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변하는 순간
사람 마음이 바뀌는 건 한순간이다.
겉으로 보기는 그렇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그 한순간이 있기전에 여러 번의 타격이 있기 마련이다.
괜찮다, 괜찮다 넘기다가 트리거가 되는 딱 그 한순간이 생긴다.
교사로서 그 순간은 대부분 학보무의 무리한 요구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아이가 어떻게 이상한 행동을 해도 크게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이것은 초등에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중고등학생들을 보면.. 좀 이야기가 달라질 듯)
아이가 교실을 뒹굴어도
친구들을 때려도
수업시간에 괴성을 질러도
잘 안된다고 학습지를 박박 찢어도
선생님에게 물건을 던져도
침을 뱉고 욕을 해도
아이에 대하여 인간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거나 하진 않는다.
많은 부모들이 우리 아이를 선생님이 안좋은 시선으로 볼까봐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이건 진짜 확실하다.
내가 보고 겪은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저런 행동을 해도 아이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옆반의 입장에서, 저건 진짜 힘들겠다 싶은 아이가 있어도
막상 그 선생님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래도 걔 귀여워요."
그 아이의 좋은 점을 찾아 래포형성에 힘쓴다.
그런데 정이 정말 뚝 떨어지는 한순간이 있다.
그건 100% 학부모가 원인이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학부모에게 알릴 때가 있다.
가정과 연계지도가 필요한 경우,
집에서도 이정도의 행동을 하는 아이라는 걸 알아야 할 경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경우 등
연락을 취해야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바로 이 때다.
정 떨어지는 순간.
<어머니, 아이가 친구에게 침을 뱉고 욕을 했습니다.>
자,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이런 전화를 받으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100점 대답
: 어머 선생님. 우리 아이가 사과는 잘 했을까요? 상대방 아이는 괜찮나요? 제가 집에서 다시 이야기 잘 해보겠습니다. 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바로 알려주십시오.
0점 대답
: 우리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할 아이가 아닌데요. 우리 아이 이야기도 들어보셨나요?
0점 대답
: 지난 번에도 그 상대 아이가 우리 아이를 살살 긁더라구요. 한두번이 아닌데 알고 계셨어요?
대부분 자신이 그런 전화를 받으면 100점 대답을 할 거라고 자신한다.
하지만 실전에서 100점 대답을 듣는 건 정말 어렵다.
대부분이 0점짜리 대답을 한다.
3자일때에는 모두 100점이지만, 당사자가 되면 0점이 된다.
이 0점짜리 대답을 들으면 정말 정이 뚝 떨어진다.
학부모에게서?
아니.
아이에게.
진심으로 정이 똑 떨어진다.
선생님이 상황파악도 안하고 학부모에게 전화를 했을까?
상대방이 잘못하면 침뱉고 욕해도 됨?
그리고 쟤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욕하고 침뱉았을까?
이때까지 내가 어르고 달래고 교실에서 전전긍긍한 게 바로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허무함을 경험한다.
뭐, 정이 떨어졌다고 내가 딱히 달라지는 건 없다.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그저 이전에 쏟았던 애정을 이제는 쏟지 않는거다.
위 상황은 그래도 아이가 잘못해서, 내가 연락해서, 부모의 반응을 확인한 사례다.
그런데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일도 있다.
잘 하는 아이다.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이랑 잘 어울리고, 나랑도 잘 지내고.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학부모 전화가 온다.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오해하고 계세요. 장난친다고 야단맞았다는데, 우리 아이가 너무 주눅이 들었더라구요. 우리 아이는 장난을 친게 아니라 장난치는 아이 옆에 있다가 말리느라 그랬다는데 알고계세요?>
처음 이런 일을 겪었을 때는 너무 황당해서 말이 안나왔다.
<선생님 너무 무서워서 말을 못하겠다고 하네요.>
이 아이는 나를 어떻게 생각한 걸까?
나는 진짜 내가 무서운 선생님인줄 알았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무서워서"는 다른 단어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아이가 부끄러움이 많아서 / 선생님이 싫어할까봐 / 선생님이 바빠보여서...........
중요한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우리 아이의 변명을 직접 하고 싶은 학부모의 욕망을 뒤늦게 깨달았다.
단지 그 학부모는 우리 아이의 변명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그 아이에 대한 관심을 거둔다.
관심을 두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내가 보내는 칭찬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내가 건네는 한마디가 어떻게 전달될지,
내가 바라보는 이 시선에 어떤 의미를 담을지,
내가 주는 경고가 얼마나 살벌한 것이 되어있을지,
나는 감당하기 싫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 둘 관심을 끄다보면 교실은 붕괴된다.
붕괴된 교실은 감당하기 어렵다.
딜레마다.
오늘도 모자를 던지며 온교실을 누비는 저 아이를 따끔하게 야단쳐야하는데..
와다다다 쏟아내던 그 아이 엄마 목소리가 아직 귀에 쟁쟁한데..
주변에서 인상을 찌푸리는 다른 아이들이 눈이 들어오는데..
이딴걸 고민이라고 하고 있는게 지금 교실 현장이다.
누군가 욕을 하는 이유는 할말이 없어서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나도 욕이 생각난다.
에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