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교직도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전담도 두 번 정도 했으니 만났던 학생을 수로만 따지면 최소 300명은 된다. 교직 경력이 많은 분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10년 차에 300이면 정년 직전엔 못해도 700명을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 요즘은 경험을 AI로 살 수 있는 시대이나 아직은 AI가 교직에 종사하는 것은 아니므로 학생들이 어떤지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최전방에 있는 사람은 교사가 유일하다. 평범하지 않은 아이, 나와 맞지 않는 아이, 올해의 전반적인 난이도 등 개학 후 일주일 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지금부터 얘기하는 건 그 '정보'에 관한 내용이다. 물론 '느낌' 정도로 바꿔서 얘기해도 무방하다. 여자와 남자를 굳이 나눠서 생각하고 싶지 않으나 그해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요소 중에 성별이 빠질 수 없다. 남학생이 많으면 여학생은 목소리가 작고 표현도 적다. 사건의 중심이 거의 남학생인 경우가 많다. 겉으로 드러나는 갈등이 잦아 일이 커지기 전에 해결할 수 있다. 마음 놓고 훈육하기 좋다. 몸은 다소 힘들지라도 마음은 편하다.
반대로 여학생이 많으면 남학생은 목소리가 작고 표현이 작으냐? 그건 아니다. 남학생은 변화무쌍 사고뭉치다. 여학생이 많을 때 생기는 가장 큰 변화는 심리적으로 미묘한 사건이 많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고로 나도 덩달아 여학생의 심리전에 참여해야 숨겨 놓은 일들을 일찍 발견할 수 있다. 여러모로 피곤한 해다. 물론 어떤 성별이 많든 적든 대쪽같이 바른 학생도 있다. 예외도 존재한다. 그러나 나만의 느낌은 아니고 모든 성별의 선생님이 위와 같은 고충을 토로한다면 단지 편견이라고 치부할 순 없는, 현상이다.
작년에 전담을 하며 목격했던 일이다. 학생들이 혐오하는 남학생이 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6년이라는 세월 동안 남학생은 '급발진하는 지저분한 아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몇몇 여학생들은 그 남학생이 만진 학습지를 만지는 데에도 치를 떨었다. 놀라운 건 전담 선생님과 그 여학생들을 오래 지켜본 선생님들 입에서,
"걔들은 에이스지."
라는 평이 나왔다는 건데, 나와는 전혀 다른 평가였다. 학습지를 앞 뒤로 바꿔서 채점하는 시간이었는데 여학생이 남학생의 학습지를 온갖 인상을 쓰며 손톱으로 집었다. 유난도 그런 유난히 없었다. 결국 학습지가 떨어졌고(여학생의 실수로) 남학생이 직접 주워야 했다.
하루는 자리를 바꾸자고 성화길래 자리를 바꿨더니, 남학생 옆에 앉은 여학생이 울기 시작했다. 대충 눈치만 살펴도 그 남학생과 함께 앉은 게 불만인 듯한데 우선 침착하고 여학생을 앞으로 불렀다.
"무슨 일이야?"
말은 길었지만 요지는 같이 앉기로 했던 친구들과 같이 못 앉았다는 게 이유였다. 영 말도 안 되는 변명이지만 담임이 아니라 그냥 넘어갔었다. 남학생은 본인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인지하지 못해서 상황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진 못하나 자신에게 친구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부분이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급식실에서, 여학생들이 남학생 옆에 앉지 않기 위해 기를 썼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는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옆에 앉은 여학생을 놀리느라 웃기 바빴다. 그래도 약은 아이들은 아니라 따로 불러 세 번째 주의를 줬을 땐 대놓고 웃는 일이 사라졌다. 전혀 감춰지지 않는 미묘한 표정까지 주의해 줬으면 싶은 건 내 욕심이지 싶다.
그 사이 남학생들은 별 생각이 없다. 올해는 유독 '웃음'과 '개그'에 집착하는 남학생이 많아서 3월에는 수업 분위기가 산만했다. 서로 오가는 말이 험악하다 못해 가학적이었는데 주의를 줬더니 조심하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올해 학생들 기질이 나쁜 건 아니다.
민석이라고 유독 말이 많은 남학생이 있는데 말이 어찌나 많은지 입을 쉬지 않는다. 국어 시간이었던가? 아무튼 사위가 조용한 시간이었는데 민석이가 물을 마시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리는 허밍 소리. 나는 누가 내는 건가 싶어 두리번거렸더니, 세상에나 민석이었다.
"민석아, 너는 어떻게 입을 다물고도 시끄럽냐."
했더니 민석이는 멋쩍은 기색이 전혀 없고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 시끄럽고 말이 많다고 웃긴 건 아닌데 친구들이 보기에 작고 활발한 민석이가 귀여워 보여서 자꾸 웃어주는 걸까. 반장인 민구는 또 어떻냐면 천지분간을 못하는 편이다. 동료 교사의 말을 들어보면 부모님이 '친구 같은 부모'를 표방한 교육관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훈육이 전혀 안 된 채로 학교에 와서 생(生) 그대로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투명한 성격이다.
전반적으로 훑어보면 흉이 반이지만 그것도 딱 여기까지다. 흉을 그만 보겠다는 게 아니라 딱 위에 적은 것 빼고는 다 괜찮은 반이다. 급하게 포장 한 번 해보자면 올해는 로또 1.5등 당첨 정도로 해 두는 게 좋겠다. 사실 좋은 것보단 나쁜 게 더 기억에 남는다고, 재밌었던 일도 많았는데 시간이 너무 지나 쓰는 바람에 다 까먹어 버렸다. 밀리지 말고 생각날 때마다 재밌었던 사건을 기록해 두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