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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다 Feb 03. 2024

엄마에게 아이의 겨울방학은

첫째 아이의 겨울방학이 시작된 지도 어느덧 7주가 되어가고 있다.

두 달이 넘는 긴 방학을 아이와 무얼 하며 어떻게 보낼지 은근히 걱정이 됐었는데 그럭저럭 별문제 없이 지내고 있다.




겨울방학이 되기 전 첫째 아이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생활계획표를 만들었다.

학교에서 만들어 봤다고 하더니 스케치북에 동그라미를 크게 그리고는 뭔가를 열심히 적기 시작했다.

완성했다고 보여준 생활계획표 속에는 1부터 12까지의 숫자만 보였다.

11시부터 3시까지의 시간을 꿈나라라고 적어놓고 달도 별도 그린 것을 보니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나중에 두고두고 놀려먹을 생각으로 증거 확보차원에서 사진으로 남겨놓고는 아이가 지킬 수 있는 생활계획표를 함께 만들다.

늦잠을 자겠다고 벼르며 8시에 일어나겠다고 적고(종종 9시에 깨기도 한다), 좋아하는 만화책 보는 시간, 텔레비전 보는 시간부터 챙기는 아이, 그래, 하고 싶은 것도 해야 방학이지.




어린이집에 다닐 때의 여름방학이 3살 아이 인생에서 맞이한 첫 방학이었다.

그때는 일주일 정도 되는 방학 동안 아이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를 가야 할지 스케줄표까지 펼쳐놓고, 열심히 궁리를 했더랬다.

아이와 단둘이 집에서만 시간을 보낼 자신이 없었다고나 할까. 키즈카페든 미술관이든 어디라도 다녀와야 하루를 잘 보냈다는 생각에 내심 뿌듯해했었다.

하루, 이틀쯤은 친정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오거나 친정엄마가 손주를 봐주러 오시기도 했다.

그러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이후부터는 코로나로 인해 밖으로 나가는 일이 부담이 되기도 했고, 아이들 짐을 챙겨 가는 것이 더 힘들게 느껴져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 혼자 집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방학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긴장하던 초보엄마였는데 엄마 연차가 늘어난 것에 아이가 자란 것이 더해져 아이와 방학을 보내는 데에 웬만큼 여유가 생긴 듯하다.

웬만큼이지 결코 여유만만인 것은 아니기에 아이의 방학은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다.

우선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같은 메뉴를 연속해서 먹지 않는 깜찍한 식성을 갖고 있어 고민이었는데 아이가 먹고 싶다는 음식으로, 최대한 아이 입맛에 맞춰주는 쪽으로 타협을 봤다.

나 혼자였다면 냉장고에 남은 반찬을 꺼내 대충 한 끼 먹고 치웠겠지만 떡볶이, 스파게티, 어묵탕, 소시지볶음 아이 입맛에 맞는 메뉴로 만들어주고 덕분에 나도 맛난 한 끼를 먹는다.

혼자만의 시간이 없다는 것 또한 왠지 모를 부담이 됐는데 그도 그럴 것이 아이의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아이와 하루종일 꼭 붙어있어야 하기에 나는 블로그도, 브런치도 다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유일하게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작업이었지만 그것이 아이보다 우선할 수는 없었기에 최대한 상황에 맞추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블로그는 주 4-5회 포스팅은 발행하고 있고, 브런치는 12월 이후로 아무 글도 발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그래도 매일 브런치에 어떤 글을 쓸지는 생각했다. 아이들과 침대에 누워서 '오늘은 꼭 써야지. 어떤 주제로 써볼까?'라며 생각하다가 잠을 이기지 못해 잠든 날이 수없이 많았을 뿐...

변명을 한마디 덧붙이자면 아이의 방학이 4주 차에 접어들 무렵 심한 감기몸살을 앓았다. 혹시 독감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몸이 아팠다. 검사 결과 독감이 아니긴 했지만 그렇게 몸이 아픈 것은 오랜만이었다. 나이 먹은 티를 내는 것인지 회복도 더디었다. 약을 2주일쯤 복용했더니 그제야 욱신거리던 몸에서 벗어날 있었다.




아이의 방학이 좋은 점도 있다.(혹시 나중에 아이가 이 글을 본다면 서운해 할 수도 있으니)

엄마가 휴대폰을 보면 잔소리하는 아이 덕분에 휴대폰을 손에서 놓은 대신 책을 실컷 읽을 수 있었다.

소파에서 아이와 한 몸처럼 붙어 앉아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다.

아이가 읽어주기를 원하면 읽어주고, 혼자 읽겠다고 하면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었다.

그림책부터 초등도서, 에세이, 소설, 자기 계발서 등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내 손을 거쳐갔다.

아이가 혼자 앉아 그림을 그릴 때는 나도 옆에 앉아 조용히 필사를 했다.

나의 문장은 적지 못했지만 좋은 문장을 옮겨 적으며, 언젠가는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기를 꿈꿔보았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아이의 생각을 더 많이 알게 되고, 아이가 많이 자란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가까이에서 아이의 취향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2월은 다른 달보다 날짜가 적어서 그런지 설 연휴가 있어서인지 왠지 모르게 마음의 여유가 있다.

곧 입춘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내 마음에도 봄바람이 불듯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래도 방심하지는 말아야지.

아직 아이의 방학이 한 달은 남아있으니 아이와 단둘이 보낸 오붓한 추억 몇 가지쯤은 만들어봐야겠다.





제목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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