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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정 Feb 25. 2024

찰밥 했냐

나는 나쁜 딸인 것 같다.

"언제 오냐? 찰밥 했냐? 찰밥 했으면 갖고 와라. 먹고 싶다."


오늘이 보름이라고 한다.  2024년 새해 첫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비가 와서 보름달을 볼 수 없어서 아쉬운 밤이다. 커피 사모님의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여보세요~"

"은애 씨! 뭐 해~ 얼굴 보고 싶어 전화했어. 정미 씨 와있는데 자기 보고 싶다네." 

사모님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데 정미 언니가 내 이야기를 해서 연락을 하셨다는 것이다.


내일 교회 반찬을 준비해야 해서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었다.

설에 외출 나오셔서 부탁한 비타민을 사서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보러 가야 할 생각에 잠깐 망설였다. 그런데 그냥 엘빈 카페에 가는 것으로  10초 만에 결정했다. 


모처럼 한가한 토요일에 우중 커피를 마실 생각을 하니 흥분되었다. 얼마 만에 마시는 핸드드립 커피인지 모른다.

직접 로스팅 한 원두를 핸드드립으로  내려 주셨다. 행복했다. 항상 남에게 커피를 내려주기만 했는데, 남이 내려 준 커피를 마시려니 어색하고 몸 둘 바를 몰랐다. 행여 그런 나를 눈치를 챘는지도 모르겠다.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요양원이다. 


"언제 오냐? 찰밥은 먹었냐? 찰밥 했으면 좀 갖고 와라. 엄마 먹고 싶다."

"찰밥이 어디 있어요. 못 먹었는데! 없어요. 좀 있다 비타민 사서 갈게요."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사실은 아침에 남편이 시어머니 드린다고 찰밥을 해서, 나는 한 그릇을 먹고 나왔다. 요양원에 계신 다른 어른들은 찰밥을 드실 수가 없어서 찰밥을 안 했다고 한다. 

요양원에 계시면서도 정신은 멀쩡하니 절기마다, 때마다 생각나고 먹고 싶은 것들이 많으신 우리 엄마다.

보름인데 찰밥 안 했냐며 먹고 싶다고 가져오라는 것이다. 난감했다. 옆에 언니들의 눈치도 보였다. 창피했다.  왜 창피했는지 모르겠지만 엄마와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부끄러웠다. 엄마를 대하는 나의 퉁명스러움이 창피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유독 찰밥을 좋아했던 엄마였다. 그런 엄마를 미처 못 챙긴 나에게 짜증이 났다. 

"먹고 싶은 거 많아서 엄마는 오래 사실 거예요. 오늘은 없고 다른 날 요양원 갈 때 찰밥 해서 갖다 드릴게요" 


" 어머 은애 씨, 찰밥 했는데 엄마 좀 갖다 드려요. 나물이랑 몇 가지 있으니 도시락 싸줄게요."

전화 내용을 들은 사모님이 벌떡 일어나셔서 주방으로 가셨다. 정미 언니랑 점심에 찰밥을 해서 먹고 남은 밥이 있다는 것이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렇게 까지 마음 써 주시는 사모님이 너무 감사했다.

도시락을 건네주셨다. 

"따뜻할 때 얼른 엄마 갖다 드려요. 얼마나 드시고  싶겠어요." 

도시락을 건네받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남도 이렇게 어른이라고 챙기는데 난 왜 엄마를 그렇게 홀대하는 건지,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다. 따뜻하게 말도 못 한다. 항상 퉁명스러운 딸이다. 

 

"사모님, 감사해요. 어떻게 해요. 이렇게 맛있는 도시락을 그냥 받기만 해도 돼요?"

"괜찮아요. 얼른 엄마 갖다 드려요." 등을 떠밀며 나를 재촉하신다.

도시락을 들고 카페 문을 나서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너무 감사했다. 

엄마는 먹을 복이 있으신가 보다.


뭉클한 가슴으로  요양원에 도착했다. 찰밥 도시락과 비타민과 수건을  요양 보호사 에게 전달하고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엄마 얼굴을 봤다. 

"맛있게 드세요. 찰밥이 없어서 사 왔어요." 여기까지 말을 하고 

'그러니 다음부터는 그런 이야기하지 마시고 요양원에서 나오는 것 만 드세요. '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웅얼거렸다. 나쁜 딸! 남이 해 준 밥 갖다 주기만 한 거면서 그것도 귀찮냐! 못됐다.


얼마나 왔을까. 다시 요양원에서 전화가 온다.

"아야. 수건이 너무 크다. 보통 수건보다 조금만 더 크면 돼야. 엄마가 이불을 안 덮으니 배 덮을 라고 그란다. 내일 교회 끝나고 가면서 갖다 줄래? "

"알았어요."

수건이 너무 크다고 적은 사이즈로 갖다 달라고, 내일 교회 끝나고 오라신다.

'바깥 소식이 궁금하고 딸이 자꾸만 보고 싶어서 그러시겠지.' 혼자 생각에 긴 한숨이 나온다.

 

요양원을 나오는데 비타민 값이라고 6만 원을 주셨다. 

"엄마가 돈이 어딨어. 괜찮아. 안 주셔도 돼요."  안 받는다는 데 기어코 요양보호사 편에 주신다.  

"엄마가 주시니 그냥 받아서 가요~" 요양보호사가 내 손에 돈을 쥐어준다.

지난주에 큰아들 식구들이 왔다고 하시던데 용돈 좀 받으셨나 보다. 허긴 설에 우리도 용돈을 드렸으니 현금이 좀 있으신가 보다. 주머니에 꾸깃꾸깃 집어넣은 만원 짜리가 내 마음 같다. 


엄마... 유달산에 꽃피면 함께 꽃구경 하러 외출합시다.

찰밥은 맛있게 드셨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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