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살, 초등학교 1학년 이건만 아이는 학습에 굉장히 뒤처진 편이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내 새끼니까, 팔은 안으로 굽으니까 그래도 수학은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친구들은 곱하기를 마쳤단다. 어라, 건강하기만 하면 됐지, 지금 아니면 언제 놀아. 미적미적 늦장 부리는 게으른 엄마였던 나는 슬며시 불안에 휩싸였다.
친구들은 한글도 다 떼서 척척 읽고 쓰고, 수학 문제도 술술 읽고 알아서 연산까지 다 해낸다는데 우리 애는 너무 놀았던 바람에 학교 수업에 못 따라가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과 상담할 때 여러 번이나 강조당했다. 애가 너무 공부를 안 하고, 기초가 안 되어 있으니 꼭 도움을 받으시라고.
그럼 나는 굉장히 송구스러워져서 ‘그래도 애는 착해요. 건강하고. 진짜 건강하고 밝고.’ 이딴 주절거림만 늘어놓고 뒷걸음질로 총총 빠져나오곤 했다.
어제도 선생님과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었다. 속도 모르고 신나게 뛰어노는 걸 바라보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지만 공부가 다가 아니니까. 다른 장점이 훨씬 많은 아이니 조금 더 기다려주자. 스스로에게 세뇌를 또 했다.
그러다 어제 늦은 오후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코 찔찔대면서 다니던 아이한테 감기가 옮은 모양이었다. 8살은 가볍게 콧물만 나고 거뜬하게 쌩쌩했는데 33살은 여기저기 동시에 아팠다. 머리도 아프고 목도 따끔했다. 여기저기 얻어맞은 듯이 가라앉는 기분에 잠깐 방에 들어가 누워있었는데.
“많이 아파?”
눈을 감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빼꼼 문을 열고 들어선 건 아이였다. 그러고선 살금살금, 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게 조심스레 다가와 이마를 짚어줬다. 한껏 걱정스러운 눈빛과 조심스러운 목소리라니. 투정 어린 칭얼거림이라고는 싹 가신 눈동자에 그만 가슴이 일렁였다. 여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동안에는 아프다고 말해도 그러거나 말거나 제 일이 먼저였다.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고 보채고 들볶았다. 엄마가 아픈 건 자신보다 후순위였다. 아이들은 자기 코앞의 일, 자신만 아는 시야를 지녔다. 얘도 그랬다. 그런데 느닷없이 갑자기 걱정이란 걸 해주고 있었다.
“엄마 좀만 이러고 있으면 될 거 같아. 뭐 필요해?”
어느새 이마를 가득 덮는 손은 마냥 고사리손이 아니었다. 제법 두터워진 손바닥과 길어진 손가락, 수족냉증에 시달리는 나와 달리 따끈한 체온. 이상하게 든든했다.
세상에, 아플 때 이마를 짚어줄 만큼 커버린 걸까.
“아파서 걱정돼.”
이 말을 남기고 아이는 방을 나갔다. 혼자 놀던 중에 잠시 짬을 내 방문해주신 거였다. 학교 끝나고 돌아와 놀다가 아 맞다, 엄마 아프다고 했지. 하며 이마를 짚고 상태를 확인한 그 모양이 왜 그리 귀엽고 뭉클한지. 참나,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혼잣말로 내뱉고 다시 눈을 감았다. 약기운이 퍼지면서 나른해짐과 동시에 행복이 전신에 퍼지는 기분이 들었다. 도파민 주사를 한 대 콕 맞으면 이런 기분이 들려나. 저만큼 컸다는 게 하도 기특하고 보람차서 매일 받아쓰기 0점 받아도 뭐 어때, 저만큼 마음이 예쁘게 컸는데. 나도 모르게 여태껏 잘 키웠다는 자화자찬까지 곁들여가며 찰나의 효도를 만끽했다.
“사랑하는 엄마. 우리 엄마 너무 예쁜데 아파서 속상해.”
한 5분 지났을까. 두 번째로 찾아온 아이가 문고리를 잡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저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떻게 누워있을 수 있을까. 따끈하게 데워진 침대 속과 모처럼 누워본 휴식은 그만하면 될 듯했다.
약이 달리 뭐 필요할까. 세수만 겨우 한 얼굴과 꾀죄죄한 차림이 결코 예쁠 리 없건만 기분 나아지라고 예쁘다는 립서비스에 무려 사랑하는 엄마, 라는 거창하고 벅찬 이름까지 공들여 불러주는데 일어나야지. 속상하다면서 옆으로 다가가면 넷플릭스 좀 봐도 되냐고 슬금슬금 눈치 보겠지만 옆에 있어야지.
생각보다 아이의 저 한마디는 큰 위로고 사랑이 되었다. 못난 생각인 거 알지만 어느 새부터 이제 세상엔 더 나를 어여삐 여기고 사랑해줄 사람이 없을 거란 의기소침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뭐 누가 또 있을까 싶은 마음이었는데, 절대 아니었다.
그게 꼭 다 큰 성인이자 남의 집 귀한 자식이 아니어도 누구보다 나를 아껴주고 걱정해주는 이가 이리도 지척에 있을 줄이야.
벌써 이만큼 커서 그 어느 약보다 잘 듣는 귀한 말을 속삭여줄 줄 누가 알았을까. 늘 내가 지켜주고 보호해야 하는 약한 존재로만 생각했는데 어쩌다 내가 이런 귀한 보살핌을 받게 된 걸까. 대체 엄마와 자식이 뭐길래. 엄마라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 황송하고 여린 마음을 덥석 누려도 될까.
“이제 안 아파?”
반갑게 슬쩍 번지는 그 입꼬리의 작은 호선에 기운이 샘솟았다. 아플 틈도 없다. 저 예쁜 걸 오래 보고 자주 듣고 행복함을 느끼려면.
저렇게 마음이 예쁜 아이의 엄마씩이나 돼서 아프면 쓰나. 가진 건 없지만 이토록 따뜻하고 행복한 장면을 자꾸 선사하는 저 아이 때문에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내내 딱 저 아이만큼 건강하고 밝고 자상한, 예쁜 마음으로 곱게 바라보는 엄마가 되어줘야겠다. 이만한 사랑씩이나 받는 나이기에. 꼭 그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