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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정 Mar 13. 2024

제주의 봄

4월의 제주를 기다리며

혼자가 아니지만 혼자인 듯한 여행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닐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렇다. 함께 길을 걷지만 대화는 없다. 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주변을 둘러싼 돌담을 보기도, 묵묵히 내딛는 발걸음의 발끝을 바라보기도 한다. 가끔 누군가 툭하고 던진 한마디에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만이 허공을 울린다. 

    

한 달에 한 번씩 제주도를 다닌 지 1년이 넘었다. 그래도 제주도는 갈 때마다 다르다. 어느 날은 큰 산으로 다가오다가 어느 날은 화려한 무지개로 다가오기도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3월의 제주를 향해 커다란 배에 몸을 실었다. 씨월드훼리 회사에서 작년부터 시그니처 패키지 상품으로 ‘제주올레 트레킹’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우리 여우회 친구들을 중심으로 몇몇의 주변 지인들과 함께 트레킹에 참여를 한다. 2024년에도 우리의 트레킹은 이어진다.

     

3월 상품은 올레 13코스다. 13코스는 용수포구에서 저지예술 정보화 마을까지 16.2km 코스로 바다를 끼지 않고 내륙으로만 걷는 코스다. 고사리 숲길, 낙천의자공원, 뒷동산 아리랑길, 저지오름 입구에서 저지오름 둘레길을 돌아 저지예술 마을의 정보화 센터에서 마무리되었다.    

  

고목숲길을 걸으며 니체의 산책길이 생각났고, 저지오름 둘레길을 걸으며 수줍은 미소로 고개 내민 새순들을 보면서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낀다. 돌담 사이에 놓인 하안 소라 껍데기들을 보면서 묘한 흑백의 수줍음을 느껴 보기도 한다. 밭고랑에 뒹구는 콜라비와 양배추, 브로콜리, 양파, 무를 보면서 총 천연색의 제주를 마음에 담아 본다. ‘보리다, 메밀이다!’ 하는 논쟁도 있었지만 연둣빛 초록의 여린 몸부림의 물결을 보면서 “예쁘다.”를 연발하는 쉰 중반의 여인들이 우리 친구들이다. 유채꽃 사이로 얼굴 내밀어 보며 셔터를 눌러줄 것을 외친다. 깔깔 대는 웃음소리와 함께 유채꽃의 하늘거림은 중년의 한 시절을 추억으로 소환한다. 교복 입던 그 시절의 단발머리 소녀들의 웃음소리 인듯한 착각이 들었다.   

  

걷다가 쉬다를 반복하며 16.2km를 완주한 우리들은 스스로를 자축하며 선상회식을 준비한다. 제주올레 수산에 주문하고 여객 터미널에서 퀵으로 받은 회를 선상에서 노을을 안주삼아 잔을 부딪혀 본다. 하루의 고단함과 뿌듯함으로 업그레이드된 자신들의 영광을 위한 잔을 들어 목을 축인다. 제주가 주는 행복을 오늘도 마음껏 누리고 육지를 향하고 있다.   

  


쥴리엔 어거스트 카페에서 마신 모닝커피도 이 순간 잊을 수 없다. 높은 천장에 하얀 벽 위에 놓인 추억의 사진들과 예쁜 잔들을 보면서 주인의 감성이 느껴졌다. 이른 시간에 문을 여는 카페가 없는데 이렇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를 만난 것 자체만으로 오늘 제주여행은 행운이다. 

정성스럽게 내온 에스프레소를 목으로 넘기며 입안 가득 퍼져오는 고소한 넛트 향이 오전의 긴 걸음으로 인한 피로를 날려주었다. 은은히 올라오는 제주 향기에 가만히 눈 감아 본다.


만약에 내가 혼자만의 여행을 한다면 이렇게 조용한 카페 한 곳을 정하고 이곳에 오는 사람들과 만나며 커피를 내리고 싶다.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오랜 수고로 힘든 카페 주인의 쉼을 위해 내가 한 달만 일을 해 주는 것이다. 새치 머리 하얀 미소에 리넨 앞치마를 두르고 주둥이 긴 주전자를 위로 아래로 돌리며 커피를 내린다. 커피 향기와 나그네들의 낯선 향기와 묘하게 어울리는 상상을 해 본다. 

하루 일이 끝나면 다시 또 걷는다. 기다려 주는 이는 없지만 가고 싶은 곳이 많은 호기심 많은 나를 찾아가는 걸음을 걷는다. 4월의 제주를 기다리며..... 



#백일백장 #책과강연 #펜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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