게 입대를 하고 나니 다시 생기가 돌았다. 훈련 하나하나는 고통스러웠지만 오히려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껏 경찰대학에 가겠다는 하나의 목표만 갖고 살아왔다. 그 이외에는 별다른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했던 것도 없었기 때문에 목표를 내려놓고 보니 남은 게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 하나의 목표를 이루고자 달려온 과정에서 하루하루의 작은 목표들이 있었고, 그 작은 단위의 목표들을 이루고 선을 그어가며 버틸 수 있었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왜 저 멀리 흐릿한 목표 때문에 하루의 성취를 소중하게 느껴내지 못했을까.


훈련소에서 첫 번째로 배운 것은 1초만 더 버티고, 잠깐 눈 딱 감고 두려움을 이겨내는 그런 작은 목표들에 대한 성취가 가져다주는 연쇄적 동기부여의 힘이었다. 이 힘이 한 시간, 하루, 일주일, 한 달을 버텨내게 했다. 그렇게 매 순간의 목표에 집중하는 법을 알게 되면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둘. 죽을 확률 100%


사실 나에겐 심각한 고소공포증이 있다. 남들 다 하는 훈련이라 하지만 레펠과 이함 훈련은 세상의 중력이 사라지는 것처럼 겁이 났다. 그런데 겁난다는 감정은 매우 추상적이다. 왜 겁이 나는지 알 수 없다. 죽을 것도 아니고 크게 다칠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 훈련상 뛰어내리는 행동이 가져다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죽음일 것이다. 물론 아주 희박한 확률로.


나름 극복했던 방법은 그 희박한 확률을 100%로 끌어올려, "이 훈련으로 나는 무조건 죽는다."라고 상상하며 자살하는 마음으로 뛰어내린 것이다. 뛰어내리고 보니 살아있는 나를 발견하곤, "뭐야, 운이 좋았네?" 하고 숨을 돌렸다.


높은 곳은 그렇게 두려우면서도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경찰대 입학이라는 유일한 목표를 잃고 느낀 상실감이 스스로를 지구 반대편 타인처럼 멀게 느끼게끔 한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 때 그것이 그리 두렵지 않다면 겁나는 것도 순간적으로 사라지더라. 이것이 두 번째 배움이었다. 그 뒤로 시도하기 겁나는 일이 있거나 리스크가 너무 크게 느껴질 때에는 상황을 마이너스 극한으로 가정한다. 그러면 내가 감수할 수 있는 일인지 직관하게 되고, 할지 말지 빠르게 판단할 수 있다.


셋. 지금보단 좋겠지 & 그때가 좋았지


훈련소를 경험한 분들이라면, "아무리 실무가 그렇게 X 같다 해도 여기보단 천국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고, 훈련소 동기들과 수료만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그렇게 행복한 수료식이 끝나고 실무에 도착했을 때는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에 막 들어온 것 마냥 무겁고 어둡고 갑갑한 공기가 온몸을 짙눌렀다. 고되고 배고프고 힘들었지만 동기들과 의지하며 작은 도전과 성취로 쌓아가던 훈련소가 새삼 그리웠다.


그렇게 지루하면서도 평생 술안주 거리가 가득한 재미난 추억들도 쌓으며 세상 다 가진 말년 병장이 되었다. 이제는 사회에 나갈 날만 기다리며 나가면 뭐든 할 수 있다는 허세와 오만에 가득 찬 채 전역을 하게 된다.


말년 휴가 때 미리 구한 월세집에 덩그러니 누워 천장을 보고 있으니 군대 안에서 동거동락했던 동기와 선후임들이 생각났고, 그때가 좋았지..하고 떠올리는 순간 아차싶었다.


그렇게 오늘을 살고,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늦게나마 배우게 되었다. 사실, 아직도 배우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계속 의식하고 시도해야 한다. 현재에 충실해야만 과거는 더 나은 행복으로 가득할 것이고, 다가올 미래는 더 좋은 상황을 준비해줄 것이니. 그날, 그 해에만 느낄 수 있는 행복감과 좋은 기억들이 있다. 그때는 온전히 품지 못하고 다 지나간 다음 돌이키고 있으면 또 과거에 살 것이고, 상황이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을 기대하면서 오늘을 버티기만 하면 미래에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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