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yu May 30. 2024

당신의 아이는 교실에서 안전한가요?

 교사가 되고 나서 내 무능함에 크게 실망했었다. 나는 가르쳐도 배우는 학생이 학습의 의지가 없다면 개선의 여지가 없었다. 선배 교사는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포기해, 그러면 편해'였으나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게 그들이기도 했다. 쉽게 말하자면 업계 관계자 간의 입버릇, 은어였다. 정상적인 교사라면 다들 자기가 가르쳤던 학생이 어디 가서 손가락질은 안 받았으면 싶은 마음일 테니. 왜 내 눈앞에 나타나, 자꾸 나타나하며 탄식하는 노래처럼 눈에 밟히니 가르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었다. 포기하는 것마저 이렇게 어려우니 세상에 쉬운 일은 참 없나 보다.

 돌이켜 보면 나도 어른들이 하는 행동, 말, 게임은 모두 따라 하고 싶었던 거 같다.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만의 세계에 동화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20이라는 수가 '진화'의 마지막 단계라도 되는 것처럼 20대를 동경했다. 요즘도 다를 바가 없다. SNS에서 보이고 들리는 말, 게임, 행동은 다 따라 해 보고 싶은가 보다. 1년 전에도 그런 동경의 연장선에서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몇 해 전에 유행했던 물병 세우기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단순히 세우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고 물병교에 경도된 성도같이 광적인 모습이 관찰되는 놀이었다. 예를 들어 보자면 물병을 던지기 전에

 "지호는 수진이랑 내일 사귄다."

 하고 공언한 뒤 물병이 서면 그게 꼭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처럼 열광했다. 처음부터 그 놀이가 마음에 들진 않았으나 그렇게 사사건건 참견을 하자면 서로 피곤하기에 내버려 뒀다. '준석이랑 예빈이랑 10초 뒤에 뽀뽀함' 따위의 내용을 서슴없이 얘기하는데 서로 웃음이 끊이지 않길래 장난이겠거니 내버려 뒀다. 그러다 한 10여 분이 지났을까. 모니터 너머로 언뜻 듣기엔 10분간 초등학생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속옷'이 등장했다.

 "혜원이는 남자 팬티에 환장한다."

 그러다 장애인이 등장한다.

 "세상의 모든 장애인은 위대하다."

 진심을 담은 말이었다면 적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진심이 아니었고 그저 '장애인'이라는 단어에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뜨렸다.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어디까지 가나 보자는 심정으로 조금 더 들었다.

 "지숙이는 언제 어디서 누구랑 성관계를 할지(실제로는 굉장히 저속적인 단어를 사용했다)만 생각한다."

 나는 그대로 동그랗게 앉은 학생들을 일으켜 세웠다. 남녀가 섞인 10명의 학생이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갈 무렵이라 나머지 16명의 학생도 근처에 서성거리고 있었고 얼굴이 빨개지는 건 나뿐이었다. 10명을 빈 교실로 데리고 가 본인이 어떤 말을 했는지 다시 읊게 했다. 다행히 10명 중 5명 정도는 '사귄다' 정도의 언행이 전부였는데 문제는 5명 남짓의 학생이었다. 그 와중에도 웃음이 터지는 학생이 몇 있었고 나는 내가 왜 이 자리에 서 있는지 갈피를 잃었다. 평소에도 그 5명 학생의 보호자와 유선 연락한 적이 있었다. 그중 몇은 이렇게 얘기했더랬다.

 "선생님, 우리 반에 종호 있잖아요. (종호 욕). 걔랑 저희 애랑 절대 같이 못 놀게 해 주세요."

 '어머니, 끼리끼리 노는 거예요'라는 말을 삼켜야 했던 건 정상적인 학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가르칠까 보다 먼저 떠오른 것 하나.

 '이거 혹시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나?'

 나는 선뜻 학부모에게 알릴 수 없었다. 선배 교사, 동료 교사, 교사 커뮤니티에 올려봐도 의견은 제각각이었다. '성 사안이니 얘기해야 한다', '그래도 기분 나빠하는 학생이 없었으니 그냥 넘어가라 책잡힌다'. 대한민국 교육이 어째서 여기까지 떨어졌을까.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학부모와 교사 자격도 없는 폭력 교사를 엄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동학대법인데 무고죄가 성립이 안 되니 악용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나는 교실에 앉아 있는 16명의 학생에게 너무도 미안했고 그들의 부모님이 아주 조금 미웠다. 왜 목소리를 내지 않으시냐고, 5명 때문에 교실 분위기가 엉망이 되는 걸 왜 지켜보고만 있으시냐고. 너무 소시민적인가? 교육청과 교육부에게 아무리 소리쳐도 변화가 없으니 별 수 없었다.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말 뿐이었다. 생활 태도나 언행이 불량해도, 수업 중에 마음껏 떠들어도, 온갖 욕설과 성적 암시가 떠돌아도 교사는 교실에서 16명을 지킬 수 없었다. 정말 많은 걸 원하지 않는다. 지속적인 경고에도 행동에 변화가 없는 경우 학생을 가정에서 즉시 인도해야 하는 정책과 아동학대 무고죄 적용. 아니 나는 이제 그런 거엔 관심을 끄기로 했다. 그냥 내 월급만 꼬박꼬박 받았음 싶다. 결국 나는 5명의 학부모에게 그 일에 대해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진상 학부모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