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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정 Mar 05. 2024

버리면 인생이 달라진다.

남편을 버리면 인생이 달라질까요?



어제저녁 큰 딸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 저녁 먹었어요?"

"아직, 밥 생각이 없네. 너는?"

"지금 퇴근 중이에요. 이제 집 가서 먹어야죠."

"별일 없으시죠?"

"왜?"

"아니 그냥, 엄마 잘 계시나 하고 전화했어요. 식사 잘 챙겨 드세요~"

"너도 잘 챙겨 먹어라. 시험준비하느라 스트레스가 좀 있지? 곧 지나갈 거야. 얼른 들어가라"

"네, 엄마도 건강 잘 챙겨요"

전화를 서둘러 끊었다. 눈물이 나왔다. 울먹이는 목소리를 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 내가 참아야지, 딸들이 이렇게 지켜보고 있는데....

버리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어느 정리의 달인이 말한 것을 기억한다. 남편을 버리고 싶다. 내 인생이 달라지는지 한번 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일요일 남편과 언쟁이 있었다. 시어머니의 88세 생신을 집에서 시누이 식구들과 함께 먹었는데 잘 먹고 어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오더니 혼자 다시 술상을 차린다. 어묵탕과 소주!

시댁은 104동, 우리 집은 102동이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일이 있을 때 항상 가까이 있어서 편한 점도 있고 불편한 점도 있고, 그렇게 30년을 살고 있다. 


평상시에 말이 별로 없는 남편이다. 술이 들어가야 마음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88세 생신인데  형 내외를 비롯 당신의 아들 딸들이 할머니 생신에 대한 태도가 성이 차지 않았나 보다.

작년에 결혼한 아들내외도 참석을 하지 않고 큰 딸도 오지 않은 이런 상황이 서운하다는 의미의 말 끝에 내가 뱉은 말이 화근이 되었다.

"얘들 바쁜데 할머니 생신까지 참석하라고 그런가요!  선물하고 전화로 인사하고 하면 된 거 아닌가!"

"결혼하고 처음 할머니 생신인데 내려와야지.  아들이 못 오면 손주 며느리라도 와야 하는 거 아냐! 

내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면 자네가 아이들에게 말을 해야지, 왜 방관만 하는 거야!"

"자네는 그렇게도 이해심이 많고 너그러운가! 내 생일 때도 아무도 오지 말라고 해.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내 엄마랑 둘이서만  보낼 거니까 아무도 오지 말라고 꼭 전달해!" 이 달 말일이 남편의 생일이다.


감정이 격해지면서 남편의 입에서는 욕이 나왔다. 쌍시옷 들어가는 말까지 들었다. 술이 들어가면 입이 거칠어지는 남편이지만 나에게까지 이런 적은 없었는데, 주고받은 말을 다 옮길 수는 없지만 그렇게 하고 남편은 담배와 라이터를 들고 현관을 나갔다.


사이클에 20여분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이 좀 진정이 됐는지 들어오면서 하는 말이다.

"엄마 집에 가서  자리끼 봐드리고 있는데 엄마가 빨리 죽어야 하는데 이렇게 오래 살아서 너희들 성가시게 한다는 말에 감정이 욱하고 올라왔네. 엄마가 자네 눈치를 보는 것 같아서 속상하고 그래. 왜 엄마가 눈치를 보게 하냐고!" 


나는 시어머니가 눈치를 보게 하는 며느리 일까.

내 며느리에게 나는 어떤 시어머니 일까.


막내딸을 데리고 퇴근하는데 "엄마 도넛 먹을래요?" 한다.

이 말에 또 눈가가 촉촉해진다.




#백일백장#책과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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