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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은 Dec 15. 2022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






둘 사이에 어수선이 들뜬 그 기분만 남았으면 좋았을걸. 글을 쓰다 문득 허하고 쓸쓸한 기분을 숨길 수 없어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그 손길과 눈빛에 무얼 그리 기대했는지는 그때의 내가 잘 안다. 그래서 쪽팔리다.

그래 나는 그때의 그에게 어쩌면, 이라는 희망을 걸었다. 그게 또 눈빛 관수 못 하는 내 눈동자 밖에서 얼마나 유난을 떨었을지 굳이 돌이키지 않아도 훤하다. 그러기에 맞은 편에서그가 느꼈운 부담이 엄청났을 걸 뒤늦게 헤아려본다.


...아니 근데 그래도 미안하지 않다.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그림 같은 로맨틱은 없었지만 원래 낭만이란 것이 그렇기에. 아무래도 좋을 순간, 나만의 기억, 그 시간이 준 여러 감상이 여즉 말랑하니 남아있는 게 사실이다.

그 가을이 지나고 겨울 한복판이 되어서야 뒤늦게 곱씹자면 후가 어쨌든 그 순간만큼은 참 좋았다. 하지만 첫 문장에서 말했듯이 그때로 끝났어야 했고 그게 다였어야 했다.

이렇게 순진하고 물정 모르고 바보같이 들뜨다니. 설렘이 이불 킥으로 변하는 건 한순간임을 몸소 체험해 또 깨달았다.     


그렇게 돌아가 꽤 오래 주고받았던 연락 안에서는 분명 감정이란 게 이리저리 걸리적댔다. 마치 요플레 안에 절여져 생기를 잃은 딸기 조각처럼. 분명한 알맹이는 없이 겉도는 이야기만 넘실거리는 연락이었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생생히 느껴질 간지러움이 섞여 들어 있었다.

그랬기에 그 연락이 반가웠고 궁금했고 의미가 되는 거였다. 멍청히도 피차일반일 거라 믿었다.

누군가 사소한 일상에 아는 체하며 말을 거는 관심이 오랜만이어서였을까. 그저 호의만으로 이러지는 않으리라, 무턱대고 덥석 설레버린 설레발이 생각보다 삶에 큰 즐거움이 됐다.

친구를 만나 먹은 밥 한 끼, 일하면서 찍은 사진, 대단할 게 없는 순간을 그가 지켜보고 있단 사실에 일렁였다. 대체 왜 그랬는지는 난 모른다. 그만 알고 있을 뿐이다.     


‘이거 어디죠?’. ‘그때 말한 결과물이 이거구나.’라며 예기치 못한 사소한 순간에 그는 불쑥불쑥 끼어들어 설레게 했다. 일거수일투족 관심받는 걸 대체 얼마 만에 느낀 건지. 오늘도 수고했다는 말, 잘 자 라는 말. 힘내서 하루 또 보내보자는 말이 별 게 아니어도 굉장히 별거였다.

사랑받는 기분까지는 아닌데 어쩌면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뿌연 안개 같은 희망이 별안간 인생에 끼어들었다. 그렇게 둥둥 뜬 기분으로 살아갔다.     



그러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좋긴 좋은데. 이렇게 미적지근해도 되나, 싶어졌다. 달이 바뀌도록 그렇게 연락만 주고받고 잠깐씩 본 게 다여서 어딘가 슬며시 가슴이 답답해질 무렵이었다.

좋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호불호가 확실한 편인 걸 인정한다. 그래서 때론 이게 성격 급한 사람으로 비추어지기 쉬운 일인 것도 잘 안다.

허나 그와 관련해서는 그래 보여도 상관없을 정도가 돼버렸다. 바야흐로 더는 애매하고 희미해서 뭐라 부를 말이 없는 그를 가만둘 수가 없어질 때가 다가와 버린 거다.  늦여름 같던 초가을에서 완연하다 못해 쌀쌀하고 건조한 가을의 한가운데까지 오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너무 겉돌기만 했다.   


이제 따뜻하게 입어야 할 때가 됐다는 주제로 대화를 주고받을 때였다. 으레 겉만 핥는 이야기가 그렇듯이 날씨와 일상만 주고받고 있다가 화제를 전환해보자!라고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재미없고 거리 두는 이야기만 늘어놓을 참인가 싶었다. 엎드려 절 받기라도 이 모호한 관계에 가닥을 잡고 싶었다. 유치해서 엥? 스러워도 원래 이런 묘한 사이에는 유치한 게 미덕 아니겠는가. 그러자고 연애하는 거고, 거창하게 연애가 아니라도 한껏 사소하고 감정적인 관계가 되자고 많은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고 알아가는 거 아니냐고.  

   

그 비장함에 비해 질문은 별 게 아니었다. 길어지는 옷차림을 이야기하다가 치마 짧은 거, 긴 거 중에 뭐가 더 취향이냐고. 정말 딱 그렇게 물었다. 자세한 취향까지는 아니어도 그 정도쯩은 무리가 없이 묘하게 텐션은 유지하면서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를 내 마음을 슬쩍 또 전할 수 있는 거라 여겼다.

톡 까놓고 정말, 진짜 별 게 아닌 질문이 아닌가. 장난처럼 가벼이 주고받을 수도 있는 노릇이고 웃어넘길 수도 있는 질문이고 말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지나치게 확실했다. 멋쩍을 정도로. 나를 그리도 자상하게 지켜봐 주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걸 왜 저한테 맞추세요.’     


원래 좀 더 좋아하는 쪽이 간절하게 여지를 붙들고 있는 법이다. 그래서였을까. 말랑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세상에 저딴 대답을 들은 그때의 나는 그 대답이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라며 정신 승리의 자세로 다시 물었다.

아니 저쯤에서 멈췄으면 우습기라도 덜 했을 텐데. 늘 뒤늦게 후회를 하면서 나는 매번 묻고 표현하는 데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왜 못 하냐며 자충수를 둔다.

그런 성격은 대개 후회와 이불 킥을 남기고 다신 그러지 말아야지, 라는 셀프 타산지석의 기초가 된다.     


저 대답에 당시의 나는 꽤 일리 있는 되물음이랍시고 ‘그래도 내 머리랑 손목까지 잡은 사람인데 취향 정도는 알아야죠.’라고 말했다. 그러게. 다시 생각해봐도 잘못된 물음 같지 않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그런데도 의아스러워 후로 친구에게 이 짓이 찌질했냐 물었다. 날 안심시킬 요령일 수도 있지만 친구는 절대 아니랬다.

‘야 알아들으라고 떠 먹여준 건데 됐어. 할 만큼 했지.’ 이런 대답을 건넸다. 하, 그냥 그쯤하고 더 우스워지지 말란 소리였는데 또 미련을 못 버리고.

아무튼 그 말에 그는 머뭇대지도 않고 또 바로 답을 줬다. 거기서부터는 정말이지 더 뭐 쥐어 짜낼 수도 없이 힘이 빠졌다.


허탈. 정말 단어가 주는 뉘앙스 그대로 허탈했다.      



‘너무 의미 부여..같은데요.’     


그렇다. 나는 혼자 여태껏 그 말마따나 의미 부여를 해가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설렜다가 가라앉고 동동대다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젓는 수많은 헛짓거리를 해댄 거였다.

와, 의미부여?

그게 의미 부여구나. 그냥 아무 의미 없는데 그게 되는구나.


이랬던 멍함에서      


그래도 되는 거였나? 아니 대체 왜?     


라는 물음으로 바뀌기까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가요 중에 백아연의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라는 노래가 있는데 어느샌가부터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고 있었다. 가사가 하도 구구절절하고 맞는 말 천지에 내 마음 같아서 차마 옮겨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이래도 되는 거야? 싶은 의구심에 휩싸였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인데 가닿고 헤아려 돌아가는 길이 여러 개. 그렇다는 건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이리 가고 저리 돌아가더라도 내게 의미였던 사건이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의 말을 찬찬히 헤아려보자면 그는 그날 밤부터 몇 주씩이나 내게 그래도 되겠다, 싶었을 거다. 이 정도는 호의고 친절이지 호감과 핑크빛은 아니다. 저 여자와 그 이상은 아니다.

그런 마음으로 날 대했을 거다.



그래도 되는 사람, 이 정도는 별거 아닐 사람, 그 어느 의미도 담지 않고 그래도 큰 문제없을, 딱 그만큼의 감정도 아닌 기분.

나는 그 사람의 감정이 아니라 순간의 기분이었다.      

그때 난 뭐였어요?라고 묻기도 민망하게 작고 별 게 아닌 무엇. 나는 누군가의 기분에 휩쓸려 그만 대단한 오해를 한 것뿐이었다.     


다른 주제로 후다닥, 티 나게 어설플 정도로 말머리를 돌리던 때의 기분은 과히 초라함이었다.

이 꼴을 보자고 그렇게 들떴다니.

내게 아무 감정 없이 상냥히, 의미 없이 따스했던 그보다 그리도 가볍게 나풀거린 내가 더 미워지는 순간이 그렇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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