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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은 Dec 07. 2022

Stardust






‘그래서 그 남자랑은 어떻게 된 거예요?’라는 연락을 몇 번 받았다. 알아서 멀어져 줘라, 하면서도 끝내 나 좋다고 소심하게 끄트머리를 붙들고 있던 그 사람의 안부를 묻는 게 분명했다. 어떻게 된 건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어서 말 꺼내기가 조심스러웠지만 이젠 얼추 갈무리된 상태이기에, 이쯤이면 말할 수 있겠어서 슬쩍 꺼내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해주자면 어딘가 살금살금 웃어주는 인상이 강하던 그 사람은 앞서 <도망가>라는 글의 말미에 썼던 대로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그렇지만 뭐가 이루어지지도 않은 채로 있다. 대체 그게 뭐냐고? 그걸 명료하게 꼬집어 설명할 수가 없어 입을 달싹이며 며칠을 고민했다.     


어느 초가을 주말 그와 둘이 술을 한잔할 기회가 생겼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다가 잠깐 기다리겠다는 그의 말에 중간에 내려 달려가기까지 했다. 미쳤을까.

실은 한 번쯤 밖에서 둘이 보고 싶었다. 그래야만 이리저리 나부끼는 붕 뜬 마음에 뭐라 이름 붙일지 알아낼 것만 같았다.

날 보는 눈을 좀 더 선명하게 보면, 그러면 알아챌 수만 있을 거 같았다. 그저 친절과 호의인지, 호감인지. 혹시 나처럼 마음이 들썩이기라도 하는지 어떤지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고대하던 시간인데 내내 대화가 떠 있는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바보가 되는지 서른 하고도 세 살을 더 먹고 절절히 깨달았다. 어수선하게 들떠서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말은 더 못 하고. 어쩔 줄을 모르겠는데 태연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아는가. 도무지 그 격차를 완벽히 커버하지 못하는 덜떨어진 인간이 된 기분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 어찌나 비참한지 모른다. 내심 기다려온 순간인데 엉망진창이 되는 걸 깨달아 가면서 허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 딱히 기억나는 대화가 없다. 그 시간이 진짜였나 싶게 꿈처럼 드문드문 조각조각 떠오르는 장면만 있을 뿐이다.    

 

역시 될놈될. 그 되는 놈의 카테고리에 한 번도 껴본 적 없는 뚝딱이다운 진행이었다. 곱게 집에나 들어가서 아쉬울 게 없는 척이라도 할 것을. 안 하느니만 못한 소리를 늘어놓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그 어느 거도 없이 모든 게 부자연스러웠다.

대체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왜 그 모양이어야 할까. 할 말도 못 하고 흐름 같은 건 개나 줘버린 모자란 소리만 늘어놓고. 정작 궁금한 것만 빼고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다가 괜한 근심만 잔뜩 사서 돌아가는 게 과연 맞는 걸까.     



온갖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를 기다리며 도로로 나란히 걸어 나왔다. 사단은 거기서 났다.

싸늘하게 바람이 불어왔고 소주 반 병의 취기에 무슨 말을 하면서 그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미쳤나 봐) 그랬는데 별안간 그 손이 내 머리카락 위에 슬쩍, 스윽 다녀갔다가 거둬졌다.      

그때 그가 이 시간을 보내기 전 지나가듯 했던 말이 퍼뜩 떠올랐다. 집게 핀으로 머리를 대충 올리고 있었는데 그게 참 예쁘다고 했었다. 그걸 떠올리며 소주 한잔을 받아 들고 되게 발랄한 척하며 집게 핀으로 머리를 돌돌 말아 올렸었다. 맞은편에서 어이없게 웃음을 지었고 뭐라 뭐라 더 이야기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그 장면을 곱씹지도 못할 정도로 두근대며 떨고 있던 거다.      


대체 뭔데 머리를 만진담. 닿았던 머릿결 위로 무수한 물음표가 뭉게뭉게 피어올랐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턱, 하고 호흡이 한번 뒤바뀔 정도로 큰 사건이었는데 어쩐지 의식하고 아는 체하면 어색해질 거 같았다. 그 짧은 순간 발휘할 센스가 부족해서 그저 가만히 앞을 바라봤다. 당연히 머릿속에서는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다 못해 계속 서 있었는데 기립성 저혈압이 오기라도 한 듯 어질 하기까지 했다.

당연히 ‘뭐지? 이거 왜? 무슨 뜻인데?’의 의문문이 넘실댔다. 그러면서 그놈의 ‘아닌 척’을 못 버려서 택시 오면 타고 갈 테니 어서 들어가라고 말을 돌렸다. 그러자 꼭 보고 가야겠다는 그가 옅게 웃었던 것도 같다.  

    

“취했으면 놓고 가는데 그 정도는 아닌 거 같고.”     


전에 말을 놓는 게 어떠냐 했는데 그럴 수 없다고 그러던 그였다. 그래 놓고 은근슬쩍 끄트머리가 잘린 말로 저런 대답도 했었다. 참나. 이제 와 보니 웃기네. 얼떨떨해서 놓친 순간들 속에서 그도 나름대로 내게 뭔갈 흘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그렇게 천치처럼 굴었다니 다시 한번 이불을 걷어차고 싶은 심정이다.

소심하게 건드리고 알면서 아는 체하지 않고. 둘 다 정말 답답한 사람들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웃으며 묻기라도 할 걸 그랬나? 바로 그랬으면 그냥요, 하면서 멋쩍어하는 그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볼 기회가 생겼을 수도 있었을 거다.     



헤아릴 수 없는 순간들이 넘실대고 휘청대는 약한 설렘이 밤공기에 실려 다녔다. 긴지 아닌지 꼭 알아내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건만,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지는 데에 기분이 울렁댔다.

의미를 찾자면 한도 끝도 없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자꾸 이건 어떤 설렘이고 저건 무슨 사인이고 등등으로 이름을 붙이고만 싶어지는 거, 혹시 아는가. 착각일지 언정 믿어버리고 싶은 거. 누군가를 좋아하는 기분은 그렇게 사람을 흐릿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게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똑똑한 사람이어도. 감정이란 건 정말 곧 죽어도 모를 혼란이다.          


그 타이밍을 하필이라 부를까. 야속하게 택시가 생각보다 빨리 달려왔다. 겉도는 두 사람 중 누구는 아쉬울 거였고 누구는 피곤했을 순간이었다. 민폐를 끼치거나 불편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으나 아쉬움에 미적대고팠다. 그러고 보니 이런저런 경우를 망상해가며 꼽아봐도 아쉬운 건 나였다.

이러고 싶던 게 아닌데, 아쉬움과 후회 등등 그 모든 걸 뒤로 하고 문을 열고 타려 했다. 그때 느닷없이 그가 팔을 뻗어 내 손목을 약하게 붙들었다.      


“들어가서 연락해요.”     


그리고는 저런 인사를 건넸다.

셔츠 소매를 돌돌 말아 훤히 드러났던 손목 위에 그의 거칠고 미지근한 손바닥이 짧게 닿았다 떨어졌다. 끝이 동그랗게 정리된 손톱 끄트머리, 붙잡고 있는 손가락과 손등, 검은 타투가 새겨진 팔등이 슬로모션처럼 차례대로 눈에 담겼고 이윽고 아주 잠시 눈이 마주쳤다.     


그와 보내는 시간 내내 부자연스럽게 굴던 나는 처음으로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을 수 있었다.

확실하게 붙잡지 못한 손바닥이, 내내 어설프게 굴던 나 같기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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