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나은 선택을 위하여
학교에서 일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일을 결정해야 할 때가 많다.
작게는 우리 학급의 일, 조금 더 나아가 우리 학년의 일이나 나의 맡은 업무와 관련된 일, 크게는 학교 전체의 일, 더 크게는 모든 초등학교의 일.
이럴 때 나의 의견이 개입하는 정도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일의 규모가 작을수록 커진다.
규모가 커질 수록 나의 의견이 개입되는 정도는 작다.
하지만 다년간의 학교생활로 알게 된 사실은, 나의 의견이 개입되는 정도가 작더라도 의견을 내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거다.
예를 들어 지금 근무하는 학교는 현장체험학습 장소를 매년 새롭게 결정한다.
이렇게 결정할 때 이전에 갔던 곳과 겹치는지, 다른 학년과 장소가 중복되는지 여러번 검토하고 상의해야한다.
나는 이러한 과정이 무척 소모적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학년별로 갈 장소를 미리 셋팅해두면, 불필요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우리학교에서 갈만한 현장체험학습 장소는 정해져 있는 거고,
이것을 잘 나눠 학년별로 정해두면 얼마나 편한가.
만약 새로운 좋은 장소가 생긴다면, 그 때 그 장소에 대한 협의만 다시 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건의했다.
현장체험학습 장소를 딱 정해두자고.
그런데 까였다.
그리고 또 여러번의 회의를 거친다.
아이들은 이번에 현장체험학습 장소가 어디냐고 계속 묻는다.
왜 거기 가냐고, 저기가 더 좋다고 아우성이다.
미리 셋팅되어 있으면 학생들도 학부모들도 미리 장소를 다 예상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이런 시끌시끌한 과정이 또 한번 생략된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겠단다.
이유라고 말하는 건,
딱 정해놓기 어렵다 / 내년에 또 다른 좋은 장소가 나온다 / 그러면 어차피 또 정해야 한다 / 이런 이야기다.
나로써는 반박한 말이 너무도 많지만, 그냥 수긍한다.
표면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올해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담당자, 학년부장, 교감, 교장 등등) 올해만 넘기자~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지 않나 생각한다.
올해 1-6학년 체험학습 장소를 모두 정해두는 일이 부담스러운거다.
되면 좋지만, 나는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
그것때문이지 않을까 짐작할 따름이다.
하지만 나는 내년에 또 말할거다.
왜냐면 나는 설득당하지 못했고, 더 좋고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구성원의 역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결정권자가 되어 강하게 어필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러자고 내가 학교의 모든 일을 도맡아할 순 없는 노릇이다.
너가 할 거 아니면 조용히 해.
이런 마인드로 일을 하면 편한 부분이 분명 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구성된 집단에서 집단지성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건 힘들게 무를 수확해서 생으로만 먹는다는 생각과 똑같다.
힘들게 무를 키웠으면, 김치도 담아먹고 국도 끓여 먹고, 말랭이도 해먹고, 나물도 해먹어야하지 않겠나.
너가 할 거 아니면 조용히 해.
이런 마인드는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상관 없을 때 빠른 의사결정과 일처리를 위해서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모든 일에 저런 생각을 한다면, 그 집단은 절대 발전하지 못한다.
나는 학교가, 교실이, 교육이 발전하길 바란다.
학교는 사회 변화에 가장 보수적이고 소극적이라는 곳이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반면에 사회 변화를 수긍할 수 밖에 없는 곳이 학교이기도 하다.
사회 변화에 적극 따라가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변화속에서 고여있는 썪은 물이 될 순 없다.
나는 학교가 흐름에 따라 잘 흘러가는 맑은 물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조금 더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는 창구가 있고,
구성원들의 좋은 생각들이 잘 모여 어우러질 때 학교는 흐르는 맑은 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