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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은 Oct 01. 2022

The Name - 명규






‘비밀’의 무게를 헤아려 본다. 누군가 꼭 지켜달라고 신신당부하던 속삭임, 너에게만 털어놓는다며 조심스레 입을 떼던 무거운 진실 기타 등등. 세상 살며 누군가의 비밀이, 혹은 자신의 비밀이 깃털처럼 가벼울 이가 흔할까. 아마 없을 거라고 단정 지어 본다.

일단 내게 있어 비밀의 무게란 마음 어딘가에 스페인 햄 하몬처럼 무겁게 매달려 축 늘어진 이미지다. 오래 굳어 딱딱하고 짜고 떫고, 무거운 것. 누군가의 비밀은 내게 천장에 매달린 하몬처럼 딱딱하고 굳은 데다가 오래 묵혀 보관해줘야 하는 약간의 처치 곤란과 막막함이다.     


숨기어 남에게 드러내거나 알리지 말아야 할 일, 밝혀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비밀이라 일컫는단다. 서너 살 꼬맹이도 ‘이건 비밀인데.’라며 꼬마 김밥만 한 손가락을 세워 입술 앞에다 갖다 붙이는데 모르는 이가 있나.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아주 어릴 적부터 비밀을 배웠다. 꼭 지켜줘야 할 누군가의 마음, 사건, 감정, 사고. 알고 있다 한들 누군가에게 2차 가공해서 내보내지 않아야 하는 것도 자연스레 배우며 말의 무거움과 비밀의 난처함도 익혀간다.      

하지만 비밀이란 건 꼭 누구 하나쯤에 은밀하게 털어놓고 싶어지는 희한한 성질을 지니기도 했다. 누구에게도 터놓을 수 없고 알리기 막막한 것인데 사람이 참 희한하다. 꼭 하나 누군가는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었으면, 이 답답하고 복장 터지는 사실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아주 골 때리는 성질을 지닌 모순이 여기서 생겨난다. 비밀이란 것은 내 입술 밖을 지나 타인의 귓가에 닿는 순간부터 비밀이 아닌 게 된다. 아무에게도 알릴 수 없는데 이미 누구 하나에게 알린 걸 어떻게 비밀이라 할까. 내 속 후련하게 털어놓고서 영영 아무도 몰라야 할 그런 완벽한 비밀은 여태 없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대체 왜 그 모양일까. 설마 이 드넓은 지구에 누구 하나라도 나의 처지를 공감해주고 이해해주길 바라는 걸까. 정말 그럴 때가 있다. 그래서 지나치게 걱정하고 깊이 고민해줄 가까운 이가 아닌 아주 모르는 사람에게, 아무런 접점이 없는 아주 낯선 사람에게 뭐에 홀린 듯 술술 비밀을 털어놓고 후련해 본 적이 말이다.

아주 낯선 이에게 털어놓는 크고 작고 무겁고 가벼운 여러 비밀. 털어놓으면서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경험이 종종 있지 않은가.

사실 그런 마음으로 나 역시 생판 처음 보는 이에게 나의 비밀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것도 성인 남자와의 대화에서 극도로 위축되던 쫄보 시절에.

나는 나의 삶과 그 어떤 접점이 없던 명규를 만났다.     



생활권이 아닌 아주 다른 동네를 많이 쏘다닐 때였다. 서울 여기저기 구석구석 그냥 하염없이 걸어 다녔고 생전 처음 듣는 동네로 버스를 타고, 마을버스까지 타고 돌아다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어디로 영영 꺼져버리는 기분이었다. 몸도 마음도 닳을 대로 닳아서 병원에서는 가만히 쉬는 게 제일 좋다고 했지만 그러다가는 침대 매트리스를 뚫고 저 지하 바닥 어디로든 영원히 꺼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문득 그냥 나가 죽을까, 위험하지만 위험한 줄 모르는 생각에 등 떠밀려 무작정 집 밖을 나서게 되곤 했다.     

전까지는 대책 없이 낙관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능했겠지만, 버스를 타고 한강을 지나치거나, 깨끗한 하늘 덕에 멀리 있는 인왕산 자락이나 광화문 처마가 보이면 기분이 나아지는 거였다. 다들 뭐에 쫓기듯이 바삐 걷는 걸 보면서 멍청하게 멈춰 있는 나를 조금 한심해하기도 했고 광화문 앞에서 미군 해산 집회를 여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아직 저 정도로 미치지 않아 다행이라며 위안을 얻기도 했다.

그냥 나가 뒤질까, 했던 마음이 그래도 오늘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다.라는 흐름으로 변하는 데 홀로 조용히 감사해하며 집으로 기어 들어왔다. 아직 뒤지면 안 될 이유가 너무 많았다. 매일 새삼스레 새로운 것들을 다시 느끼며 집에 돌아갔고 어린이집 문 앞에서 환히 반겨주는 아이를 보며 이를 악물던 때였다.     


그 동네 개들이 다 모이는 듯하던 경리단길의 어느 카페를 두 번째 찾아간 날, 거기서 꼬물이와 명규를 만났다.

딱 고소하고 부드럽게 가벼울, 우유 거품이 폭신하게 오른 카페라테의 색을 지닌 골든 레트리버가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들어섰다. 단번에 시선이 빼앗길 존재감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웬 머리 긴 남자가 세상 귀찮은 얼굴로 들어섰는데 그게 명규의 처음이었다.     


마침 전 남편의 동거 사실을 알았고 면접 교섭마다 그 집을 데려간다는 사실을 안 지 며칠 안 되었을 때였다. 쟤는 이런 거 알 필요도 없고 모르고 평생 살겠지, 무해함 그 자체로 열심히 꼬리를 살랑대는 꼬물이를 힐긋댔다. 그 천진한 등장에 아주 잠시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가만히 힐긋대다 보니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너버린 키워왔던 강아지들도 생각났다. 손바닥이 간질거렸다. 모르면 몰랐지, 윤기 흐르는 베이지색 털이 어떤 질감 일지 너무 잘 알았다.

하필 너무 잘생기고 예쁜 강아지여서, 어떤 시궁창에 빠져 있든 간에 인간은 무해한 털뭉치를 거부할 힘이 없었다.     


“죄송한데, 혹시 만져도 돼요?”     


민소매 아래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타투를 하고서 구몬 학습지를 풀고 있던 명규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도무지 내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개성 강한 인상과 달리 명규는 넉살 좋게, 아니 심지어 상냥하고 친절하게 허락해줬었다. 고집스러우리만치 강해 보이는 여러 외형의 이미지와는 아주 다른 목소리였고 눈빛이었다. 아무리 봐도 팔이 너무 현란한데, 이렇게 착하게 말하는 사람이라니. 그 점에 작게 마음이 놓였었다.     


명규는 어쩌면 그 순간만으로 스쳐 지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골든 레트리버를 산책시키고 대낮에 카페에서 일본어 구몬 학습지를 푸는 타투 많은 장발의 남자는 너무나 뜯어보고 싶은 캐릭터가 분명했다. 좁디좁은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혔던 첫인상은 스트릿 브랜드 디자이너, 웹디자이너, DJ 같은 거였다.

그러나 짐작 그 어디에도 명규의 정체에 대한 정답은 없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사람 띄엄띄엄 보다니. 불과 1년 반 전의 나는 그렇게 띄엄띄엄한 사람이었다.     



한참 ‘꼬물이’라는 사부작대는 이름을 지닌 명규의 강아지를 쓰다듬고 있자니 어디서 뭔 버튼이라도 눌린 걸까. 나는 처음 본 명규에게 굉장히 미친놈 같은 별난 짓을 하고야 말았다. 맹세코 이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아니 조금 남 탓을 해보자면, 명규도 그다지 학습지를 열심히 풀고 있지 않았다.


사람 사이에 ‘결’이라는 것이 있다. 그 결이라는 건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꼬물이를 쓰다듬는 동안 왠지 모르게 명규가 결이 아주 다른 사람은 아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 지나와 굳이 따져 보자면 그게 당장 처음 본 명규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후련하게 외칠 대나무 숲을 만든 계기라면 계기인 셈이다.

천진난만하게 열심히 꼬리를 흔드는 꼬물이, 가타카나가 앙증맞게 펼쳐진 손바닥만 한 학습지, 처음 보는 여자의 고해성사 아닌 고해성사를 들어주게 생긴 명규, ‘와 쪽팔려서 다시 여기 못 오겠다.’란 생각을 하면서 누가 묻지도 않은 일을 술술 불어 토해내는 나.     


뒤에 얘기해준 건데 명규는 그날 나를 보며 왠 미친 여자인가 보다.라고 했단다.     



명규는 바텐더였다. 두 번째였나 세 번째 마주쳤을 때 명함을 줬는데 그때야 비로소 하는 일이 뭔지 알았다. 돌이켜보니 그 두 번과 세 번이 되는 동안 나는 내내 내 얘기만 해댔던 거였다. 좋은 얘기도 아닌데 말이다.

진심으로 들어준다는 기분이 들어 배려고 나발이고 다 내버리게 되었었다. 어찌 보면 진짜 무례할 정도로. 털어놓기 결코 썩 유쾌한 주제가 아니었는데도 어째 이상하게 신나서 떠들어 댄 기분이 들었을 땐 이미 꽤 미안한 뒤였다.

어쩌면 직업상 들어주고 받아주는 포지션이 익숙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명규의 경청은 그런 질감이 아니었다.

떠들면서도 무언가 공통된 사연이 닿아있는 기분이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명규는 저와 별 공감이 되지 않는 주제라도 기꺼이 수용하고 어떻게든 본인 식으로 소화해냈을 사람이란 결론이 나왔다. 그렇지 않으면 퍼뜩 이해하기 어려울 법한 전개에 그리도 잘 끄덕일 수는 없는 거였다.


어릴 적 부모님이 이혼한 명규는 홀로 운동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문장은 단순하다만 지금으로 오기까지의 명규의 이야기도 보통 서사로 흔하게 치부할 수는 없는 내용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고생 많이 했네, 라는 모두나 할 위로로 퉁칠 수 없는 어린애의 외로움과 허전함은 어딘가 남 같지 않은 구석이 있어서 그랬을까.

뜻밖에 알게 되어 버린 다 커버린 어른 남자의 지난날에서 내 아이의 훗날을 엿봤다. 명규만의 이야기, 그만의 지나버린 사연이라고 귓등으로 듣고 넘기기엔 남겨져 윙윙대는 단어가 넘실댔다.      


그렇지만 명규는 다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중2병이 창궐하던 시절, ‘어차피 엄마 아빠도 남녀 사인데 안 맞으면 헤어질 수도 있지. 그게 뭐라고. 부모님들의 문제일 뿐이지 너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친구의 한 마디에 아주아주 큰 충격을 받고 깨달았다고 한다. 그때 명규는 어디 알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기분이었을까.

움츠러들고 의기소침할 필요 없다는 깨달음으로 사고를 확장하고 마음을 다졌을, 미성숙하기 그지없어도 어른보다 나았던 중2 무렵의 어설픈 명규를 떠올렸다.

남들에게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절대 숨을 필요도 없는 일이라고 마음먹기까지 수많은 생각과 방황으로 앓았을 어린 명규는 내 아이의 미래일 수도 있기에. 그 말이 아주 오래오래 마음에 맴돌았다.     



명규를 보면서 느낀 것은 사람에게 있어 올바른 자존심이란 얼마나 대단한 힘인가, 이다. 명규는 내가 저지르고 벌인 일도 아닌 것에 주저앉혀져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게 몹시 자존심 상한다고 했다.

굉장히 맞는 말이 아닐 리 없었다. 어차피 세상에서 날 지킬 유일한 존재는 애석히도 나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를 지키지 않는데 누가 누굴 지키고 어느 꿈을 이루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길까. 서른이 넘는 동안 단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명규에게서 그런 걸 배웠다. 아주 접점이 없던 사람에게서 가장 필요한 문장을 익혔다.

만일 명규가 한탄과 원망에 쩔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그 어느 것에도 뛰어들지 않았다면 별안간 세상에 아이 손을 잡고 덩그러니 서 있는 싱글맘의 희망이 되지 못했을 거다. 영웅의 기준이 저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처한 현실과 상황을 딛고 더 빛이 나는 세상으로 뛰어오르려고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 그래서 기어코 어떻게든 이뤄낸 사람이야말로 우리 일상 속의 영웅이 아닐까 싶다.

이 표현이 지나친 비약이라면 적어도 자기 삶의 주인공, 내 삶의 영웅 정도는 거뜬하지 않나 싶다.  

   

어느 세월 순식간에 서른이 된 명규가 그토록 어른스러운 소리를 하고 자기 밥벌이를 하고, 멋진 사람과 안정적인 사랑을 나누며 기절하게 멋진 강아지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타인 1, 흔해 빠진 캐릭터를 지닌 누군가는 위안을 얻었다.

남다른 용기와 재능, 지혜로 보통 사람들이 해내지 못하는 것을 해내어 추앙받는 것이 영웅이랬다. 드라마 때문에 추앙이 판을 치고 있긴 한데 아무튼 추앙까지는 아니어도 기꺼이 박수를 보낼만한 서사를 지닌 명규야말로 최소한 경리단길, 용산구, 스케일 좀 키우면 중구 정도는 아우르는 영웅이라 하기에 괜찮지 않을까. 남산 3호 터널 언저리를 지날 때면 가끔 이렇게 엉뚱한 생각을 한다.     


튼튼한 자존심을 지닌 사람은 이렇게 주위를 밝힌다. 삐딱하게 자존감 낮은 사람이 이토록 강하고 유쾌한 에너지를 전할 리 없다. 나아가 명규는 이제 자기 삶의 테두리에 두런두런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하고 싶어 노력한다고도 한다. 

전까지는 사람 한 명에게는 주어진 사랑과 관심에 총량이 있다고 믿었다. 그랬던 나이기에 대체 명규가 어디서 사랑을 배워 어떻게 이리 나누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건 명규 같은 캐릭터가 어디에든 꼭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다.

누군가의 서러운 비밀이나 한탄, 자꾸 움츠러드는 좁은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 꼴을 못 보는 사람이 대체 세상에 왜 안 필요할까.      


그럴 수 있다고. 나도 그랬는데 살다 보니 이렇게 살아졌고 더 나아질 거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꿋꿋한 자존감은 비단 본인 자신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의 희망이 되기도 한다는 걸 이 페이지를 빌어 명규에게 전한다.

패기로 똘똘 뭉친 근거 없는 자신감이면 아무렴 어떨까. 명규 말마따나 패배 의식에 젖어 아무것도 못 하고 정체되어있는 것보다 뭐든 될 거라며 세상을 향해 큰소리치는 편이 훨씬 쿨하다.      


내 비밀이 더 이상 비밀이지 않게 된 뒤로 불과 1년 반밖에 흐르지 않았다. 그 사이 삶의 작은 기쁨으로 큰 아픔을 잊으며, 잊히지 못하면 잠시 잊히는 척이라도 하면서 사는 거라 깨닫게 되었다.

별 게 아니지만 그렇게 된 데에, 이만해진 데에 감사하다.     



명규가 내어주는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좋은 술들로 정말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 안의 모든 사람들과 잠시 머물던 모든 이들에게서 돈으로 얼렁뚱땅 얼버무릴 수 없을 만큼 치료를 받았다. 쥐뿔 모르는 처지였건만 서서히 취향이란 것을 쌓아가고 있다. 내게 또 다른 언덕이 생긴 기분이다. 그곳에서 자라는 풀과 꽃이 모조리 위스키를 마시며 자라는 상상을 하면 갑자기 취하기라도 한 듯 기분 좋은 헛웃음이 난다. 그 언덕 위를 꼬물이가 뛰어다니고 그 뒤를 열심히 뛰어다니는 숨찬 명규까지 상상해봤는데 진짜 골 때리고 귀엽다.

아무래도 1년 반 전 그 미친 날, 꼬물이를 쓰다듬고 명규에게 미친 여자처럼 과거를 읊어댄 거, 흑역사가 분명하지만 참 잘한 일인 듯싶다.      


아직 머물던 세계가 아닌 세계를 접하며 영웅이 되기 위해 뛰어오를 정도의 힘을 모으진 못했지만, 여기를 밟고 저기를 밟아 올라가 이 담을 넘어보자는 의지는 다지게 되었다.

그래서 누구든 만일 막막하게 무거운 비밀을 지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면 명규를 꼭 만나보라고 하고 싶다. 당연히 물론 우연이라는 게 쉬이 자리를 마련해주진 않겠지만, 찾아서라도 봤으면 한다.


혹시 누가 잘생긴 골든 레트리버를 데리고 한남동과 그 일대를 휘적휘적 다니거든 오리고기 육포로 살살 꼬드겨 보길. 어찌 됐든 생각보다 친절한 김명규를 보면 내가 한 이 모든 말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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