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의 페미니즘은 자신의 상처를 지나치게 투영하며 곁길로 빠지고 있다는 의견이었는데 그 골조를 같이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저서에서 제시한 방향성에 백번 공감한다. 익명 뒤에 숨어 여자 남자가 서로를 폄하하고 혐오하는 꼴이 우습다.
내가 오랜 시간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얻은 것은, '우리'로 묶인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내 권리는 희생하고 싶지 않습니다-
얼마 전 한국의 빈부격차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기사 아래에 충격적인 댓글이 달렸다. 빈부격차는 사회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의 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었는데 적지 않은 추천을 받은 터라 여운이 길었다. 어떤 사고방식의 결과로 빈부격차는 사회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는지 모르겠으나 글쎄, 내게 빈부격차는 사유 재산의 등장 이래로 사라진 적 없는 사회 문제다.
이공계 대학원생과 늦은 저녁을 먹으며 환경 문제에 대해 토론했을 때도 비슷하게 흥분한 적이 있었다. 대학원생은 본인 지도 교수가(기계 공학 관련) 환경 문제에 회의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환경오염은 심각하지 않다는 식의 논리를 펼쳤더랬다. 그의 주장, 혹은 교수의 주장은 일전에 읽었던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에서 제시한 근거를 바탕으로 했다.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근거를 뒷받침하는 논문 일부가 악용되어 환경오염을 가짜로 치부했던 사례에 불과하다는 게 내 의견이다.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세상에서 오랜만에 가치중립적인 책을 만나 기뻤다. 저자인 김지윤 씨의 유튜브를 즐겨 보면서 어쩜 저렇게 사람이 똑부러질까 싶었고 저서가 있을 거 같다는 확신에 찾은 책이 본 도서다.
제목만 봐서는 권리 어젠다를 다루는 여느 도서와 유사하게 한 색채가 강할 것 같았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최대한 중립을 지키며 곁길로 새고 있는 대한민국의 ‘권리'의 방향성을 확실히 제시했다. 언제나 주류에 설 수 없는 개인이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인상 깊었던 한 문장을 공유한다.
‘하지만 내가 좋고 싫음의 선호도 가 다른 이의 삶을 이등 시민의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건 인권 침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에 관한 얘기도 와닿았다. 나는 대한민국의 페미니즘은 자신의 상처를 지나치게 투영하며 곁길로 빠지고 있다는 의견이었는데 그 골조를 같이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저서에서 제시한 방향성에 백번 공감한다. 익명 뒤에 숨어 여자 남자가 서로를 폄하하고 혐오하는 꼴이 우습다.
중학생 때 학생의 권리에 대해 심취해 다소 반항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권리를 부르짖던 때가 그립기도 하다. 지금은 사는 게 바빠 당장 내 코가 석자다. 그러나 김지윤 씨의 저서를 읽다 보니 다시금 생각을 고쳐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국회의원도 국가도 바뀌지 않는다. 무엇보다 교사이기도 하니 내 교실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소외당하는 학생은 없었는지 점검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