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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은 Oct 07. 2022

풀어(pour up)






이야기에 앞서 이 에피소드를 전해야 할지, 말지 참 오래 고민했다.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르겠지만 내게 있어선 굉장히 껄끄럽고 거북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태 참으로 구구절절 많은 핑계와 이유를 들먹였다. 새로운 사랑을 기꺼이 맞이하지 못하는데, 주저앉아서 헉헉 숨을 몰아쉬는 데에, 많은 트라우마와 못나게 구는 모든 행동에.

새로움을 경계하는 이유에 그리도 많은 글자를 할애해 설명했지만, 어딘가 개운치 못한 데에 찜찜함을 느껴야 했다. 이 얘기를 해도 괜찮을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역한 악취를 느낄 수도 있을 거라 망설였다. 혹은 말도 안 된다며 믿지 않을 수도 있을 노릇이기에, 이따금 떠오를 때마다 머리를 싸맸다.


나 하나 개운하겠다고 털어놓는 건 어디에도 도움이 될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참 많이 주저했다. 그러나 이런 기가 막힐 일이 나 하나만의 일은 아닐 거였다. 지루하게 지나는 과정 중에 깨달은 건데, 내 사연은 차라리 귀여울 지경이었다. (꼭 말해둘 것은 결코 남의 불행에 내 불행을 비춰 안도를 얻은 게 아니라는 점이다.)

어쨌거나 이 귀여운 에피소드를 전하기에 앞서 쌀알만 한 과장도 섞지 않기 위해 수없이 원고를 들여다보고 읽어보고 고쳤다.

차라리 이게 다 픽션이었으면, 아직도 믿고 싶지 않은 건 누구보다 나임을 밝힌다.      


어렸을 때 소리 소문 없이 자리 잡았을 성(性) 의식은 다분히 평범했다. ‘어디 여자애가.’라는 소리를 더러 듣기는 했어도 뭐 7, 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처럼 터부와 억압이 있진 않았고, ‘절대 결혼하기 전에는 남자랑 자면 안 돼!’ 같은 소리를 들어본 적은 다행히 없었다. 애매한 시대였다. 너무 꽉 막힌 것도 아니고 너무 오픈된 것도 아닌 채로 알음알음, 적당히 알아서 해결할 부분도 있었고 글로 배워야 하는 부분도 있는 때를 지나왔다.

요즘은 아니던데 나는 엄마와 터놓고 후련하게 섹스에 대하여 이런저런 생각과 의견을 나눈 일이 없었다. 평범한 집의 모든 딸이 그러하듯 적당히 혼자 알아서 했고 눈치껏 겪어왔다. 눈치껏 알고 눈치껏 몰래몰래.

‘뭘’ 알아버린 어른의 몸을 지닌, 그러니까 어른의 세계를 엿보기만 하다가 훌쩍 뛰어들어 누군가를 어를 줄 이는 어른이 되어버리고서는 어쩐지 말하기가 멋쩍고 비밀스러워졌다.

과연 그 누가 내 남자친구 되게 잘해. 우리 속궁합은 문제없어. 같은 말을 거실에서 엄마와 빨래 접다가 털어놓느냐고. 아마 흔치 않았을 거다.     


어른이 된 사람들이 은밀하게 속궁합이 어떻네, 저렇네 따질 때 끄덕이기도 하고 했다. 아 중요하지. 이런저런 포인트들이 어긋나서 좋지도 않고 마음 불편한 섹스를 나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왜 안 맞을까. 피지컬로 도무지 극복이 안 되는 거라면 대화를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서로 윈윈 하는 길을 찾으면 되는 거 아니냐며 되게 아는 척하던 20대 초중반을 보냈다.


그렇게 오만방자를 떨다 결혼을 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결혼을 결심한 데에 섹스가 큰 역할이 아니었다. 여태 겪은 남자 중 최고고 너무 좋고. 그런 게 절대 아니었다. 그냥 적당했다. 좋지도 않고 너무 싫지도 않았고 앞으로 남은 생에 적당히 행복하고 알맞겠다 싶은 정도였다. 섹스에 도덕이 끼어드는 게 어딘가 겉도는 맛이긴 한데, 알음알음 모두가 아는 결혼의 분명한 목적이 그렇지 않은가. 번지르르해 보여도 속성을 따져보면, 돈 같은 거 떼고 보면 말이다.

결혼을 하는 건 법적으로 파트너를 인정받는 게 아닌가. 부덕할 것이 전혀 없는 사회의 인정을 받은 파트너. 서로의 파트너로서 소임을 다하겠다는 내용 역시 수많은 결혼의 서약 중 하나이다. 나 역시 인지하고 끄덕였다. 정작 아무것도 몰랐으면서 말이다.      


아시다시피 후에 아이를 하나 낳았고 별문제 없었다. 둘만의 사소하고 작은 불만과 문제가 있었겠지만 그건 굳이 기억해내고 싶지 않다. 더는 색다를 것도, 새로울 것도 없이 일상에 쫓겨 사는 부부의 섹스는 그저 그렇게 루즈해지기 마련이었다. 연애할 때는 너무나 중요하던 것이 점차 순위에 밀려 차트 밖으로 쫓겨나갔다. 분명 여기까지는 굉장히 평범하고 흔한 전개였다.      



이혼 조정 날 아침, 떨리는 손끝으로 읽어 내려가던 반소장에서 그런 걸 읽었다. 부부의 의무, 아내의 의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잠자리를 거부했기에 상대도 유책 사유가 있다는 내용을 말이다. 충분히 이혼 사유로 꼽을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어이가 없었다.

이야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그래서 그랬구나. 바로 조정 날 아침 기준으로 한 달 전의 일이 떠올라 오소소 소름이 돋았었다. 대체 그게 뭐라고.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나. 언제부터 섹스가 그렇게 우선순위가 되고 꼭 중요한 거였을까. 냅다 덮쳐지고 받아들여야 하는 거면 도대체가 나를 인격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걸까. 이런 사람과 법정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싸워야 한다는 게 겁났다.           


이혼 소송을 하기 전, 이미 풍비박산 나서 한껏 위태로운 사이에 육체적인 스킨십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그는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들어와도 다른 방에서 잠을 잤다. 아이와 함께 누워서 자는 데도 불안해서 거의 모든 밤을 뜬눈으로 보내던 때였다. 혹시 또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소리를 지르고 힘으로 뭘 어쩔까 봐 노심초사하던 시기를 보내고 악에 받친 그와 한 공간에 있어야 하는 매일이 두려웠다.

너 같은 여자랑 더는 못 산다고 하던 그의 입에서 먼저 이혼이란 말이 등장했고 순순히 그러기로 했었다. 그래 놓고 그 중간에도 얘기 좀 하자며 몇 번이나 일방적으로 윽박질렀고 거기에 완전히 질려버렸다. 힘든 건 당연했고 시간이 어서 흐르기를 어느 때보다 간절히 바랐다.     


그날은 이혼 서류를 쓰러 가기로 한 날 아침이었다. 전날 밤 귀가하지 않은 그는 아침이 되어 어린이집 등원을 위해 식탁에서 아이 밥을 먹이고 있을 때 한껏 취해서 들어왔다. 그때가 아침 8시쯤이었다.

어떻게 살든 무슨 짓을 하든 이제 나 알 바 아니라고 마음속에서 선을 그었으니 동요하지 말자고 꿋꿋이 아이에게 밥을 먹였다. 그 무렵 즈음 아이는 아빠가 다가와도 힐긋대기만 했다. 불안하기만 한 집안 분위기를 그렇게 빨리 알아차렸다. 못내 미안하고 속상했지만 내가 태연히 굴지 않으면 안 됐다. 아무 일 없듯이 밥을 먹여야 했고 밝은 목소리로 가방을 챙겨줘야 했다.

휘청대며 집안에 들어선 그는 식탁 맞은편에 앉아 힘겹게 벌겋게 달아오른 눈을 흘겼다. 그 눈빛에 대고도 태연해야 했다. 원수도 그렇게는 안 볼 텐데, 했는데 애석하게도 부부는 원수보다도 못하게 서로를 미워하고 있었다.     


4살에 불과했지만 어엿하게 앉아 아침 식사를 하는 아이도 있는데 그는 또 폭주했다.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을 하며 스스로 흥분해 소리를 질렀고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눈물까지 보였다. 그러면서 식탁을 내리치고 엎으려는 제스처를 취하며 협박했다. 오물오물 밥을 씹어 삼키던 아이는 큰 눈을 데굴데굴 굴려댔다.     

폭력에 익숙해지는 게 그래서 무서운 거였다. 아, 또 시작이네.라는 체념과 어째 오늘 또 피곤하겠구나, 라는 한숨이 터져 나온 걸 보면 그랬다.

눈 한 번 움찔하고 바로 타성에 젖은 사람처럼 무심히 시선 한 번 안 주고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마치고서는 이제부터 녹음할 거라고 알리고 녹음 버튼을 눌렀다. 만일을 위해서 늘 기록해뒀다. 몰래 녹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금부터 녹음한다, 촬영하겠다, 언제나 상대에게 사전에 알렸다. 그러면 그는 그러거나 말거나 네 멋대로 해보라며 더 패악을 부려댔다. 그딴 걸로 협박하냐고 더 협박했다.  

   

어쨌든, 그렇게 도착한 경찰이 와서 해주는 건 없었다. 화를 가라앉히셔라,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라, 하며 남편을 데리고 나갔다가 다시 들여보내거나 다른 방에 보내는 게 조치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 아이 보기 창피한 줄도 모르고, 어디 한번 또 신고하고 네 멋대로 해보라고 윽박지르는 사람이 그나마 멈칫하는 게 경찰이었다. 음주운전을 3번 하더니 아무래도 제 발 저린 모양이었다.     


자, 당일 아침에만 이런 일이 있었다. 이혼 서류를 쓰기로 했으며 또 트러블이 생겼다. 경찰관 2명이 와서 한 번만 더 신고 접수되면 접근 금지 명령을 이행해야 한다고 했으며 아이 앞에서 최악인 아빠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 데다가 술에 취해 깨지도 못한 채 법원으로 향해서 서류를 써야 했다. 그저 그런 흔한 평일 아침이라 보기엔 너무나 스펙터클하고 침울하기 그지없고 혼란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대체 그런 순간에.          


법원에서 2시간을 기다려 만난 그와 제발 마지막이길 바라며 서류를 작성했다. 한 달 뒤면 정말 끝이겠구나, 공허함을 잔뜩 묻히고 집에 돌아왔다.

그 무렵엔 집 꼴을 엉망으로 두었다가는 정말 와르르 무너지기라도 할 거 같아서 강박적으로 정리하고 설거지를 해댔다. 셋의 보금자리였지만 폭력과 두려움이 넘실대는 곳. 혼자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휑한 집을 확인하고 엉망으로 벗어둔 그의 옷가지를 발로 휙 밀어뒀다.

그리고는 아이와 내가 자는 침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으려 했다.     


순간 클로즈업으로 효과라도 준 듯 시야가 확대되고 좁혀졌다. 내가 아침에 일어났던 자리, 매일 밤 머리를 풀고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아이를 재우는 침대 옆, 그 바닥에 눈이 닿았다.

심장이 쿵쾅댔다. 등줄기에 서늘한 한기도 들었다.     


볼품없이 뭉개진 휴지 조각 몇 개가 보란 듯이 너저분하게, 거기 그렇게 나뒹굴고 있었다.     

처음에는 설마, 했다. 설마 그럴 리가. 말도 안 돼. 저게 가능할 리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방 안에 휴지를 두지도 않았고 침대 옆에 뭐 굴러다니는 게 싫어 그 흔한 협탁 하나 두지 않았었다. 그러니 머리카락이 떨어져 돌아다니는 것도 싫어 매번 쓸고 다니던 곳에 내가 휴지를 저리 버려둘 일이 없었다.     

나쁜 쪽으로 두근대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휴지 뭉텅이를 손으로 집어 들었다. 그는 비염이 있었다.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곧 이혼할 아내와 아이가 잠드는 침대에 앉아 소회라도 새기며 코를 풀었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본능적으로 거의 확실한 가정이 있는데 애써 무시하며 설마, 하며 심호흡을 했다.

설마 진짜, 이 와중에. 이 와중에 그건 아니겠지. 강간을 당한 것도 아니고 추행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모멸감이 발바닥 아래서부터 치고 오르는 게 느껴졌다.

아닐지도 몰라. 평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마음속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쩍, 하고 갈라져 쪼개지면 저 바닥 깊은 곳으로 내가 빨려 들어갈 수도 있을 흔들림이었다.     


그 안에 내용물은 설마, 하고 예상하는 그게 맞았다. 코끝을 스치는 비릿하고 역한 냄새로 바로 알아챘다. 홀로 욕구를 풀고 정액을 닦아낸 휴지를 냅다 그렇게 둔 것을 내 손으로 치워야 하는 현실이 이혼 서류를 쓰고 돌아온 참에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뜻대로 휘둘려주지 않는 아내 때문에 화가 났고 그 바람에 열받아서 술 취해 소리 지르고 아이 앞에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인 뒤, 경찰이 왔고 곧 이혼 서류를 쓰러 가야 하는 그 틈에 그는 그런 결과를 만들어낸 거였다.

그 와중에 해소는 해야 했다니. 그의 말마따나 남편을 기다려주지도 않고 늘 애랑 먼저 자버리는 아내가 통 성욕을 풀어주지 않으니까. 그건 아내의 의무인데 안 해주니까.

술을 먹고 오건, 피곤하든 어쨌든 원하면 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 해주니까. 그래서 정액을 닦아 아무렇게나 내던진 휴지 정도는 네가 버려야 한다! 이거였을까?     


넌 대체 왜 늘 먼저 자버리냐는 이해 못 할 푸념을 듣던 날이 떠올랐다. 가사와 육아, 일과 자질구레한 걸 다 내게 밀어두고서 회사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그래서 한잔하는 건데 그것도 이해 못 하느냐고 몰아세우던 그 입에서 풍기던 술 냄새가 어디선가 희미하게 나는 듯했다.     

그 난리의 아침을 보내고 이혼 서류를 쓰러 가기 직전에, 잔뜩 취해서 내가 자는 침대에서 그는, 그랬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차고 머리가 지끈거릴 순간에 그는 어쩌지 못하는 배설이 먼저였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나 이 휴지 쪼가리나 다를 게 뭔가, 나와의 마지막 종지부를 찍으러 가기 전에 아이와 잠들었던 침대에 누워 굳이 그걸 그렇게 해소했어야만 속이 시원하고 몸이 가뿐했을까. 이러고서 나를 마주했다니. 부부로 사는 마지막인데 그랬다니.     


그러자 그저 욕구 해소를 위해 쓰였다는 데서 그 휴지와 난 크게 다른 처지가 아니라는 생각에 한없이 비참해졌다. 분명히 좋았고 애틋했던 사랑의 순간조차 오염되기 시작했다. 결혼은 생활이고 삶이니 그렇다 쳐도 연애할 때도 그랬으려나? 그 어떤 해명과 설명도 듣고 싶지 않을 만큼 사방이 서서히 막혀오는 기분이었다. 고작 그 휴지 몇 조각에 결국 나는 이런 용도였구나,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스스로가 너무 바보 같았다. 금방 흩어질 사랑 같은 걸 믿고 무턱대고 결혼해서는 결국 이 꼴을 보나 싶었다. 이런 꼴을 보려고 여태 모두들 다 이리 사는 줄 알고 버틴 게 사무쳤다.


돈 벌어오고 애 키우고 밥해주면서 순순히 하자는 대로 해야 했던 사람. 그러면서 때마다, 애가 옆에서 자고 있건 말건 응해줘야 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었다.


다름 아닌 나였다.     


휴지를 쥔 손에 두드러기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휴지통에 버렸다가는 며칠 동안 쓰레기봉투에 존재할 거여서 성글게 쥔 손으로 꾸역꾸역 욕실까지 걸어갔다. 대체 뭐 얼마나 대단한 정액이고 흔적이라고, 이럴 때 이딴 것까지 끝까지 내게 미루고 떠넘기나 싶어서 눈시울이 따가웠다.

변기에 휙 내다 던지면서 결국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 어느 때도 꾹 참을 수 있던 울음이 와락 쏟아졌고 곧 울었다는 현실에 더 서러웠다. 이까짓 거에 서러움을 감출 수 없는 것이 한없이 서글펐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물이 톡 떨어지던 날, 아이를 처음 품에 안던 날, 그 아이가 엄마, 아빠를 부르며 사르르 웃어주던 모든 순간이 다 거짓 같았다. 행복한 순간이 모두 나 하나 속이기 위했던 연극 같아서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소중하게 간직하던 예쁜 장면이 휴지와 함께 변기 속으로 휘리릭 빨려 들어갔다.     


막상 별거 아니라면 분명 별거 아닌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의 새로움을 머뭇대게 하는 데 아주 결정적인 장면임에는 틀림이 없다. 모든 사람이 다 이럴까 봐, 몇 번의 밤을 위한 감언이설이고 연극일까 봐 매번 새로이 어지럽다. 분명 좋은 사람도 있었을 거고 앞으로 인생에 누가 등장할지 모르는데 변기 옆에서 몇 번이고 손을 박박 씻어내던 그때 그 자리에서 머물러 있는 기분이다.

그는 새로 인연을 맺고 다른 차원의 가정까지 꾸렸는데. 당사자는 기억도 못 할 사소하고 더러운 쓰레기 때문에 여태 나는 괴롭다.     



안다. 그 자리, 그 순간에서 벗어나야 함을, 세상엔 분명 다른 데다가 훨씬 나은 사람과 사랑이 더 많다. 이쯤의 시간이 흘렀으면 없었던 일인 양 굴어도 되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간 좀처럼 쉽게 마음이 녹지 못했다. 조금 늦은 감이 있는 최근에야 딱딱하게 굳은 귀퉁이부터 서서히 깨져 나가는 것이 느껴지고 있.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휴지 조각은 진즉 물속에서 분해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텐데 여태 분해하지 못한 채 지니고만 있었다니.

가만 따져보니 진짜 통탄스럽지 않은가.

하긴 아직 그토록 한스럽고 절망적이었으며 서럽고 비참한 순간이 꼽히질 않기는 하다.    


그러니 진즉 말할 그랬다.

더러운 얘기지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나니 좀 가뿐하다. 불특정 다수알아버린 이야기가 되는 바람에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초조하다만 털어놓은 후련함이 더 크다. 혹시 이 이야기가 구구절절 주석을 붙이는 자극적인 이야기로 비칠까, 수도 없이 망설이다가 썼다 지웠던 많은 시간이 조금 아깝기도 할 정도로.     


아직도 떠올리면 으스스하게 몸에 한기가 들고 벌레가 몸을 기어 다니는 기분이지만, 전보다 훨씬 덜 가렵고 한결 가벼워진 듯하다. 


느리지만 렇게 나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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