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은 Nov 15. 2022

투게더 02






그때 머쓱하게, 혹은 민망하거나 켕기는 얼굴로 조심스레 말을 꺼낼 걸 그랬을까. 할아버지는 먼저 말을 던져놓고 대답을 기다린 게 아닌 듯이 바로 눈빛을 거뒀다. 그냥 감탄사 같은 질문이었을까? 할아버지는 미지근하게 찰랑대는 소주를 참으로 시원하고 달게 들이켜고 다른 델 쳐다봤다. 

질문할 때만 해도 날카롭게 눈을 번득 떠 놓고서 대답을 듣기도 전에 다른 델 보다니. 

어라 그러면 굳이 진실을 밝히지 않아도 되려나. 소주잔을 들고 몇 초간 고민하다가 한 번에 다 들이켰다. 미지근한 소주는 더럽게 썼고 목구멍을 긁어가며 내려갔다.     


“그냥 뭐.”     


마땅히 들려줄 말이 없을 때, 애매할 때, 그것도 저것도 아니면 진심을 전하기 난감할 때 우리는 ‘그냥’이라는 말을 쓴다. 그냥 그렇게 됐다고 어물쩍 넘기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은 회피로 봐도 무방했다. 분명 숨기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를 당장 전하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기에. 한때 손녀사위이던 그 사람이 잘 지내고 있는지 왜 같이 내려오지 않는지, 그래서 나는 잘 지내고 있는지, 어쩐지. 

할아버지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제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바쁘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남이 된 사람의 삶과 일상을 조금도 모르는 상태이긴 하다만 어찌 됐건 바쁠 터였다. 뭘 하든 바쁠 거긴 했으니 반쯤은 맞는 말이기도 했다. 남이 된 남 얘기를 그리 건네는 게 어쩐지 우스웠으나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근데 당최 눈치채 주길 바라면서 면전에서 몰라주길 바라는 요상한 심리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웃겨 진짜, 정말 그건 대체 뭐였을까. 스스로 지독히 답답한 회피형 인간이라 여긴 적이 없는데 그 순간은 최고로 겁쟁이였다. 

할 말이라면 눈 딱 감고 해내야 다음 스텝이 있는 걸 알았다. 참다, 참다 끝끝내 말한다, 성미 급한 내게 그런 건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그저 할아버지가 어서 다른 데로 관심을 돌려주길 바랐다. 뭐라 받아들일지 모를 근심을 얹어주고 싶지 않았다. 나란 인간이 이미 이때까지 너무 많은 이들에게 근심을 보태준 탓이었다.     

그저 그냥 대충대충 적당히 평범하게 사는 모습으로 짐작해주길 바랐다. 사실 흔하고 평범하지만 내 기준의 평범과 1940년대에 태어난 사람이 지닌 평범의 기준은 다를 거였다. 내 기저귀를 갈아주고 졸업식마다 찾아와 밥을 사주던 할아버지였다. 


내 모든 걸 기꺼이 아껴주고 사랑한 그런 사람에게 어느새 숨기고픈 무언가가 생겨버리다니. 못내 죄스럽고 켕겨서 고봉으로 떠준 밥알이 태산 같았다. 

그래서 비밀이 생긴다는 것은 이래저래 갑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의도한 적 없었거늘 어쩌다 보니 암암리에 감춰야 할 사실이 된 내 이혼. 혈압약에 심장약을 먹는 할아버지에게 낱낱이 고하기가 그래서 조금 많이 어려웠다.     


“애 키우기가 어디 쉬운 줄 아냐.”     


들리는 게 영 시원찮아서였을까. 할아버지는 거실을 헤집어 놓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엉뚱한 소리를 했다. 갑자기 애 키우기가 어디 쉬운 줄 아냐니. 난데없는 화제 전환에 옳다구나 싶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할아버지는 티키타카 되는 대화가 자주 어려운 사람이었다. 늘 본인 할 말만 하고 남의 말을 안 들어주는 덕에 할아버지는 진즉에 벌써 아이 아빠에게서 관심을 거둔 모양이었다. 

내가 잘 사는지 뭐 하는지는 대충 보아하니 알 거 같고, 바쁘다는 사위는 뭐 오거나 말 거 나고. 저 애나 잘 키워냈으면 하는 마음이 또 불쑥 할아버지의 입가에 어른댔을 거다. 관심사가 확실해서 하나만 아는 사람. 격한 표현이다만 ‘한 놈만 패는’ 식의 성격을 지닌 할아버지는 눈앞에 알짱대는 저 아이가 제일 중요했다. 그냥 그래서 그 부모인 나와 남이 되어 버린 사람의 안부를 형식상 대충 물은 걸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부지런히 벌어서 부지런히 가르쳐.”     


본인 잔을 스스로 채운 할아버지가 내복 바람으로 거실을 휘젓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 그랬다. 

부지런히 벌고는 있는데 많이는 못 벌어, 남들 하는 거 다 시켜주진 못하겠지만 사람 구실 할 만큼만 가르치면 되는 거지 뭘. 요즘 애들은 대학이 문제가 아니라 그 너머의 것들이 더 문제라고 서둘러 할아버지에게 와다다 쏟아냈다. 조금 거리를 두고 앉아 있던 엄마의 표정도 내내 어둡게 흐리다가 편안해진 게 눈으로 보였다. 엄마도 쫄린 모양이었다.

당최 앞뒤가 없는 소리지만 아이 아빠에 관한 것만 쏙 빼놓고 그냥 내가 가진 포부를 그렇게 쏟아냈다. 

도저히 속을 모를 노인네지만 할아버지는 넌지시 언젠가부터 내 이혼을 눈치챘을 수도 있는 거였다. 그럴지도 모르니까 나는 아무래도 괜찮고 그러니 더욱더 잘 키워낼 거라고. 어깃장 같은 다짐을 전하고 싶었다. 슬며시 마음 약해진 구석을, 채 보수를 마치지 못한 휑한 정신 상태를 흘리고 싶지 않았다.     


기껏 그렇게 야물딱진 다짐으로 가드를 세웠건만 할아버지는 영탁과 이찬원이 번갈아 가며 노래를 부르고 김성주와 붐의 멘트에 더 귀 기울이는 모양새였다. 

하이고, 오히려 그게 더 다행이었으려나. 그제야 알딸딸하게 연거푸 마신 소주의 미지근한 취기가 올라왔다. 나이를 먹을수록, 취할수록 입이 점점 무거워지는 게 참 다행이었다. 그러면서 술기운에 마음이 무거워지면 사실 할아버지한테 비밀이 있었다며 울고불고라도 하게 될까, 술을 그만 마시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 앞에서 엉엉 운 적이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살아갈수록 사는 게 점점 빡세지는데 이게 맞나, 싶다고. 마음먹고 투정 부리기엔 할아버지는 눈 하나 까딱이지 않을 사람이었다. 외려 모진 소리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럼 뭐 사는 게 쉬운 줄 알았냐고. 이 계집애 물러 터져서 호강에 겨운 소리 한다고 역정을 낼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대게 모든 자식과 손주들에게 할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슬픔과 고됨에 공감해주지 않는 아버지이자 할아버지. 기쁜 일에 짧게 웃긴 하지만 두고두고 칭찬을 이어주지는 않는 사람.     


그런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 대체 얼마나 알고 있는 거였을까. 

아, 나는 정말 이 양반을 반도 모르고 단정 짓고 살았구나 싶은 사건은 곧 벌어졌다.          


“이거 뭐야?”     


식탁에 모여 앉은 어른들과 달리 이곳저곳 총총 나부끼는 아이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냉장고 앞이었다. 이제 손을 뻗어 냉동실 문 정도는 아무렇게나 여닫을 수 있는 때가 되고도 남은 때. 아이는 보물 찾기에서 뭐라도 찾은 얼굴로 맑게 웃으며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이거 먹어도 돼?”     


잠시 자리에서 빠져나와 냉장고 앞으로 다가갔다.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발까지 동동거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그저 그런 시시한 일이 아니었다. 뭘 발견했기에 저렇게 들떠서 신났을까. 아이 옆에 서자마자 허, 하는 실없고 가는 웃음이 픽 터져 나왔다.     

뚜껑 한번 열리지 않은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각종 젓갈과 묵은 반찬을 꽁꽁 얼려두는 팔십 대 중반인 노인의 냉동실 가운데에 떡하니 자리 잡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라니. 물가 상승으로 인해 편의점에서 무려 8,000원이나 받아먹는 투게더가 냉동실의 센터에서 빛나고 있었다. 세상에 그건 마치 냉동실의 장원영 같은 자태였다.


그걸 보고 대체 이걸 왜?라는 물음은 무의미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오기 전에 차를 몰고 읍으로 나가 장을 보다가 애가 오면 군것질로 뭘 주나, 하는 마음으로 주섬주섬 장바구니에 꽝꽝 언 투게더를 넣었을 거였다. 달콤하게 사르르 녹는 그 맛을 보여주려고. 이게 좋나, 저게 좋나 하다가 그나마 알 것 같은 아이스크림으로 골랐을 거다. 그렇게 나름 짧은 고민을 하다가 이 정도면 그 꼬마 놈 하난데 모자라지 않게 넉넉히 먹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6,000원에서 8,000원 사이를 지불했을 거다.

그리고는 집에 도착해 아이 눈높이에 잘 보이는 가운데 칸의 가운데에 놓아두면서 빙그레 웃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세상에 이토록 깜찍한 서프라이즈라니. 우리 할아버지가.     


“맞다, 그거 먹어라.”     


우리 쪽을 한번 힐긋댄 할아버지는 웃음도 짓지 않고 저리 말했다. 아 누가 김첨지 아니랄까 봐. ‘오다 주웠다.’ ‘아 그거 아까 보여서 사뒀는데 잊어버리고 있었네. 본 참에 너 먹어라.’의 뉘앙스가 팍팍 느껴지는 무심한 목소리였다. 과연 변함없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세상에 어쩜 저렇게 살가운 나긋함이라고는 없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발견해 한껏 신난 녀석의 등쌀에 밀려 숟가락을 챙기고 뚜껑의 비닐 껍질을 벗기며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졌다. 그러면서 내내 웃음이 새어 나왔다.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이는지 투박한 밥숟가락을 꺼내 들고 옆에서 동동대는 녀석과 이쪽으로 눈도 안 주고 있지만, 한껏 희미한 청력을 모아 재잘대는 소란을 엿들을 할아버지를 번갈아 봤다. 

이런 사랑 앞에 그까짓 비밀이 다 뭘까. 그게 뭐 그리 대단한 무게고 영원히 품을 비밀이라고 자꾸 움츠러들고 이 사랑을 차근차근 관찰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할아버지는 친절하고 자상한 위로를 건네지 않더라도 어쨌든 잘하고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할아버지를 띄엄띄엄 보고 있는 건 나일 지도 모를 일이었다.     


80년 넘게 살며 그 많은 시련과 사람을 겪은 그를, 증손주를 기다리며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냉동실에 채워 넣을 줄 아는 사람을 대충 알고 대충 지레짐작했음을 알아챈 순간 너무 죄스러웠다. 모든 사람에겐 한 면만 있는 게 아니라고 단정 짓지 말자 그리도 말해대면서, 대체 왜 할아버지를 괴팍하고 성미 급한 버럭이로만 봤을까. 단면의 반도 몰랐으면서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존재해왔다는 것만으로 그리 쉽게 재단했단 게 우스운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품었을 기다림의 설렘과 그리움, 잘해주고픈 여전히 서툰 표현을 몰라줘도 너무 몰랐던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하기까지 했다.

대체 얼마나 신나서 기다렸던 건지 참나. 어쩌면 할아버지에게 그 달고 뽀얀 아이스크림같이 여린 구석이 있겠다고 조용히 생각했다. 그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약해지고 녹진해진 성미로 인한 것이든, 본래의 성질이든. 


아, 미처 다 알지 못 한 할아버지는 어쩌면 이렇게 시원하고 달콤한 사람이었나.

여태 대충 보고 깊이 헤아리지 않았던 할아버지의 귀엽고 자상한 면모를 아이와 함께 입안에서 오래 음미했다.          


“야 이 자식아! 이게 그렇게 맛있냐?”          


마음에도 없는 거친 표현 뒤 빙그레 번지는 미소를, 이제부터라도 오래 기억하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 투게더 0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