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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정 Apr 24. 2024

엄마의 딸이면서 딸의 엄마인 나

나는 엄마에게 왜 퉁명스러울까

스마트워치의 떨림으로 전화를 확인한다. 요양원에 계신 엄마의 전화다. 

수업 중인데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아야, 잘 지내냐~ 엄마 달력이 필요하다. 책상용 달력 남은 거 있으면 하나만 갖다 주라. 박서방 이랑 식구들 생일 표시해서 갖다 주면 좋겠다.  갖다 줄래?"

"엄마가 거기서 생일을 알아서 어떻게 하려고 그래? 생일 챙겨 줄라고 그래요?"

"응, 아니 그리고 달력이 없으니까 불편하다. 언제 올래? 일요일에 교회 끝나고 올래?"

"달력이 지금 어디에 있겠는가! 집에서 찾아보고 있으면 갖다 주고 없으면 못 갖다 주네요."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짜증내면 안되는데 엄마 전화만 받으면 짜증이 난다. 

나한테 나는 짜증인지 엄마를 향한 짜증인지 잘 모르겠다. 


내 기억 속의 엄마와 나는 거절당한 기억이 먼저 남는다. 

피아노를 너무 배우고 싶어서 피아노 학원에 보내 달라, 그림을 너무 그리고 싶어서 미술학원에 보내 달라, 선생님이 엄마 한번 학교에 오시라고 했는데 엄마는 한 번도 학교에 오지 않았다.

학원에 보내달라는 나에게 엄마는 이런 말을 했다.


"이모집에 가서 미라한테 배워라."

"교회에 가서 배워라."

공짜로 배우라는 이야기만 했던 엄마의 말과 타박의 기억이 있다. 

그림을 잘 그렸던 나는 선생님이 전공을 해보지 않겠냐며 부모님 상담을 신청하기도 하셨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는 응하지 않으셨다. 

배우지 말라는 이야기를 그렇게 돌려서 한 걸까. 

그 시절 나는 우리 집이 가난한 줄 알았다. 

책을 사달라고 해도 "빌려서 봐라."

신발이나 옷을 산다고 해도 시장에서 엄마가 아무거나 사다 주는 것을 입고 신어야 했다. 


나의 생각, 취향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돈, 돈 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기억 속의 엄마다.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 집은 가난하지도 않았고 엄마는 부동산도 몇 채를 가지고 있었고, 양옥집에 살고 있는 우리 집을 사람들은  부잣집이라고 말하는 것을 나만 몰랐다. 

남동생이 둘인데 엄마는 동생들 키울 욕심에 딸인 나에게는 뭐든지 아끼고 안 쓰고 꼽꼽쟁이 엄마였다는 것을 교복을 벗으면서 알게 되었다. 


이런 엄마의 기억 때문에 내 자녀들에게 인심 좋은 엄마로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1남 2녀의 자녀들이 자라서 각자의 전공을 찾고 지금은 자기 몫의 일을 하는 사회인이 되었다.


"엄마가 우리들이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엄마가 내 엄마여서 감사해요. 다른 부모님들도 다 그런 줄 알았는데 부모님들 때문에 고민하는 친구들 이야기 들으면서 놀랐어요."

아이들이 성장해서 독립을 하고 나서 한 번씩 집에 내려와 나에게 해 준 이야기 들이다. 


적어도 아이들의 기억 속의 엄마가 내 엄마와 같은 엄마는 아니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거절의 기억 속의 엄마가 지금은 요양원에 계신다. 그렇게 좋아하는 아들하고 살아보지도 못하고, 모아둔 돈은 어떻게 쓰였는지도 모른다. 당신의 노후가 요양원에 있는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엄마와 똑같은 나이가 되려면 아직 30년을 더 살아야 하기에 장담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딸의 마음이 이런 마음은 아니길 바라본다. 

엄마의 딸이면서 딸의 엄마인 나의 진짜 모습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것일까.

내가 바라는 모습이 어쩌면 엄마도 바라는 모습일 텐데.....


책상달력에 가족들 생일을 표시하고 있다. 

좋아하시는 증편이라도 맞추고 딸기 한 상자 들고 주말에는 요양원에 다녀와야겠다.

이런 마음까지는 없었는데 글을 쓰다보니 이런 마음의 생각이 올라온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쓰다 보면 내면아이의 엄마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 



#책과강연 #백일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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